우리 집 근처에는 괜찮은 파크가 위치하고 있다. 시간을 내어 자주 그 파크를 걷곤 한다. 조용히 혼자 걸어가는 사람들이 있다. 그런데 어떤 사람들은 짝을 지어 이야기를 나누며 걷는 사람들을 만나게 된다. 좋은 벗, 좋은 친구들과 함께 걸으며 인생을 나누는 그 걸음 걸음들은 아름답다. 함께 걷는다는 것은 상대방을 관계적인 영역으로 초대하는 행위이다. 같이 걸어가면 마음이 열린다. 같이 걸어가면 이해의 폭이 넓어진다. 같이 걸어가면 친근감이 형성된다. 교회를 여러 가지 비유를 통해 설명할 수 있다.

나는 교회를 일종의 함께 걸어가는 공동체라고 부르고 싶다. 함께 인생의 길을 걸어가는 공동체이다. 교회만큼 장시간의 인생을 같이 걸어가는 공동체가 어디 있을까? 탄생으로부터 시작하여 죽음에 이르기까지 교회는 그 모든 기나긴 인생의 여정 길을 같이 걸어간다. 함께 걸어가며 희노애락을 나눈다. 돌 잔치로부터, 진학, 결혼, 사별 그리고 노년에 이르는 온갖 생의 매듭들을 함께 나누는 함께 걸어가는 공동체가 교회이다. 혼자 지기에 어려운 짐들을 같이 지면서 그 짐을 덜어준다. 악한 세력과 유혹, 시험에 부딪힐 때 교인들이 서로 간에 힘과 용기를 북돋아 준다.

요즘 같은 경제적 불황이 심화될 때 교인들은 교회라는 공동체를 통해 깊은 사랑의 교감과 돌봄을 받아야 한다. 미국의 저명한 설교자 척 스윈돌 목사는 이런 말을 하고 있다. 그 분은 교회가 가지는 가장 핵심의 정신, DNA를, 관계의 정신이라고 표현한다. 관계의 정신이란 성도 간에 교제가 충만한 상태를 말한다. 한 마음이 되고 한 정신으로 뭉쳐 깊은 한 몸됨의 지체의식을 나누는 교회를 뜻한다. 교회는 관계로 연결되어 있어야 한다. 관계가 깊은 교회는 결속의식이 높고 연대의식이 강하다. 우리가 잘 부르는 복음성가 있다. ‘ 여기에 모인 우리 주의 은총 받은 자여라, 주께서 이 자리에 함께 계심을 믿노라’ 이 복음 성가를 부를 때마다 나는 눈물이 난다. 하나님의 영으로 한 마음이 되어 나아가는 교회, 그것이 진정한 교회의 정신이 그 노래에 흐르기 때문이다.

오늘날 현대 교인들이 교회에 나아도 자기 자신을 독립된 개인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아무와도 교제하지 않고 그냥 교회에 와서 자신의 영적 유익을 채우고 썰물처럼 빠져 나가는 그런 파편화된 교인들을 생각해 볼 수 있다. 교회라는 곳은 독립적이고 분리적인 개인들의 아무런 의미 없는 만남이 아니다. 우리는 미세한 분자가 왕래하는 얇은 투막과 같은 영적 결속감으로 연결된 존재이다. 아무런 관계나 교제가 없이 모이는 교인들을 구경꾼이라고 할 수 있다. 구경꾼들은 서로 깊은 관계를 맺지 않는다. 각자가 개별적으로 자기의 이기적 동기를 가지고 모이는 집단의 모습을 말한다. 모래 파편과 같이 응집력이 없는 교인들을 생각해 볼 수 있다. 교회가 커지면 커질수록 이렇게 구경꾼 교회로 나아가기 쉽다. 그러므로 교회는 양적 성장과 함께 질적인 결속감으로 같이 보완되어야 한다.

미국의 저명한 사회학자 로버트 벨라라는 분은 그의 저서 ‘ 마음의 습관’ 이라는 책에서 유사 공동체라는 단어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유사 공동체란 공동체같이 외형적으로 보이지만 그것은 참 공동체가 아니라는 것이다. 그들은 물리적으로 같은 동네에 살며 같이 골프를 하고 같이 식사를 나눈지만 그들 간에 진정한 마음의 교제가 결여된 공동체를 가르친다. 그들은 단지 혼자 사는 것이 재미없기 때문에 이런 외형적인 생활 방식을 공동으로 추구할 따름이라고 지적한다. 하나님은 교회라는 새로운 공동체를 통해 서로가 마음을 열고 사귀며 하나님의 말씀 앞에 변화되어 하나가 되는 진정한 공동체를 이루어 가기를 원하신다. 오늘날과 같은 영적, 경제적 위기 앞에 교회가 더욱 더 함께 걸어가는 공동체의 가치를 추구해야 할 절실한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