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사는 것이 많이 어렵다 보니까 예상치 않은 일들이 일어납니다. 어려울수록 가족들이 단결해서 더욱 이해하고 사랑해야 하는데 오히려 서로를 아프게하지 말아야 할 말과 행동을 하기도 합니다. 가슴 아픈 일입니다. 그런데 가장 어두운 밤에 높이 뜬 별이 밝은 것처럼 우리 삶도 그렇습니다. 그래서 시편기자는 '새벽에 도우시는 하나님' 을 노래하기도 했습니다. 어느 분은 어떻게 지내시냐 여쭈니 "하루씩 살아요." 라고 하더군요. 정말 그렇습니다. 하루씩 사는 것이고 한걸음씩 걷는 것입니다. 내일 태양은 반드시 다시 뜨게 되어 있습니다. 자살을 결심했던 데일 카네기가 다시 꿈을 가지고 일어날 수 있도록 힘을 주었던 그림처럼 해변가 모래사장에 박혀 꼼짝못하는 배도 내일 바닷물이 다시 밀려오면 바다로 나갈 수 있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모두 나름대로의 아픔과 어두움을 끌어안고 살아가야 합니다. 어제 토요일 아침 저는 카운티 감옥에 다녀왔습니다. 엊그제는 교단일로 그 감옥에 있는 사람들을 재판하는 판사와 점심식사를 했습니다. 요즘 살면서 비현실적인 현실의 잔인함에 가슴이 서늘할때가 많습니다. 감옥에 들어가 있는 그 친구를 생각하며 어떻게 하루 아침에 신세가 그렇게 되었는지 마음이 아팠습니다. 나도 그에게 조금이나마 격려가 되고 소망을 주는 일에 인색했던 것은 아닌지 민망한 마음입니다. 나도 조금 더 참고 조금 더 너그러웠어야 했던 것은 아닌지 자책감이 들었습니다. 혹시라도 내가 조금만 더 마음의 여유가 있고 시간이 넉넉했다면 그래서 그의 말에 조금 더 귀기울여주었다면, 전화라도 한번 해주었다면…아픈 아쉬움이 몰려왔습니다.

한해가 지나갑니다. '사막' 이란 제목의 시 한편이 있습니다. "그 사막에서 그는/ 너무도 외로워/ 때로는 뒷걸음질로 걸었다./ 자기 앞에 찍힌 발자국을 보려고." 누구는 외로워서 그랬다는데 저는 그 시를 읽고 많이 웃었습니다. 나는 늘 그렇게 살기 때문입니다. 외롭다고 할 것은 아닙니다. 그것보다 내 살아온 걸음에 대해 돌이켜 보는 일이 앞으로 나가는 발걸음보다 더욱 많은 것을 발견합니다. 조심스럽고 때로 자신이 없어서 앞으로 나가기 보다 뒷걸음질로 걷고 다시 제자리로 돌아오기를 반복 하는 일이 많아 집니다. 그런데 좋습니다. 정신없이 앞으로 달려가는 것 보다 때로 뒷걸음질로 걷고 다시 제자리로 돌아오기를 반복하는 것도 나름대로 의미있고 재미도 있습니다.

아기 예수를 기다리는 대강절입니다. 무엇보다 팔레스타인 땅 작은 시골 마을 베들레헴 말구유에서 태어난 아기 예수를 생각해 보면 외로움도, 뒷걸음질도, 그리 나쁘지 않다는 생각이 듭니다. 자기 갈 길이 순탄대로인 사람은 말구유에 놓이신 아기 예수의 존재를 바라 볼 시간적 여유가 쉽지 않을 것입니다. 얼마전에도 올해 아주 큰 어려움을 경험한 교인 한분이 "목사님, 사업이 어려운 동안 가족들과 무척 가까워졌습니다. 특별히 아들 아이와 많은 대화를 나눌 수 있었습니다. 얼마나 감사한지 모릅니다." 라고 이야기 하더군요. 그래서 사람은 때로 뒷걸음질도 해보고 미끄러져 보기도 하고 제자리에 주저앉아야 하는 인생길 경험이 있어야 예수님을 보는 눈과 마음이 비로서 열릴 것입니다.

요즘은 사실 솔직히 앞으로도 아니고 뒤로도 아니고 훨훨 어디로 날아갔다 오고 싶을 때가 많습니다. 방황이라기 보다 멀리서 그리고 아주 다른 차원에서 내가 서있는 자리를 바라보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우리 모두가 반드시 머물러 서야 하는 곳이 있다면 아기 예수 태어나신 팔레스타인 땅 작은 고을 베들레헴의 말구유 일 것입니다. 그분 아기 예수 앞에서 그분을 보고 내 자신을 들여다 보는 삶의 정직한 발견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그 자리에서 목자들이 들었던 그 하늘의 소리를 듣고 누추한 그 땅에 조용히 아기 예수 나신 그 자리를 함께 따뜻하게 지켜준 그 사람들의 마음을 느껴보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이 보았던 그것을 보는 것입니다.

말구유에 눕힌 아기 예수가 이 세상을 구원하는 메시아 그리스도이심을 고백하는 삶의 열매는 무엇보다 사랑의 나눔일 것입니다. 사랑의 나눔 가운데 우리의 눈과 마음이 열릴 것입니다. 며칠전에 어느 장로교목사님이 저를 만나자 하더니 그냥 착하게만 살다가 얼마전 시골에서 목회하던 친구가 죽었다고 슬퍼했습니다. 켄터키 어느 도시 작은 교회에서 목회를 했는데 장례식 참석하러 갔다가 그 친구 집을 들여보고는 기겁을 했다고 합니다. 어떻게 그런 환경에서 살 수가 있었는지 친구로서 상상도 못했다며 슬퍼했습니다. 공부하러 미국에 왔다가 지난 10여년 목회를 했는데 교회에서 영주권문제를 해결해 주지도 않고 월급도 제대로 받지 못하는 어려움을 당하면서도 그냥 목사는 그렇게 사는 것인줄 알고 살았다는 것입니다. 몇년만에 보니 남편 병간호 하느라 사모의 검은 머리가 회색이 되었더라고 했습니다. 자신도 어렵게 사는 목사인데 친구 잃은 충격은 물론 친구목사가 그렇게 어렵게 사는 것을 생각조차 못했던 것에 대한 자책감도 컷다고 합니다.
빛으로 오시는 주님이시여 오늘 우리 가운데 오시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