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일간 천국행(行)을 준비하던 김 할머니는 그토록 바라던 눈물 없는 그곳으로 먼저 떠났다. 영혼과 육체가 함께 숨쉬는 인간의 생(生)은, 산소호흡기만으로 규정되지 않는 것이다.

이제는 김 할머니가 우리에게 남긴 여러 숙제들을 풀어야 한다. 크리스천투데이는 한국기독교생명윤리협회 추천으로 기독 의사인 박재형 교수(61·서울대병원 영상의학과)와 함께 김 할머니 관련 이슈들을 살폈다. 박 교수는 ‘식물인간’ 상태로 투병 중인 아내를 8년여간 보살피고 있는 ‘남편’으로도 잘 알려져 있다.

생명의 존엄성과 삶의 질이 충돌, 슬기롭게 해결해야
주관적이고 불확실성 내포된 사건 판결하는 우 범해


-기독 의사로서 ‘무의미한 연명치료’에 대한 재판 결과와 호흡기 제거를 어떻게 보는가.

“최종 판결에서 문제가 되는 점은 세 가지다. 먼저 ‘사망이 임박했다’는 말인데, 결과를 봐도 그랬지만 ‘임박’의 기준이 모호하다. 기대수명이 한 달이라면 임박한 것인가? ‘주님의 다시오심이 임박했다’는 말에서 알 수 있듯 사람에 따라 임박의 기준이 다르다. 또, 남은 기간이 며칠 되지 않으면 그 기간은 의미가 없는가도 묻고 싶다.

둘째로 회복 가능성이 없다고 했는데, 무엇이 회복인가? 어제보다 오늘이 더 나은 상태인가, 아니면 아프지 않던 상태로 돌아가는 것인가? 셋째, 치료가 의미없다는데, 누구에게 의미가 없는 것인가? 본인인가, 아니면 가족들인가? 이처럼 주관적이고 법으로 규제하기 힘든 사실들을, 불확실성이 많이 내포된 것들을 법으로 단정한 점에서 이번 판결은 무리하지 않았나 생각한다.”

-‘무의미한 연명치료’란 무엇인가.

“일반적으로 무의미하다는 것은 ‘삶의 질(Quality of Life)’과 관계가 있다. 의미있는 치료란 ‘연명’이 아니라 ‘회복’해서 다시 사회적으로 기능할 수 있는 상태를 말하곤 한다. 그런 점에서 이번 사례는 생명의 존엄성과 삶의 질 사이의 충돌로 볼 수 있다.

의학적으로는 뇌사 상태라면 돌이킬 수 없는(비가역적인) 사망 단계로 진입했다고 본다. 2주 이내에 심장사로 연결되기 때문인데, 물론 그 이상 생존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극단적으로 보면 아주 의미가 없는 것은 아니다. 시체가 아니기 때문이다. 삶의 질 측면에서는 장기기증 목적을 제외하고는 거의 의미가 없다고 볼 수 있다. 이를 다시 말하면, 뇌사가 아닐 때는 비가역적 상태가 아니라는 것이다. 뇌사가 아니라면 가역성이 있다. 모든 가능성이 끊어지지 않았다는 얘기다. 김 할머니도 뇌사에 가깝다고 봤지만, 뇌사는 아니었다. 뇌사가 아닌데 그렇게 판결한 것은 문제가 있다.

사람의 생명을 인본주의적 기준으로 판단해서는 안 돼

여기에는 생명윤리적인 위험이 있다. 사람을 이성적인 사고 여부나 기능 수행 능력으로 판단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크리스천으로서 생명은 우리가 판단할 문제는 아니다. 이처럼 삶의 질 문제도 인본주의적 기준으로 판단해서는 안 된다. 김 할머니의 201일을 무의미한 삶으로 보는 것은 당장 죽어도 좋다는 태도다. 이 201일은 살았지만 의미없는 것이었을까? 의미가 있다면 누구에게 있는 것일까? 김 할머니 본인에게는 과연 의미가 없었을까?

그렇지 않다. 영혼을 전제한다면 말이다. 정말 의미있는 삶이었을 수 있다. 그 영혼이 죽음을 준비하는 기간이 됐을 수도 있고. 의미가 없다는 의견도 나름 의미있다. 하지만 가족들만 봐도 할머니가 살아있다는 사실만으로 의미가 있었다. (죽어서) 묻힌 것과 병상에 있는 것은 다르다. 생명이 있는 한, 기독교적으로는 의미가 있다. 무슨 의미인지는 각자 의견이 다를 수 있다. 그러므로 생명이 있는 한, ‘무의미하다’는 말은 의미가 많든 적든 삼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일반적인 의료계 입장은 어떤가. 그리고 말기암 환자들의 경우 어떻게 하는 것이 좋겠는가.

“일반적인 논의는 상당히 현실적이고, 사회경제적이다. 상당 기간 진행된 말기 환자들의 경우 의료비 지출이 과다하기 때문이다. 또 생명연장술이 발달해 생명의 ‘무리한 연장’도 가능해졌다. 그래서 이번 법적 판단을 환영하고, 불필요한 치료가 남발될 우려 때문에 판단 기준이나 더 좋은 대안이 마련됐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그렇다고 기독교적인 입장이 살아있다면 무조건 모든 치료를 유지해야 한다는 말은 아니다. 말기암 환자들의 경우 투병 중에 갑자기 심장마비나 뇌출혈이 와서 인공호흡기나 심폐소생술을 써야 할 때를 대비해서 연장장치는 하지 않겠다고 미리 밝힐 수 있다. 죽음의 기회가 왔을 때 그렇게 할 수 있다고 본다. 항암치료가 더 이상 받지 않을 경우에도 더 이상의 치료를 받지 않고 통증치료만 받으면서 호스피스나 기도원으로 가서 조용히 죽음을 준비할 수 있다. 항암치료가 몸에서 들으면 당연히 계속해야 한다.

연명치료 중단, 법으로 제정되면 남발될 위험

주로 방법론적인 문제다. 치료 중단을 하기 전, 사전지시서 작성 여부나 김 할머니 경우처럼 본인 의사를 추정해서 적용할 수 있는지, 식물인간도 연명치료 중단 대상으로 포함할 것인지 등이다. 아까처럼 좀더 근본적인 이야기들은 사실 신앙이 있어야 말이 통한다. 가급적이면 생명유지 장치를 걸려고 할 때 판단기준을 제시하고, 그렇지 않을 때는 엄정한 기준을 세워야 한다. 법으로 정해서 이를 남발해서는 절대 안 된다.”

-아내가 투병 중인 입장에서 이러한 논란이 남다를 것 같은데.

“아내는 지금 마음대로 움직일 수 없는 상태다. 손이 많이 간다. 굉장히 약한 상태다. 사람들은 아내와 같은 경우를 들어 ‘식물인간’이라고 하지만, 이 말은 상당히 어폐(語弊)가 있다. 사람이 어떻게 식물과 같겠는가. 단지 예수님께서도 말씀하신 ‘작은 자’가 아닌가 한다. 물론 가난한 사람이나 어린이, 장애인 등도 작은 자일 수 있다. 작은 자는 필요없는 자가 아니다. 무의미한 자가 아니다. 예수님 말씀은 작은 자들이 어려울수록 더 잘해주라는 말씀이 아닌가.

연약한 사람들이 있다면 사회가 더 보듬어줘야 한다. 무의미한 생명이라는 말이 계속 나오는데 무의미한 생명이 있다면 그 의미를 찾아주는 사회가 돼야 한다. 내치거나 차별하지 말고 의미있게 챙기면 의미가 생긴다. 이것이 바로 생명의 의미이고, 신비이다. 세상에서 자신의 삶을 무의미하다고 느끼는 사람이 얼마나 많겠는가. 그런 삶이라도 잘 가꾸면 다 의미가 생기는 법이다. 그렇게 의미를 찾아주는 것이 크리스천의 사명이자 국가의 사명이라고 생각한다.”

-마지막으로, 이런 논란의 한가운데에서 고통받고 있는 말기암 환자나 가족분들께 한 말씀 부탁드린다.

“아무리 연약한 생명이라도 그 속에 하나님의 뜻이 있고, 병이나 역경으로 어려움이 있어서 고통이 심해도 그 가운데서 하나님의 뜻을 발견하고 의미를 찾으며 자기보다 더 어려운 사람들을 생각하면서 살아간다면 하나님께서 그 속에서 작은 자를 도우면서 살아갈 수 있는 안목을 허락하신다. 그럴 때 자신의 삶도 더 풍성해진다고 생각한다.

어려움이 있다면, 하나님께 더 가까이 나갈 기회가 된다. 예수님 사랑에 더 민감하게 반응하고 깊이 생각해야 한다. 그 삶 자체가 너무나 귀중하기 때문에, 용기를 잃지 말고 포기하지 말자. 생명 자체에 무한한 하나님의 신비가 있다. 하나님의 도우심을 바라고 의지하고 함께 나아가자.”

박재형 교수는

서울 대길교회 장로로 아내의 투병 이후 교회와 함께 노인요양 공동생활가정인 영파실버홈 사랑의 집을 운영하고 있다. 아내 이희종 씨(57)는 현재 이곳에 있다. 아내를 간병하면서 서울사이버대에서 사회복지학을 이수하고 사회복지사 1급 자격증을 따기도 했다. 환부 절제를 최소화해 치료하는 ‘중재적시술’의 권위자로, 심장영상의학회장, 서울의대 진단방사선과장, 한국기독의사회장·한국기독교의료선교협회장 등을 역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