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6년 애틀랜타에서 하계 올림픽이 개최됨에 따라 한인 사회는 다양한 활동을 전개하였다. 애틀랜타 올림픽은 한인들의 행사가 아니라 전 세계 모든 민족들의 축제였다. 그런데 그 올림픽이 애틀랜타에서 이뤄졌기 때문에 애틀랜타 한인 사회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이 절에서는 먼저 애틀랜타 올림픽의 개막식을 통하여 그 올림픽의 규모와 의의를 기술하고 난 다음에 올림픽과 관련한 한인 사회의 여러 활동을 기술하고자 한다.

(1) 애틀랜타 올림픽 개막식

근대 올림픽 창설 1백 주년을 맞아 올림픽 사상 가장 많은 197개국 1만 5천여 명의 선수가 참가한 제 26회 하계올림픽대회가 1996년 7월 19일 오후 8시30분 화려한 개막식을 갖고 17일간의 경기 일정에 들어갔다. 애틀랜타 올림픽은 빌 클린턴(Bill Clinton) 대통령의 개회선언으로 역사적인 시작을 알렸다.

197개국 선수단은 1회 대회 개최국 그리스에 이어 알파벳 순으로 입장하였고 아시아 국가 중에서 가장 많은 5백3명의 선수단을 파견한 한국은 기수 최천식(배구)을 앞세워 케냐에 이어 96번째로 스타디움에 입장하였다. 북한은 139번째, 미국은 마지막으로 입장하였다.

1996년 4월 19일 아테네 신전에서 채화되어 그 동안 1만 명이 넘는 주자들의 손에 들려 미국 전역을 순회한 올림픽 성화는 미국의 여자 수영 스타 재밋 에번스에 이어 왕년의 프로복싱 세계 헤비급 챔피언 무하마드 알리에 넘겨졌고 알리는 떨리는 손으로 성화대에 성스러운 불꽃을 붙여 애틀랜타의 밤하늘을 밝혔다. 애틀랜타 96 올림픽 성화는 한인으로는 유일하게 김태형 박사가 메모리얼 드라이브 선상에서 성화를 들고 1마일을 뛰는 영광을 갖기도 했다. 4회 연속 올림픽에 출전하는 미국 여자 농구팀의 테레사 에드워즈(32세)는 선수를 대표해 대회 기간에 페어플레이를 할 것을 엄숙히 선서하였다. 개막식 다음날부터 197개국 선수들은 금 604개를 포함한 메달을 놓고 열전에 들어갔다.<계속>(한인이민사 145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