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운타운, 벅해드지역 숨어있던 세대 유입 ‘젊은교회’
지난해 11월 중앙장로교회 한병철 목사가 부임한 이후 교회에는 다운타운, 벅해드지역에서전문직에 종사하거나 학업 중인 젊은이들이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한인타운 북상과 함께 30-40분 이상 걸리는 교회를 쉽사리 찾지 못하던 세대가 모여 드는 것이다. 얼마 전 자모(子母)실이 비좁아져 늘리고, 어린아이들을 위한 놀이터 공사를 시작했다. 변화를 인식하지 못하던 성도들도 어느새 뛰어다니는 아이들로 북새통을 이루고, 새로운 활력이 넘치는 분위기에 덩달아 신이 났다.

“교회가 위치한 던우디 지역은 한인들이 몰리는 곳은 아닙니다. 하지만 던우디, 벅해드, 다운타운 지역에 30대들이 꽤 있고, 한인학생들이 많은 대학들에서 가까워 청년회는 전체 교인의 1/4을 차지할 정도입니다. 또 노인아파트에서 변함없이 오시는 어르신들이 기둥처럼 든든하게 계십니다. 단기적으로 보면 한인들이 쉽게 들려보고 할 위치는 아니지만 미국생활은 자동차 중심인 만큼 별반 문제될 것은 없다고 봐요.”

인디애나주 미국교회 내 한인회중을 맡아 사역하던 7년의 목회를 접고 애틀랜타 생활을 시작한지 4개월여. 부쩍 심해진 꽃가루에 가라 앉는 목 때문에 연신 물을 마시며 ‘아직은 적응 중’이라고 웃는 한병철 목사는 ‘무엇보다 따뜻해서 좋고, 한인들이 많아 한국분위기가 새롭다’고 소감을 전했다. 교회에 젊은이들이 모이는 것은 위치도 이유겠지만 담임 목사와 ‘코드’가 맞기 때문은 아닐까?

▲어린이들이 새로 생기게 될 놀이터를 기대하며 성도들에게 감사하는 마음을 담아 그린 그림을 전시했다.

다양한 교회, 신학교 경험하며 균형 잡힌 목회관 정립
연세대학교 사회학과를 나와 한신대학교 신학대학원을 마치고 2002년 도미해 시카고 맥코믹세미나리에서 석사과정을, 현재 고든콘웰세미나리에서 목회학 박사과정을 이수하고 있는 한병철 목사는 학문적으로 ‘진보적 신학’의 카테고리에 든다. 사실 대학 때부터 학생운동과 연관된 활동에 힘쓰던 그는 신학공부도 사회, 인권운동의 비전을 이루기 위해 선택한 길이었다. 목회자가 된 계기를 묻는 질문에 한병철 목사는 뜬금없이 ‘지방자치제’를 이야기했다.

“90년대 초부터 시작된 지방자치제 선거가 실시되면서 장애인 복지활동에 힘쓰던 한 목사님께서 구의원에 출마하시겠다면서 선거를 도와달라고 하셨어요. 아무 사전지식이 없는 상태에서 뛰어들었지만 막상 준비하면서 현실정치와 괴리를 느끼고 포기하셨어요. 이후 목회하시겠다면서 저를 전도사로 부르셔서 설교, 심방 등 여러 가지 일을 맡기셨는데 교회 목회의 의미와 소박한 교인들의 모습, 그리고 나름대로 탤런트가 있음을 발견하고 사회현장을 바꾸는 것도 중요하지만 교회와 성도들이 바뀌면 더 영향력 있는 일을 하겠다는 소명을 발견했죠.”

신앙적 배경에 대해 ‘기장 토박이’라고 소개한 한 목사는 명동 향린교회가 모교회지만, 청소년기 6년 정도 동네 예장 소속 교회를 다니며 보수적인 한국교회 속에서 신앙적 성숙을 경험했고 70-80년대 부흥회가 한창일 때 뜨거운 은혜체험도 많았다고 덧붙였다. 이런 경험이 ‘기장의 사회참여적인 관심과 예장의 보수적 목회가 어우러진 균형잡힌 목회관’으로 목회를 이끌어가는데 많은 도움이 되고 있다고 했다.

여기에 미국 신학대에서 교단과 인종을 아우르는 ‘Multi-cultural’ 신학교육은 닫혀있던 시각을 열어주고,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왔다. 이를 통해 첫 목회지인 인디애나주 First Presbyterian Church에서 한인회중을 이끌며, 주류사회와 한인들을 연결하는데 큰 원동력이 됐다.

▲교단 내에서도 다문화 사역에 관심을 갖고 다양한 활동을 벌여온 중앙장로교회는 앞으로도 커뮤니티와 교회를 연결하는 일에 힘쓸 것이라고 밝혔다. 교회 외관.

교회는 한국 알리는 첨병(尖兵)
한병철 목사는 같은 교단 소속이며 약 1,500명이 출석하는 First Presbyterian Church에서 한인회중을 담당했다. 인디애나주는 다른 대도시와 달리 따로 한인타운이라 불리는 곳이 없을 정도로 한인들이 적은 곳이다. 한인 커뮤니티도 따로 없고, 주류사회 속에도 소속되지 못해 고립된 삶을 살아가는 한인들의 모습을 본 한 목사는 교회를 매개체로 한인들을 미국 커뮤니티에 연결하고 한국을 올바로 알리는 일에 힘썼다.

“인디애나에서 활동들은 퍽 의미가 있었어요. 한국전 참전용사들 모임과 연결돼 일년에 두 차례 교회로 초청해 푸짐하게 대접하고 감사를 표시했죠. 한번은 참전용사들이 각 학교를 다니며 한국전과 한국에 대해 알리는 ‘Tell America’ 시간을 따라갔는데 이분들이 자료는 전쟁의 폐허에서 벗어나지 못한 1950년대 모습이었죠. 나중에는 참전용사 이야기 후에 제가 나가서 갖고 있는 엘지, 삼성 셀폰을 한번 보라면서 지금은 폐허 속에서 세계 경제대국으로 발전하고 자동차를 생산하는 선진국이 됐다고 하면 아이들도 좋아하고 참전용사들도 자랑스러워했죠. 30개 정도 학교를 다녔고, 교회에 부채춤팀을 만들어서 카운티나 학교축제에서 공연도 했고요, 대학과 연계해서 한국영화의 밤 등 한국을 알리는 전도사 역할을 자처했어요. 이곳에 떠나 올 때 교인들도 서운해했지만, 참전용사들도 무척 아쉬워하면서 여전히 카드를 보내오세요.”

앞으로 기회가 된다면 애틀랜타에서도 커뮤니티와 학교에 연결되는 활동을 펼쳐보고 싶다고 밝혔다. 애틀랜타는 한인커뮤니티가 발달됐지만 Safety Zone에만 머물려고 하는 한인들에게 이웃들과 함께 어울리는 방법을 알려주고, 중앙교회는 그 다리역할을 자처할 것이다.

▲미국교회를 사서 입당한 중앙장로교회는 곳곳에 고즈넉한 아름다움과 여유가 엿보인다. 본당 모습.

무숙자 선교 ‘빵과 커피가 복음’
중앙장로교회는 지역사회 섬김에도 열심이다. 지역 내에서 가장 먼저 무숙자 선교, 히스패닉 섬김을 시작한 교회다. 일명 ‘빵 선교’라 부르는 이 사역은 매주 토요일 아침, 도라빌에서 노동일을 하는 히스패닉들에게 매주 도넛 12개가 담긴 박스 20개 가량을 나눠준다. 또 매달 다운타운 쉘터를 찾아 무숙자들을 섬긴다. 직접 복음을 전하는 일보다 배고프고 헐벗은 이들에게는 ‘빵과 커피’가 복음이 될 수 있다는 신념으로 누가 알아주던 말던 꾸준히 이어왔다. 앞으로는 라티노교회와 연결해 체계적으로 활성화시킬 방법을 찾고 있다.

“중앙교회는 로드니킹 사건으로 촉발된 LA폭동의 영향이 애틀랜타까지 미치는 것을 심각하게 여기고 노회에 한흑성가제를 제안해 시작했습니다. 이후 의미를 확대해 다문화 크리스천 성가제로 발전해 매년 열리고 있습니다. 앞으로도 인종과 문화의 다름으로 발생하는 갈등을 중재하고 그리스도 안에서 융합하는 일을 계속하고 싶습니다.

이외에도 중앙교회에서는 인근 노인아파트 노인들을 섬기는 소망회를 활성화 시키고, 한인회 노인회에서 제공하는 여러가지 프로그램에 차편을 제공하는 등 어느 누구도 소외되지 않는 섬김에 힘쓸 예정이다.

이민자들, 삶의 목표 조정 필요
마지막으로 목회 방향을 묻자 그는 자신을 포함해 성도들이 ‘생활 신앙인’이 되길 바란다고 했다. 신앙과 생활의 유리는 사회 속에서 마땅히 선한 영향력을 끼쳐야 하는 그리스도인들이 오히려 질타 받는 모습으로 비춰지고 있다고 안타까워했다. 또 뿌리를 내리는 신앙을 이끌어 가겠다고 밝혔다.

“미국교회는 교세가 감소해 가고 있었지만 그 속에 훌륭한 영적 유산과 시스템이 있고 여기에 한인들의 액티브하고 순수한 신앙을 접목시키면 작아도 파워풀한 영향력을 미칠 수 있는 교회가 될 것입니다. 행복 하려고 미국에 건너왔는데 너무 일만 하다 정작 행복을 누리지 못하고 불행하게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다람쥐 쳇바퀴 돌 듯 힘들게 돈 버는 목적이 행복이라면 더 좋은 집, 더 좋은 차, 더 좋은 학교를 추구하다가 정작 누리지 못하는 실수를 범하지 않도록 삶의 목표를 조정하고 행복을 누리는 삶을 살 수 있도록 시각을 조정해 주는 목회를 하고 싶습니다.”

중앙장로교회는…
4011 Chamblee-Dunwoody Rd., Chamblee GA 30341에 위치하고 있으며, 매 주일 오전 9시, 11시 예배를 드리며, 중고등부 예배와 주일학교가 11시에 열린다. 수요예배는 오후 7시 30분, 금요기도회는 오후 8시며 평일 오전 6시 새벽기도회를 드린다. 문의 (770) 457-1998, www.joongangch.or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