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가 인디아나에 살 당시에 가끔 위스콘신의 메디슨을 방문할 기회들이 있었습니다. 아름다운 대학 도시인 위스콘신주의 메디슨이라는 곳에는 위스콘신대학교(University of Wisconsin)가 있습니다. 그곳에는 the Harlow Center for Biological Psychology 가 있는데 그 연구소는 1930년에 해리 하로우박사(Dr. Harry Harlow)에 의해 세워진 the Psychology Primate Laboratory가 발전한 것입니다. 해리 하로우는 1930년에 스탠퍼드대학교(Stanford University)에서 박사학위를 마치고 위스콘신대학에 온 후 원숭이들의 심리를 연구하는 일에 집중하였습니다. 그는 원숭이와 인간 간의 심리적 닮은 점에 대한 연구를 하고자 하였습니다.

그는 젖을 먹는 아기 원숭이들 앞에 엄마 원숭이 대신 두 개의 모조 엄마 원숭이를 만들어놓았습니다. 하나는 철사로 만든 엄마 원숭이(wire mother)를 만들어 그 가 슴에 우유병을 넣어두었습니다. 그리고 다른 하나는 부드럽고 두꺼운 천으로 만든 엄마 원숭이(cloth mother)의 가슴에 우유병을 넣어 두었습니다. 첫날에 아기 원숭이들은 두 모조 원숭이들 속에 있는 우유를 모두 빨아먹었습니다. 그러나 다음날부터는 철사로 만든 원숭이에게는 가지 않고 천으로 만든 원숭이에게만 모여들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부드러운 천으로 만든 엄마 원숭이의 우유만을 먹었습니다. 이 실험을 통해 동물들도 부드럽고 따뜻한 것을 원한다는 것을 알게 된 것입니다.

오래전에 필자는 옐로우스톤 국립공원(Yellowstone National Park)을 여행하였습니다. 그곳에는 많은 야생 동문들이 살고 있었습니다. 특히 다른 곳에서는 볼 수 없었던 버팔로(Buffalo)와 비슷한 바이슨(Bison)들은 매우 인상적이었습니다. 바이슨들은 그곳에 있는 노천온천 곁에 모여서 살고 있었습니다. 그들에게도 따뜻함이 필요했던 것입니다. 미국 북부의 길고 추운 겨울을 피해 많은 사람들이 따뜻한 남쪽인 이곳 애틀랜타로 이주하고 있습니다. 특히 나이를 들어갈수록 그 추위가 더 싫어진다고 합니다. 인간관계도 마찬가지입니다. 사람들은 날카롭고 딱딱한 사람보다 부드럽고 따뜻한 사람을 찾습니다. 그런 사람에게는 친구도 많게 마련입니다. 그런 특징을 온유함이라는 단어로 표현할 수 있습니다.

온유라는 것은 gentleness로 번역이 됩니다. 그것은 온화함이나 부드러움으로도 이해할 수 있습니다. 이것은 치우치지 않는 중용의 모습과 자신에 대한 절제의 모습을 포함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우리가 삶의 환경에 따라 부드러움의 여유를 잃고 거친 모습이 될 수 있습니다. 우리는 마음의 여유를 잃고 타인을 품어주는 넉넉함이 없을 수도 있습니다. 우리 안에 아픈 상처가 있어서 자칫 누가 건드리면 그만 소리지르고 울어버리는 부분이 있습니다. 그러나 성숙함에는 부드러움이 있습니다. 거칠어진 피부를 부드럽게 하고자 하듯이, 거칠어진 우리의 마음도 부드럽게 바꾸기를 힘써야 합니다.

또한 온유라는 단어는 온화함의 의미로도 이해할 수 있습니다. 결국 따뜻함이라고 쉽게 표현할 수 있습니다. 그 반대에는 차갑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우리는 따뜻한 사람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사람들은 추운 곳을 피해 따뜻한 곳으로 갑니다. 그곳에서 얼어버린 몸을 녹이고 휴식을 갖기를 원합니다. 이처럼 인격의 온화함은 다른 사람들을 편안하게 만드는 안식처가 될 수 있습니다. 그것에 둥지를 틀고 쉼을 얻고 위로를 받기를 좋아하게 됩니다. 힘들고 어려울 때, 그리고 외로움을 느낄 때 사람들은 이런 품을 찾게 됩니다. 이런 사람이 되려면 우리 자신이 철저히 죽어야 됩니다. 그리고 자신에 대한 많은 절제가 요구됩니다. 삶의 힘든 환경이 우리를 거칠게 만들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웃에게도 상처를 주며 편안함을 주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부드러움과 따뜻함은 우리 자신을 아름답게 만듭니다. 그리고 이웃과 사회를 아름답게 만듭니다. 금년에는 더욱 부드러움과 따뜻함이 있는, 그래서 힘들고 외로운 이들이 편안히 기댈 수 있는 우리의 모습을 소원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