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가정의 의미를 되새기는 따뜻한 달이다. 교회들은 각종 가정 관련 행사를 열고, 설교를 통해 가정의 변하지 않는 기능인 사랑과 희생의 메시지로 교인들의 내면을 돌아보고 있다.

그러나 진정한 영적 가족인 교회 안에서는 소통이 잘 이뤄지고 있을까? 밝은 웃음과 화려한 겉모습 뒤에 말 못할 외로움과 허무함이 여전히 존재하는 교회는 아닌가, 청소년 사역자에게 모두 맡겨두고 청소년들의 사역이라면 뒷전인 한인교회의 모습은 아닌가 돌아봤으면 좋겠다.

어떤 이들은 이민교회는 한인 어른 중심이라는 말도 한다. 청소년 사역의 중요성은 알고 있지만, 재정이 빡빡한 이민교회의 현실상 어른사역에 초점을 맞출 수 밖에 없다는 말도 들려온다.

미국의 한인청소년들은 선교적 재원으로, 한인교회의 미래라고 부르짖으면서도 실제로 교계의 투자나 관심은 그리 많지 않아 보인다. 현실 상 어려운 것이 사실이지만, 관심은 늦출 수 없지 않는가?

미국에서 자라나는 청소년의 경우, 정체성의 혼란을 겪는다. 정체성의 사전적 의미는 ‘변하지 아니하는 존재의 본질을 깨닫는 성질, 또는 그 성질을 가진 독립적 존재’다. 즉, 자신의 존재 가치를 찾고 있다는 말이다.

하나님께서 나를 창조하시고 이 땅에 보내셨다는 창조신앙을 가진 기독교인이라면 누구나 동의할 것이다. 정체성은 교회 만이 알려줄 수 있다는 것을….

우리는 아직 조승희 사건의 반성과 후회를 잊지 말아야 한다. 어릴 때부터 교회를 다녔지만, 자신의 아픔과 슬픔은 절대로 털어놓지 않고 꽁꽁 숨기다가 결국 분노로, 돌이킬 수 없는 상처로 터져버린 그의 사건을 한인교회는 더욱이 잊지 말아야 한다.

요즘 10대들은 소셜네트워킹의 발달로 지나친 관계 중심의 삶을 살아가고 있다.

최근 미국사회 법안채택으로까지 번지고 있는 문제 중 하나인 왕따 자살 사건을 살펴보자. 늘 A를 받는 우등생이 2년 간의 왕따를 견디다 못해 자택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는 안타까운 사태가 발생했다. 캘리포니아 산호세에서는 왕따를 견디다 못해 자살시도를 한 후 심각한 뇌손상을 입고 일상생활이 불가능해 진 10대 소녀의 이야기도 들린다.

왕따로 인한 자살이 새삼 매스컴을 타고 있는 이유는 바로 소셜네트워킹으로 인한 관계 스트레스의 급증 때문이다. 페이스 북 등 소셜네트워킹이 발달하면서 24시간 사생활이 노출된 삶을 살아가는 청소년들은 스트레스가 어른의 상상을 초월하고 있다.

한 청소년사역전문가는 "현대 청소년들이 받는 스트레스는 불과 10년 전 청소년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크다"고 말했다.

그만큼 관계를 중시하는 세대라는 뜻이기도 한데, 과연 어른들과의 관계도 중시하고 있을까? 바로 가정의 달의 의미를 여기에서 찾아보려 한다.

청소년들의 관계집착은 페이스북, 트위터, 아이폰 등 소셜네트워킹이 발달하면서 더욱 상승세를 탔으며, 이런 상황은 자녀세대를 이해하고자 겨우 컴퓨터를 배우기 시작한 어른들에게 당황스런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그들의 눈높이에 맞춰 페이스북을 시작하고 아이폰을 들고 다닌다고 해서 그들과 소통할 수 있을까?

교회의 어른들은 아이들의 필요을 찾고 시대를 읽을 수 있는 눈이 필요하다. 일례로 화장실에 가는 것까지 문자로 알리거나, 페이스북에 올릴 만큼 끊임없이 누군가와 소통하려는 세대. 그들이 끊임없는 관계에서도 채워줄 수 없는 목마름을 채워줄 시원한 샘물, 복음이 그들에게 필요한 시점이다. 아무리 세상이 변했다고 해도, 말씀은 변하지 않았으며, 말씀하시는 예수님도 동일하시기 때문이다. 바나그룹의 조사에 따르면 미국 대학생의 4%만이 성경말씀을 정확성을 믿는다고 하니 청소년 사역의 중요성은 강조해도 지나지 않을 것이다.

(성령은 하나요, 주도 하나지만, 은사는 모두 다르다??)는 성경구절처럼, 각 교회가 추구하는 비전과 사명이 다르다 할지라도, 서로를 이해하고, 급변하는 사회를 따라가다 영혼의 메마름을 채울 수 있는 진짜 방법을 잃어가는 세대의 불안을 메워줄 한인교회의 따뜻한 손내밈이 필요한 때이다.

5월, 서로를 돌아보는 애틀랜타 교계 및 교회가 되길 희망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