텍사스 교육위원회는 지난 5월 21일 미국의 기독교 전통과 보수적 가치를 강조하는 내용의 교과서를 채택하며 지난 수개월 간 텍사스 초중고등학생 교과서 내용을 둘러싸고 벌어졌던 미국 보수와 진보 간 대결을 일단락냈다.

지난 1월 교과서 내용 수정이 시작되면서 불거진 이 대결은 이른바 ‘문화전쟁’(Cultural War)으로 불리우며 미국 사회의 주목을 받았다.

문화전쟁이란 낙태, 동성애, 크리스마스 등의 이슈에 대한 미국 보수와 진보 간 극명한 시각 차이로 양측 간에 벌어지고 있는 팽팽한 대결의 모습을 표현하는 말이다.

텍사스에서는 15명으로 구성된 교육위원회가 초중고 공립학교 교과서 내용을 수정하는 권한을 갖고 있다. 이들이 세운 기준에 따라 출판사들은 교과서를 출판해 주 내 480만명의 초중고 학생들에게 배포하게 된다.

텍사스는 캘리포니아 다음으로 최대교과서 시장이라 여기서 결정되는 교과서는 사실상 미국 전체 공립학교에 영향을 주고 있고 교과서 내용 수정은 10년에 한번 이뤄지기 때문에 이번 텍사스 교과서 내용 수정은 상당히 중요한 것이었다.

이런 배경에서 현재 텍사스주 교육위원회 다수를 차지하는 보수성향의 위원들이 교과서에 보수적 내용을 강화하자 진보세력이 특정정치적 이념을 주입하려는 것이라며 반발한 것이다. 결국 지난 3월 12일 임시표결에 이어 이번 최종표결에서도 교과스 내용을 둘러싼 문화전쟁은 미국 보수의 승리로 끝났다.

이번 결정으로 유지되거나 변하는 텍사스주 공립학교 교과서의 대표적 내용은 이렇다.

진보적 위원들은 역사책에서 시대를 구분할 때 ‘BC’와 ‘AD’ 대신 ‘BCE’와 ‘CE’로 대체할 것은 주장했지만 그대로‘BC’와 ‘AD’가 쓰이게 되었다. ‘BC’와 ‘AD’는 각각 ‘Before Christ’와 ‘Anno Domini’의 약자로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을 전후로 역사를 구분하는 의미다. 하지만 ‘BCE’와 ‘CE’는 각각 ‘Before Common Era’와 ‘Common Era’로 예수 그리스도를 뺀 개념이다.

미국의 건국아버지들의 기독교신앙이 강조되고 건국문서들이 성경의 원칙, 특히 모세가 세운 원칙에 영향을 받았다는 내용이 추가된다.

미국역사책에서 토마스 제퍼슨이 18세기, 19세기 계몽주의를 불러일으킨 인물에서 빠지고 대신 존 칼빈이 들어갔다. 진보주의자들은 토마스 제퍼슨이 기독교인이 아니기 때문에 의도적으로 뺐다고 비판했다.

또 1980년대와 90년대 보수주의자들의 부상, 즉, ‘미국과의 계약’(Contract with America), 헤리티지재단, 도덕적 다수(Moral Majority), 전국총기협회 등의 내용이 추가되었다. 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계 미국인 뿐 아니라 독일계 및 이탈리아계 미국인도 수용소에 갇혔다는 사실이 추가되어 그동안 인종차별차원에서 일본계 미국인만 갇혔다는 비판을 불식시키려고 했다.

경제책에서 학생들이 공부해야할 경제학자로 자유시장경제이론의 양대거목인 밀톤 프리드만과 프리드리히 폰 하예크가 추가되었다. 그동안은 아담 스미스, 칼 막스, 존 케인즈만 있었다.

‘자본주의(Capitalism)’라는 표현이 ‘자유기업시스템(Free-enterprise system)’으로 바뀌었다. 자본주의라는 말이 갖고 있는 부정적 이미지를 제거하려는 의도라는 게 중론이다. 정부의 과세와 규제가 개인기업들의 활동을 제한하는 내용도 포함되었다.

사회책에서는 민주당의 ‘위대한 사회(Great Society)’정책이나 소수민족우대정책이 ‘예기치 않은 부정적 결과’를 초래했다는 내용이 추가되었고 그동안 모든 사회문제를 국가나 사회탓으로 돌리는 것을 막기 위해 십대자살, 폭력, 성, 마약 등의 사회문제에 개인책임이 강조되었다.

좋은 시민의식(good citizenship)의 정의가 종래의 ‘정의, 진리, 평등에 대한 믿음과 공공선을 위한 책임’에서 ‘다른 사람에 대한 존경과 개인의 책임, 투표와 공무원되기의 중요성’으로 바뀌었다. 이번 교과서 내용을 주도한 보수성향의 돈 멕레로이 교육위원은 “공공선에 대한 책임은 공산주의 철학으로 조심스럽게 몰고 가는 ‘리버럴’의 개념이기 때문에 뺐다”고 밝혔다.

미국 정부를 표현할 때 ‘민주적 사회’(democratic society) 대신 ‘헌법적 공화국’(Constitutional Republic)’을 사용하도록 했다. 학생들이 독립선언서와 미국 헌법의 중요성을 배우는 주간을 ‘자유를 기념하는 주’(Celebrate Freedom Week)라고 부르며 기념하도록 했다.

UN 등 국제기구가 미국의 주권을 침해할 수 있다는 것도 학생들이 배워야 하는 교과내용으로 추가되었다.

1960,70년대 힙합문화를 중요한 미국 문화운동으로 넣으려는 진보위원들의 노력이 무산되었다.

멕레로리 위원은 “현재 학교가 지나치게 진보좌파로 치우져있어 학교에서 가르쳐지는 역사가 많이 비뚤어져 있다”며 “이번 교과서 수정은 균형을 이루려는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현재 미국대학에서 가장 인기있는 역사책은 막스적 시각에서 미국역사를 본 하워드 진(Howard Zinn)의 ‘1492년부터 현재까지의 미국의 민중 역사’(A people’s History of the United States: From 1492 to the Present)이다.

케이아메리칸 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