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직장암 말기 선고를 받았다. 암세포가 벌써 6~7년이나 몸 안에서 자라고 있었지만, 그저 조금 아픈 것이려니 여기고 목회에만 전념하던 무딘 목사였다. 암을 말기에 발견하면 2~3개월을 넘기지 못한다. 은총의마을교회 엄두섭 목사의 이야기다.

엄 목사는 암 말기 판정을 받은 이후 놀랍게도 수술을 받고, 1년에 한번씩 정기검진만 받아도 될 정도로 완쾌됐다. 말기 암이면 타 장기기관에도 퍼져있는 것이 일반적인데 암 덩어리가 퍼지지 않아 가능한 일이었다. 여기에 최고 군위관 의무사령관과 교인들의 기도, 재정적 지원이 큰 몫을 차지했다.

엄 목사는 “하나님께서 암이 퍼지는 것을 막아주셨다고 믿는다. 아직 할 일이 있어서 살려주신 것 같다”고 말했다.

38년 군목생활을 정식 은퇴한 후 미국 애틀랜타로 향하는 비행기에 몸을 실은 것이 벌써 11년 전이다. 목가가 딸려있는 120년 된 전통 조지아식 가옥을 구입해 폐허가 된 집의 가시덤불을 걷어내고, 손수 뒷밭을 일궜다. 근 40년을 섬겨오던 젊은이 사랑을 놓을 수 없어 은총의마을교회를 시작하고, 전인교육을 위해 카로스버시티(KAROSVERSITY)를 열었다. 카로스버시티는 헬라어 ‘은혜스러운’이라는 뜻의 Karos와 영어 University의 합성어다.

엄 목사는 “생활목회자, 생활설교자라는 말을 좋아할 만큼 삶 속에서 드러나는 신앙인으로서의 전인교육이 평생 목회의 철학”이라고 말하며 “지나가는 유학생부터 직장인까지 신학공부는 물론 농장체험, 봉사활동 등 전인교육을 받을 수 있는 이 프로그램을 참가하게 권한다. 잠깐 혹은 전 과정을 수료하면서 삶의 변화를 체험하고 있다”고 말했다. 10년 동안 거쳐간 한인들만 3~4만 명은 될 것이라고.

“한번 군목은 영원한 군목”이라는 액자를 걸어놓을 만큼, 은퇴한 지 10년이 지났지만 마음만은 여전히 군목 그 때 그대로다. 젊은 시절, 그가 사병을 제대하고 군목을 결심한 시기는 바야흐로 격동의 시기, 박정희 대통령 서거 후 12.6, 12.12 사태 등으로 군사적으로 혼란하던 때에 청년 엄두섭은 다시 군대로 들어갔다. 15사단, 진해통합병원, 특전사 5공수여단, 5사단, 65사단, 1공병 여단, 대전통합병원, 수도군단공병단 등에서 15년 간 군목으로 활동하고, 대학학군단을 22년 섬겼다.

공수부대의 특별 훈련, 낙하산 타기, 절벽 타기에도 동행해 사병들의 사기를 북돋웠다.

▲38년 군목생활 은퇴 이후 애틀랜타에서 새로운 하나님의 군대 양성에 남은 생을 바치고 있는 엄 목사가 군목시절 입었던 의복을 보여주고 있다.
군대생활이 힘들어 탈영 직전에 있는 이들, 심지어 자살을 결심한 사병들까지 상담으로 지원해 마음을 돌리고, 상담 후 되려 장기 군 사관으로 지원하는 이들도 생겨났다. 10개 부대를 거치며, 엄두섭 군목 아래 세례를 받은 장병은 3천여 명, 군선교사 신학생 등으로 진로를 전향한 장병도 7백여 명에 이른다고 한다.

엄 목사는 “예전에는 450명 정도 군목이 있어서 1 군목 당 3천여 장병을 맡았었다. 그러나 요즘은 230명 정도로 절반이나 군목수가 줄어들었다”고 염려하면서 “군종선교사로 민간 목사님이 350여명, 파트타임 선교사가 300여명 정도 들어가 있어서 그나마 다행”이라고 말했다.

군목 시절, 대한 신학(부대 내)을 가르친 경험을 살려, 현재 애틀랜타에 전인교육을 위한 카로스버스티를 연 이유도 “차세대들에게 한국정체성을 심고, 미국 사회의 주인으로 살아가도록 돕기 위해서”다. 어떤 이들은 이것이 조금만 더 빨리 생겼다면 한국주(State)도 미국에 생길 수 있었겠다는 칭찬을 해 올 정도라고. 신학공부는 전문적으로, 한인신학교수를 초청해 열고 있으며, 농장체험, 봉사활동을 통해 봉사정신을 키우고 있다.

에스겔 37장의 마른 뼈가 살아나 큰 군대를 이룬 것처럼 은총의마을교회가, 그리고 카로스버스티가 큰 생기대군단으로 일어나길 바라고 기대한다는 엄 목사. 그는 “전인목회 차원에서 강대상에 국한돼 있는 것이 아닌 생활 설교자로 남고 싶다. ‘모든 영광은 하나님께, 모든 공로는 성도들에게, 나는 오로지 책임감만 갖는다’는 구호를 평생 철학으로 삼고 있다”고 말했다.

엄 목사는 기자에게 자택이자 교회가 있는 농가에서 두부축제나 옥수수축제를 할 때 꼭 한번 다시 오라며 당부했다. “거창한 축제는 아니라도 직접 기른 옥수수를 삶고, 두부도 직접 가마솥에 만드니 와서 한번 들르라”고 따뜻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미국에 살면서 한국인으로의 자부심을 잃지 말아야 미국의 진정한 주인이 될 수 있다는 그의 전인목회 철학 때문에 하나님께서 그를 직장암 말기에서 살리시고, 사명을 새롭게 하신게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