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신론자들의 우상’으로 추앙받는 다윈은 과연 무신론자였는가? 그의 진화론은 무신론적인가?

과학사학자 박희주 교수(명지대)가 이 물음에 ‘아니오’ 라고 답해 눈길을 끈다. <지상 최대의 쇼>, <만들어진 신>, <눈먼 시계공>, <이기적 유전자> 등을 쓴 도킨스로 대표되는 무신론자들의 뿌리이자 창시자라 할 만한 ‘다윈’에 대한 의미있는 반론이다.

27일 서울 신수동 서강대학교 R관에서 개최된 제13회 지적설계연구회(회장 이승엽 교수) 정기 심포지움에서 발제한 박희주 교수는 ‘다윈의 종교관과 진화론’ 발제에서 “다윈은 비록 전통적인 기독교 신앙에서 불가지론으로 변하기는 했지만 신을 적극적으로 부인하는 무신론자는 아니었으며, 다윈의 진화론 역시 ‘유신론적 진화론’의 성향이 강하다”고 지적했다.

다윈의 종교관
▲박희주 교수. ⓒ이대웅 기자



“성경의 모든 구절이 문자적으로 진리라는 데 당시 추호의 의심도 없었다”

어느 기독교 근본주의자의 고백이 아니다. 대학 시절의 다윈은 신의 존재를 확고히 믿었고, 당시 기독교 신앙을 따라 신이 생물을 각각의 형태대로 개별 창조했으며 생물은 변하지 않는다고 믿었다.

그러나 비글호를 타고 갈라파고스 제도 여행을 다녀오면서 진화론적 관점으로 점차 바뀌었다. <종의 기원>을 출간했던 50세 무렵에는 ‘신이 자연법칙을 통해 이 세상을 창조했으며, 창조 후 세계에 대해서는 직접 관여하지 않는다’는 이신론(理神論, deism)으로, 말년에는 ‘항상 그런 것은 아니지만 일반적으로 불가지론자가 내 마음의 상태를 나타내는 데 적절한 표현이라고 생각한다’며 불가지론(不可知論, agnosticism)으로 변화했다.

박희주 교수는 “종교 문제는 아주 민감한 것이었기 때문에 다윈은 공개적으로 자신의 의견을 드러내기를 매우 꺼렸지만, 개인적인 노트나 서신, 가족들을 위해 기록했던 자서전 등에서 단편적으로 나타나고 있다”며 “다윈이 종교에 대해 회의(懷疑)하게 된 것은 오히려 과학 외적인 문제와, 이에 따른 느슨한 상호작용의 결과라고 보는 것이 적절하다”고 밝혔다.

즉 형성 과정에 있던 그의 과학과, 싹트기 시작하던 불신앙 간에 일종의 공명이 일어났고, 이는 어느 한쪽이 다른 한쪽을 결과하는 일방향적 방식보다는 다층적 차원에서 지속적으로 영향을 주고받는 상호 작용이 이뤄졌다. 박 교수는 “다윈은 신앙에 대한 단절적 부정이 아닌, 불확실성 속에서 고민하며 점차 불가지론으로 점차 기울어졌다”며 “다윈은 최소한 자신의 고백대로 신을 부정하는 의미에서의 무신론자가 아니었음은 분명하다”고 결론내렸다.

다윈의 진화론

“사람의 죽음이나 벌레의 죽음을 신에 의해 설계됐다고 말할 수 없다면, 이들의 최초 탄생이나 생성 역시 필연적으로 설계됐다고 믿을 이유는 없다”

잘 알려졌듯 다윈에게 1842년 셋째딸의 죽음과 1851년 가장 사랑했던 첫째딸의 죽음이 가져온 충격은 헤어나기 힘든 고통이었고, 여기에 자신을 평생 괴롭히던 원인모를 질병은 고난 그 자체였다. 결국 다윈은 세상 도처에 존재하는 고통·고난과 자비로운 신의 개념을 조화시키는 데 큰 어려움을 겪었고, 이는 피비린내 나는 생존경쟁과 부적격자의 도태가 수반되는 자연선택, 즉 진화론적 자연관과는 잘 부합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다윈과 무신론을 연결해 무신론을 지지하는 결정적 이론으로 진화론을 제시하는 도킨스의 주장은 사실과 다르다고 박 교수는 지적했다. 다윈은 자연신학과 긍정적인 평행관계를 보여주기도 했다는 것이다. 박 교수는 “다윈의 진화론과 페일리 자연신학의 논증구조 간에는 상당한 유사성이 존재했으며 나아가 자연신학에 전제된 자연관은 상당 부분 다윈의 진화론에 공유돼 진화론 탄생의 배경이 되기도 했다”고 풀이했다.

다윈은 자연신학을 거부했지만, 이를 대체한 것은 ‘무신론’이 아닌 ‘자연의 법칙’이었다. 자연 법칙은 ‘창조주가… 법칙을 통해 창조했다’는 다윈의 고백처럼 다윈에게 신의 창조 수단이었다. 자연신학이 환경에 대한 생물체의 복잡한 적응에서 신의 손길을 발견하고 그 존재를 추론했다면, 다윈은 자연법칙에서 신을 발견했고, 이는 일종의 변형된 형태의 자연신학이라고 박 교수는 주장했다. 그는 “다윈이 자연신학을 고부했다면, 이는 페일리에 대한 거부였으며 그 빈자리를 메운 것은 다윈 버전의 자연신학이었다”고 덧붙였다.

박 교수는 “최소한 다윈은 자신의 고백대로 신을 부정하는 의미에서의 무신론자가 아니었음은 분명하다”며 “다윈은 자연의 법칙을 강조했고, 이 법칙을 신의 창조 수단으로 파악했다”고 발표를 마무리했다.

이날 심포지움에서는 이외에도 ‘설계추론과 특정화’, ‘상호 작용에 기초한 지적설계 논증’, ‘지적설계의 경험-분석적 증명방법을 찾아서’ 등의 강의와 함께 <다윈의 딜레마: 캄브리아기 화석의 미스테리> 영화가 상영됐다. 이 영화는 지난해 미국에서 제작됐으며, 진화론의 결정적 근거로 활용되는 캄보리아기 지층의 화석들이 사실상 진화론으로는 도저히 설명될 수 없음을 심도있게 다루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