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인사업체의 발달

한인 사회의 성장과 함께 한인 사업체가 발달하였다. 한인들의 사업체가 대형화하고 다양화한 것이 특성이었다. 특히 한인들의 사업체 중에서 세탁업체의 증가가 두드러졌다.

(1) 애틀랜타와 그 인근에 한인 소유 세탁소의 증가

애틀랜타 지역 내에 최초로 한인이 운영한 세탁소는 1978년 배수일씨가 개업하여 천병호씨가 운영하다가 인도인에게 매매된 글렌우드 선상의 세탁소와 김용석씨가 커빙턴 하이웨이에 개업한 핸드 크리너스 세탁소 두군데 였다. 중소자본을 가진 한인들에게 특별한 노하우 없이 약간의 기술 습득으로 사업을 새로 시작할 수 있어서 세탁업은 인기 업종이 되었다.

특히 애틀랜타 지역에 한인인구가 급증하게 되면서 1980년대 후반부터 애틀랜타와 그 인근 지역에 한인 소유의 세탁소가 급증하는 추세를 보였다.

특히 1990년대 초반부터 한인 사회에 세탁소 열풍이 불어 북쪽 지역으로 자리를 찾을 수 없을 정도로 한인 세탁소가 늘어났으며, 솜씨 좋고 근면한 한인 세탁소에 대한 평판이 좋아 문을 여는 곳마다 성업했다. 이들 한인 세탁소는 주로 다운타운 북쪽 벅헤드, 던우디, 알파레타, 마리에타, 노크로스, 로렌스빌, 스톤마운틴 등지에 밀집되어 있었고 계속해서 둘루스, 로렌스빌 북쪽으로 새로이 생겨났다. 특히 1996년 올림픽을 계기로 I-75, I-85, 400번 도로 북쪽으로 속속 개발이 되어 퍼블릭스나 크로거 같은 대형 수퍼마켓 주변에 상권이 새로 생겨나면서 한인 세탁소가 많이 생겨났다.

1985년 문상호씨가 세탁 장비를 취급하면서 세탁소 개업에 필요한 세트업(setup) 사업을 전개했고, 1987년 정성두씨가 화학 약품 회사와 옷걸이, 비닐백 등을 취급하는 재료 회사를 시작하였으며, 원용각씨(이스턴 머쉬너리)와 강성태씨(델타 세탁 장비)가 딜러쉽을 갖춘 장비 회사를 차렸다. 이러한 사업들은 한인 세탁업소의 개업을 촉진하는 데 크게 기여하였다.

애틀랜타 한인 중 세탁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모여 협회를 구성한 것이 1986년이었는데 이 때 한인 세탁소는 30여 개였으며 협회 회원은 약 15명이었다. 그 후부터 1990년까지 한인 세탁소는 약 1백 10개로 늘어났으며 1993년과 1994년에 이르러서는 인구증가와 북쪽 지역 개발 붐을 타고 급속도로 증가하여 새로 생겨나는 세탁소의 70~80%가 한인이 개업하는 것이었다.

세탁협회의 발족 후 10년이 지난 1996년 애틀랜타와 그 인근 지역에 한인이 운영하는 세탁소는 2백30여 업소로 집계되었고, 1997년 기준으로 애틀랜타와 그 인근의 한인 소유 세탁소는 349개 업소에 1천8백여 명의 종업원이 종사할 정도로 급격히 증가했다. 이러한 세탁소의 연평균 매출액은 22만달러선이었다. 그러나 이러한 세탁업종에 대한 인기는 한 때 세탁소 매물은 적으나 세탁소 수요자가 훨씬 많아 세탁소 매매 가격이 턱없이 오르게 하는 요인이 되기도 했다.

198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불과 8만 달러 선에 거래되던 세탁소가 한인의 수요 증가와 함께 매상에 의한 거래 방식 전환으로 10년 후인 1990년대 중반에는 평균 25만 달러 선으로 상승했으며 이에 따라 과열경쟁과 이윤감소라는 세탁업종 경영 환경의 악화를 가져오기도 했다. 이에 따라 세탁업계도 세수의 고객관리를 위해 컴퓨터를 익히고 사무를 전산화함으로써 서비스 개선과 수익 증진을 꾀하지 않으면 안되는 부담감을 가지게 되었다.

특히 1997년~1998년 들어서는 세탁업계가 포화 상태로 되면서 과밀 현상에 따른 극심한 가격 경쟁과 종업원 수급난과 인건비 상승 등의 어려움을 겪게 되었고, 입지가 좋은 자리를 놓고 자리다툼을 하다 올라가는 권리금과 높아가는 임대료 등으로 인하여 세탁업계는 몸살을 앓게 되었다.(한인이민사 160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