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분이 얼마전 제게 "목사님은 요즘 왜 시사성있는 발언은 하지 않으시나요?" 라고 질문을 했습니다. 할 말이 많은 사람 같은데 설교도 그렇고 글에도 사회 정치와 관련된 시사성 발언을 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제 대답은 "할말이 별로 없습니다." 였습니다. 왜 한국 사랑의 교회 2000억이 넘는 건축에 대해 말이 없는지, 왜 북한에 들어간 로버트 박에 대해 말이 없는지, 왜 아이티에서 아이들을 데리고 나오다가 아동납치혐의로 감옥에 들어간 미국 선교사들에 대해 한마디 말이 없는지 궁금하다고 했습니다. 정말 왜 나는 요즘 이런 문제들에 대해 조용한지 생각해 보았습니다. 여러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무엇보다 의견을 말하면 발전적인 대화나 토론이 어려운 이민사회 문화에 대한 불편함 때문인 것 같습니다.

며칠전에 케네소대학 '한국의 해 컨퍼런스' 에서 강의를 했던 브루스 커밍스 교수가 "통일을 위한 미주 한인들의 역할이 있다면?" 이란 기자의 질문에 "자녀들에게 역사에 대한 책을 많이 읽혔으면 한다…한국인들이 앞으로 통일을 이루려면 자녀들이 한국에 대한 책을 많이 읽고 공부하길 권한다." 는 말을 했다고 합니다. 정말 동감입니다. 교회도 그렇고 사회문제도 그렇고 '공부' 를 하지 않으면서 자기 생각들을 너무 쉽게 말하는 풍토가 문제입니다. 커밍스 교수가 말하는 '공부' 는 머리의 지식만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분 자신이 평화봉사단에 자원해서 한국에서 일을 했고 평생 한국에 대한 공부를 통해 한반도 역사발전을 위해 헌신을 하고 있습니다. 진정한 '공부' 는 지식의 축적이 아니라 '사랑함' 이어야 합니다.

유대인이 어떻게 세계인구 0.2%밖에 되지 않으면서 하바드 입학 30%와 노벨상을 30%나 받은 위대한 민족이 되었는지에 대한 질문에 어떤 학자는 유대문화의 '생각함의 중요성' 과 '건전한 토론문화' 라고 했습니다. 저는 요즘 이 문제를 많이 생각합니다. 잘못된 기독교문화 가운데 하나가 생각이 없는 믿음 강조와 자기 의견을 건강하게 표현하는 것을 억누르는 문화입니다. 그러다 보니 대화나 토론이 없고 자기 주장을 우기는 일이나 소리 지르는 것이 발달되어 있습니다. 무엇보다 '공부' 를 하지 않는 문제가 가장 큰 문제입니다. 이단과 사이비가 횡횡하는 것도 역시 성경공부를 제대로 하지 않는 교회의 열매입니다. 특별히 이민교회의 현실이란 '공부' 를 제대로 하지 않는 사람들이 교회 지도자들이 되다 보니 함부로 목소리 높이는 것이 지도자의 권위인양 착각하는 것입니다.

'공부'해야 합니다. 요한 웨슬레는 '그리스도인의 온전함' 에서 쓰기를 은혜 받은 교인들이 조심해야 할 것으로 첫째, 영적으로 교만하지 않도록 늘 깨어 기도하라. 둘째, 영적인 열정도 성경말씀에 그 모든 것을 시험해 보고 말씀에 순종하라. 셋째, 반율법주의에 빠지지 말고 "행함으로 믿음이 온전케 됨" 을 알라. 넷째, 선함을 게을리 하지 말라. 다섯째, 십자가를 지고 그리스도를 좇는 모범을 보이라. 여섯째, 분열주의자가 되지 않도록 조심하라. 영적인 교만이 가장 잘 보여지는 것이 자기 경험이나 체험을 너무 중요하게 여긴 나머지 다른 사람들을 쉽게 판단하고 정죄하고 비난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다른 말로 하면 성경말씀에 깊이 뿌리내리지 못하면 날마다 그리스도의 성품을 닮아가는 온전함에 이르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티찌아노 테르짜니가 쓴 '네 마음껏 살아라' 에 암에 걸려 세상을 떠날 날을 준비하는 아버지가 아들과 나누는 대화 가운데 보면 우리가 사는 세상을 보다 나은 곳으로 만드는 것은 서로에 대한 증오심으로 점철된 커다랗고 '시끄러운 혁명' 이 아니라 우리 내면에서 조용히 일어나는 '고요한 혁명' 이라는 내용이 있습니다. 오늘날 안티기독교 분위기는 많은 경우 '시끄러운 크리스찬들' 에 대한 비난이 많은 것입니다. 이번에 아이티에서 어린아이들을 데리고 나오다가 잡힌 선교사에 대한 뉴스를 들어보니 개인생활이 무책임하고 무계획한 인생을 사는 사람이라는 비난이 나오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본인은 하나님의 일을 한다는 자부심과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이니 하나님이 해결하실 것이라는 식으로 믿음 좋은 것처럼 말을 하고 있습니다. 선교한다는 사람들 가운데 하나님을 이렇게 아전인수격으로 이용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교회생활도 마찬가지입니다. 좋은 교인이 되려면 자기가 속한 교회에 대해 '공부' 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모르면서 자기 열심이나 열정으로 충만하면 도움이 되지 못합니다. 어떤 의미에서 교회도 학교입니다. 또 어떤 경우에는 병원과 같은 곳입니다. 예수님이 선생님이시고 의사입니다. 그러나 그 예수님에 대해 가르치는 담임목사가 어떤 목회철학과 신학을 가졌는지 공부하지 않으면서 자기 열심으로 바쁘면 본인도 신앙생활 힘들고 교회에도 덕이 되지 못합니다. 병원에 와서 환자가 의사노릇하려고 하면 골치아픕니다. 가정에도 가정을 움직이는 원칙이 있는 것처럼 교회도 그렇습니다.

내면에서 조용히 일어나는 '고요한 혁명' 이란 말이 참 좋습니다. 연못의 물이 고요해야만 자기 얼굴을 볼 수 있다는 말처럼 자기 자신을 조용히 만들어야 합니다. 그리고 '공부'를 통해 나 자신을 알고 하나님을 알고 세상을 알아가야합니다. 그런 사람만이 세상을 보다 나은 곳으로 만들어 가는데 쓰임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