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 저(S)는 작은 교회를 섬기는 목회자입니다. 공부를 하고 일을 하면서 교회를 섬기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네요. 그러나, 하나님께 늘 감사한 마음으로 감당하고 있습니다. 목사님, 제가 전도를 하다보니 이런 것을 느끼게 되었어요. 사람들의 생각이 참 많이 다르다는 것 말이예요. 일종의 가치관, 세계관, 인생관이 다른 것이지요. 어떤 한 가지 사실을 두고 사람들의 생각이 이렇게 달라지는 것이 어떤 이유인지 궁금하구요. 신학을 공부하다보니 보수니 자유니 하는 말을 듣게 되는데, 그러한 구분은 어떤 근거에서 생기는 것인지 몹시 궁금합니다. 저도 보수 신학을 공부하고 보수적인 목회를 한다고 하는데, 과연 그게 정확하게 뭔지 신학교에서도 배우지 못한 것 같아요. 또 잘 알지 못할 경우에, 다른 사람들을 쉽게 판단하고 정죄할 것 같아서 두려워요. 목사님의 의견을 듣고 싶습니다.

A: S 님의 귀한 질문에 감사 드립니다. 우리가 신학을 공부하고 목회를 합니다만, 현장 목회를 하면서 여러가지 질문들에 부딪치면 그것을 신학적으로 고민하고 해결해 보려는 자세가 필요하겠지요. 또한 신학이 단지 상아탑의 이론으로 머물지 않으려면 현장 목회를 늘 염두에 두어야 한다고 여겨집니다.

유명한 독일의 신학자 칼 바르트의 <교회 교의학> (Die kirchliche Dogmatik)도 바르트가 독일 작슨빌의 작은 마을에서 목회하면서 집필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우선 사람들의 생각이 다른 것인데요. 그것은 당연하지요. 하나님께서 사람들을 한 가지로 만드시지 않으셨으니까요. 다양한 성격과 기질과 성품 뿐만 아니라, 여러가지 기술, 지식, 특성을 주시면서 사람들을 만드시는 것이지요. 이런 의미에서 독일의 무신론적 실존주의 철학자 마르틴 하이데거 (Martin Heidegger)의 주장은 정당하지 않다고 보여집니다. 그는 인간이 그저 이 세상에 던져진 존재라고 주장하기 때문이지요. 그런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그 분의 목적과 계획을 가지고 그에 맞는 성품과 기질 뿐만 아니라, 지식이나 기술을 익힐 수 있는 소질의 가능성을 부여하셔서 이 세상에 보내 주신다고 볼 수 있지요.

한 가지 예로 인간의 사상(조직적이고 논리적인 생각)을 다루는 철학의 역사(the history of philosophy)를 보게 되면, 사상의 뿌리와 흐름을 알 수 있습니다. S님이 경험한 사람들의 생각의 다양성은 이러한 다양한 사고의 뿌리에 그 근원을 두고 있다고 볼 수 있지요. 보수와 자유 신학의 구분도 동일 선상에서 생각해 볼 수 있는데요. 역사적으로 보수주의 신학은 16세기 루터나 깔뱅과 같은 종교 개혁자의 신학에 뿌리를 두고 있고, 자유주의 신학은 근대 철학의 아버지라고 불리우는 17세기 프랑스의 철학자 르네 데까르트 (Rene Descartes)로부터 18세기 프랑스의 계몽주의를 거쳐 19세기, 20세기의 독일의 자유주의 신학에 뿌리를 두고 있습니다.

보수주의 신학은 하나님의 계시를 강조하는 반면에, 자유주의 신학은 인간의 이성을 강조한다고 말씀드릴 수 있지요. 신학의 한 분과인 조직 신학에서는 계시(Revelation)와 이성(Reason)을 중요한 주제로 다루고 있는데요. 역사적이고 신학적인 논란을 떠나서, 저는 이 문제에 대해서 개인적으로 이렇게 이해하고 있습니다. 보수적(conservative)이라는 것은 성경대로 믿고 성경대로 살아가려는 노력의 산물이며, 자유적(liberal)이라는 것은 성경을 보다 정확하게 이해하고 그 의미를 찾으려는 노력의 산물이라고 여겨지지요. 이 둘은 서로 대립적으로 볼 것이 아니라, 서로의 한계를 인정하고 서로의 장점으로부터 배울 것을 찾으려는 노력이 더 중요하다고 여겨집니다.

뚜렷하고 확실한 근거나 이유가 없이 사람들의 입소문과 편견을 따라서, 상대방을 비난하고 매도하는 것은, 신학적 입장이 다른 상대방에게 불필요한 상처와 아픔을 남기는 위험한 게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