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니스에도 이유가 있는지요?

Q: 저(P)는 미국에 온지 20 여년이 됩니다. 처음에는 유학생으로 왔는데, 결혼을 하고 나서 비즈니스를 시작했습니다. 아내와 함께 시작한 비즈니스가 힘들지만 그런대로 잘 되고 있습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제 마음 속에 무거운 걱정이 싹트기 시작했습니다. 처음에는 그게 뭔지를 잘 몰랐는데, 점점 그 걱정거리가 제 의식의 표면에 떠오르고 있습니다. 결혼해서 자녀를 낳고 비즈니스를 하면서 부지런히 살아갑니다만, 이렇게 날마다 다람쥐 쳇바퀴 도는 것과 같은 삶의 끝은 과연 무엇일까 하는 생각으로 밤잠을 설칠 때가 많습니다. 제 나이가 벌써 중년이 지나가는데, 이러다가 얼마 후에 노년이 되고 그때 지나온 나의 뒤안길을 돌아보면서, ‘나는 무엇을 위해서 어떻게 뛰어 왔는가’ 질문할 때, 나는 무엇이라고 정직하게 대답할 수 있을런지… 더우기 ‘크리스챤으로서 하나님을 위해서 네가 한 것이 무엇인가’라고 묻는다면… 지금까지 저와 저의 가족을 위해서 물질을 벌려고 열심히 뛰었는데 그것으로 충분한가? 스스로에게 자문해 봅니다. 누구나 이렇게 살면서 고민하다가 인생을 그저 끝내는 것인지… 목사님, 어떻게 생각하세요?

A: 마음 속 깊은 곳에 있는 갈등을 말씀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경제적으로 어려운 시기에 비즈니스가 잘 유지된다니 감사하고요. 부인과 마음을 맞추어 꾸준히 열심으로 일하시는 모습이 아름다워 보입니다.

성인이 되어서 살아간다는 것과 일한다는 것은 뗄래야 뗄 수 없는 관계인데, 날마다의 삶이 특별하지 않은 것처럼, 그 일이 무미건조하고 단조롭게 느껴질 때가 많이 있겠지요. P 님은 특히 인생의 중년기를 거치면서 의미의 문제에 직면하고 있다고 보여집니다. 칼 구스타프 융(Carl Gustav Jung)은 중년(mid-aged)에 다다른 많은 사람들을 카운슬링(counseling)하면서, 그들은 삶의 의미를 찾지 못해서 방황하며 갈등하고, 불안해하며 두려워하고 있다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의미(meaning)가 무엇입니까? 공부하는 학생은 내가 이 공부을 왜 하는가, 무엇을 위해서 하는가 하는 질문에 대답을 하는 것이지요. 마찬가지로, 일을 하는 사람은 내가 왜 이 일을 하는가, 무엇을 위해서 이 일을 해야 하는가 라는 질문에 대답을 하는 겁니다. ‘왜’라는 이유와 ‘무엇을 위하여’라는 목적 의식이 곧 의미를 만들어 냅니다. 더 할 나위 없이, 이민 사회에서 가족은 너무나 소중합니다. 더우기 가족에서 아버지의 역할은 매우 중요합니다. P 님은 가정에서 좋은 남편, 좋은 아버지인 것 같습니다. 가족 부양의 책임을 다하는 좋은 아버지인 것 같습니다.

그런데, 언제부터 그것으로 충분하지 못하다는 느낌을 받고 계신 것 같습니다. 말씀하신 것처럼, 세월이 흘러서 P 님이 지난 온 뒤안길을 돌아볼 때, 부지런히 열심히 살아왔지만, 어딘지 모르게 허전하고 공허한 공간을 만들어 왔다는 자책감이 들 수 있다는 뜻이지요. 그렇습니다. 초대 교회의 유명한 교부였던 어거스틴(St. Augustine)은 그의 책 <고백론> (Confession)에서 정직하게 고백했습니다. “내 안에 주님이 오시기까지 나는 진정 참다운 평안을 몰랐습니다.” 그의 말년의 고백입니다.

P님은 이미 예수님을 믿고 구원 받은 하나님의 자녀이십니다. 그런데, 문제는 P 님의 비즈니스가 하나님과 관계없이 잘 되는 것 같아서, 오히려 한편으로 마음이 불안하고 편치 않은 것 같습니다. 이것은 성령님께서 P 님에게 주신 마음이라고 믿어집니다. 하나님 앞에 진지하게 기도해 보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는 P 님의 비즈니스가 어떻게 운영되기를 원하시는지요? 그 비즈니스의 주인이 누구이기를 원하시는지요? P 님은 얼마나 예수 그리스도의 주재권(Lordship)을 인정하고 그 분의 뜻에 믿음으로 순종하는지요? 과연 P 님의 삶의 주인이 하나님이심을 인정하고 그 분이 왕이 되셔서 다스려 주시기를 간구하고 계신지요? 어떤 기독교 모임에서 한 순간의 뜨거운 은혜와 눈물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 은혜를 간직하고 지키고 순종하는 것입니다.

비즈니스 뿐만 아니라, P 님의 가정을 포함한 삶 전체가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으로 충만하여서,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참 의미와 자유를 날마다 경험하시기를 기도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