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네시 낙스빌에서 무료진료소를 운영하는 톰 김(Tom Kim, 한국명 김유근) 박사(65). 그는 1993년부터 지금까지 건강보험이 없는 미국인 약 7 만명을 무료로 진료한 ‘테네시의 슈바이처’다.

처음에는 자신의 병원에서 일주일에 4번 업무시간 후에 무료진료를 하다 2005년에는 병원 문을 아예 닫고 ‘Free medical clinic’을 설립해 무료진료를 풀타임으로 하고 있다.

2001년부터는 낙스빌에서 50마일 떨어진 폐광촌에 매주 수요일이면 찾아가 무료진료를 지금까지 하고 있다.

유망한 암 전문 내과의사로 25년 간 자신의 병원을 잘하던 그가 무료진료에 전적으로 나서게 된 이유를 물었다.

“첫째는 미국까지 와서 공부해 의사가 된 것이 다 하나님의 은혜 아닙니까. 그 은혜에 보답하는 길은 예수님의 말씀인 이웃사랑을 실천하는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둘째는 더 중요한 건데 한국전쟁 중 미군이 오지 않았으면 우리가 지금 이곳에 어떻게 살 수 있습니까. 미국에 보답해야죠(Pay back). 제가 갖고 있는 기술로 보답하는 겁니다.”

김 박사의 할아버지는 북한에서 장로교 목사였고 의사였던 아버지는 같이 일하자는 김일성의 제안을 기독교인이라며 뿌리치는 등 그는 독실한 기독교 가정에서 자랐다.

김 박사 역시 목사가 되려고 했지만 어려서 미국에 온 후 세브란스처럼 의사가 되어 한국에 선교사로 들어가야 겠다는 꿈을 가지고 되었다. 이를 위해 한국의 언어와 풍습을 배우겠다는 생각으로 1961년 한국으로 역유학, 연세대 의대를 졸업하고 미국으로 다시 와 1979년 테네시 대학에서 암 전공의 수련을 마친 후 낙스빌에서 병원을 개업했다.

하지만 자녀들이 크면서 한국가는 것이 여의치 않자 김 박사는 바로 옆의 이웃들을 보기 시작했다.

“옆의 이웃들이 아픈데도 보험이 없어 병원에 못가고 있는데 이들부터 도와줘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성경에도 성령을 받으면 권능을 받아 예수 그리스도의 증인이 되어 나가는데 먼저 예루살렘, 유대, 사마리아 그리고 땅 끝 순서입니다. 낙스빌부터하고 아틀란타, 그 다음에 하이티, 한국 등 해외로 나가야 하는 겁니다”

그가 직장을 다니지만 건강보험이 없는 가난한 미국인들을 대상으로 무료진료를 시작한 직접적인 동기다.

현재 미국에는 4,700만명이 건강보험이 없어 아파도 병원치료를 제대로 받지 못해 사회문제가 되고 있어 김 박사의 무료 진료는 낙스빌에 사는 무보험자 직장인 미국인들에게는 생명수와 같았다.

그는 하루 평균 35-40명의 환자를 진료, 2005년 풀타임으로 무료진료에 나선 후 지금까지 약 4만명이 진료소를 거쳐갔다.

2005년 8월에 오프한 ‘Free medical clinic’은 10명의 지역의사 등 90%가 자원봉사로 운영되고 있고 운영비의 80%는 낙스빌 시민들의 기부금으로 충당되고 있다.

현재 Free medical clinic은 낙스빌 외에 김 박사가 매주 수요일이면 가는 폐광촌(Briceville Free medical clinic)과 낙스빌에서 20마일 떨어진 오크 릿지(Oak ridge Free medical clinic) 등 3곳에서 운영 중이고 더 확대될 예정이다.

이 봉사로 김 박사는 2002년 동양인 최초로 미사회봉사단체인 ‘AIPS’가 주는 ‘제퍼슨상’을 받았고 2005년 ‘낙스빌을 이끄는 지도자’로 선정되었으며 아시안계미국인 계몽단체인 ‘좋은이웃되기운동본부’의 ‘올해의 좋은이웃상’을 수상했다. 2006년에는 테네시 앤더슨 카운티에서 ‘테네시의 영웅’으로 선정되었다.

보람이 뭐냐는 질문에 그는 “남이 못하는 것을 제가 하니 얼마나 좋습니까”라며 “저는 얼마나 많은 시간을 소외받고 가난한 사람들을 돌보내는데 보냈느냐로 성공여부를 판단합니다”고 답했다.

그는 “가장 작은 자에게 한 것이 내게 한 것”이라는 마태복음 25장 40절의 말씀을 들었는데 이 봉사가 결국 하나님을 위해 한 것이라는 점에서 보람이 크다는 의미였다.

김 박사는 지난해 그동안의 무료진료 활동을 소개한 ‘Five Fingers: The Story of the Free Medical Clinic of America’ 책을 출판했다.

“Five Fingers는 One day, One doctor, One patient, One church, One dollar를 의미합니다. 하루에 한 의사가 한 환자를 무료진료해주고 한 교회가 무보험환자들을 돌봐주며 이들을 위해 한 사람이 1 달러를 내면 된다는 뜻이죠. 낙스빌 인구가 50만입니다. 한 사람이 1달러만 내면 50만 달러죠. 이 원칙은 의료활동 뿐 아니라 모든 사람에게 적용됩니다. 이렇게 하면 미국이 발전합니다”

김 박사는 이와 관련, 한인들의 자원봉사 부족을 지적했다. “미국사람들이 그래요. 한인들은 한가지만 빼놓고 다 뛰어나다구. 그 한가지는 베풀기(giving)와 자원봉사(volunteering)입니다. 우리가 미국사회에서 도움을 받았으면 보답해야 합니다. 그것이 이민생활의 성공 비결입니다”

그는 한인들이 미국에 이민오는 동기를 점검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미국에서 와서 열심히 일해 돈벌어 아이들을 아이비리그 보내는게 전부입니까? 아닙니다. 미국사회를 어떻게 도와주고 어떻게 감사할 것인지가 동기가 되어야 합니다. 저는 그게 아니라면 미국에 오지 말라고 합니다”

“기독교인이라면 예수님이 3년동안 뭘했는지 알겁니다. 강도, 세리, 창녀, 가난한 사람들과 함께 했습니다. 한인 기독교인들이 미국사회에서 마땅히 보여야할 모습이죠.

한인들이 미국에 와서 경제적으로 혹은 자녀교육 등에서 어느 정도 성공했으면 미국사회 때문에 가능했던 겁니다. 보답해야죠. 특히, 한국전에 참전한 미군 용사들과 그 가족들에게 감사해야 합니다”

김 박사는 2003년 낙스빌 한인회장 시절, 한국전 참전용사 기념비를 낙스빌에 세워 미국에 감사를 표했다. 2톤 무게의 이 기념비는 미주 한인사회 처음으로 한국에서 직접 제작해 미국으로 운송한 것으로 제작비, 운송비 등 일체의 비용 100%가 낙스빌 한인들의 모금으로 이뤄졌다.

그는 자녀들에게 어려서 자원봉사를 교육하지 못한 것을 인생의 가장 큰 실패라고 말했다.

“두 애들이 남에게 뒤지면 안된다는 생각에 방과 후 교육에 투자를 많이 했습니다. 아이비리그 가야 한다면 SAT 공부시키고 바이올린, 피아노, 축구, 수영 등 많이 시켰죠. 애들이 나쁘게 된 것은 아니지만 양로원 등에 가서 반신불수된 사람에게 음식을 숟가락을 떠주고 노래도 불러주고 하는 등의 기회를 놓쳤습니다. 애들에게 자원봉사를 못가르쳤어요. 그게 내 생애에서 가장 큰 실패입니다”

김 박사의 두 자녀 중 딸은 소아과 의사가 되었고 아들은 아이비리그 중 하나인 유펜을 졸업하고 샌프란시스코의 한 사회봉사단체에서 일하고 있다.

김 박사는 자원봉사를 못 가르쳤음에도 아들이 커서 현재 사회봉사단체에서 일하고 있는 모습을 보면 대견스럽지만 얼마나 약한자를 도왔느냐를 성공의 기준으로 보는 아버지로서 어려서 자녀들에게 자원봉사를 못가르친 것은 여전히 큰 아쉬움으로 남아 있다고 밝혔다.

“2세들이 미국지도자가 되려면 자원봉사를 해야 합니다. 오바마가 회사에 안들어가고 지역사회 봉사를 한 것이 바탕이 되어서 미국 대통령이 되었잖아요. 아래서부터 고생을 해봐야 합니다. 자원봉사하면서 산전수전을 겪어야 나중에 우두머리가 되는 겁니다. 그냥 껑충되는 것이 아닙니다”

김 박사의 향후 계획은 한국 대신 스모키 마운틴의 경치좋은 곳에 호스피스 시설을 세워서 환자들을 돌보며 무료진료활동을 계속하는 것이다. (톰 김 박사 무료진료소 웹사이트 www.freemedicalclinic.net)

케이아메리칸포스트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