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인이 ‘가장 좋아하는 인물’ 중 여성 부문 1위로 꼽히기도 했던 이 시대의 성자 엠마뉘엘 수녀. 그녀는 2008년 10월 19일을 끝으로 세상과 작별을 고했다. 책 <나는 100살, 당신에게 할 말이 있어요>는 그녀가 100세를 앞두고 지난 삶을 통해 얻은 삶과 죽음, 행복과 고통의 메시지를 담은 마지막 유언과도 같다.

빈곤과 소외가 있는 곳이라면 어디라도 달려가 세계를 품에 안았던 그녀는 소외받고 학대받는 모든 아이들의 어머니였다. 불의에 맞서 싸우는 열정적인 행동가였던 그녀가 삶의 끝자락에서 남긴 유언장과도 같은 이 책은 우리에게 어떤 메시지를 전하고 싶은걸까. 이 책은 그녀의 생생한 육성이 담긴 고백록이자 우리 삶의 지침서다.

자신을 사랑하는 법-자신을 희생해선 안 된다

엠마뉘엘 수녀는 여섯 살에 아버지의 죽음을 목도한 후 일찍이 세상의 고통에 눈을 뜨게 된다. 그녀는 스무 살에 수녀가 되기로 결심한 후 극심한 빈곤과 질병으로 가득한 빈민촌에서 버림받은 사람들과 평생을 함께하며 주거지를 일구고, 학교를 세우고, 보건소를 만들어 그들의 인생을 바꿔놓았다.

유행하던 모자를 사기 위해 고집을 부리고 파티에서 춤추는 것을 좋아하던 그녀가 “하느님을 위해 잘생긴 남자들을 버릴 거야”라고 말하며 청빈과 정결의 서원을 하기까지, 책은 한 여자로서 겪었을 내적인 갈등을 투명하게 보여준다. 간혹 복수의 유혹을 받기도 했다는 그녀는, 그러나 나쁜 짓을 나쁜 짓으로 갚지 않기 위해 이를 악물었다고 솔직히 고백하며 그녀의 인간적이고 솔직한 모습을 가감없이 보여준다.

”나는 내 삶을 희생하지 않았습니다. 타인의 행복을 위해 자기 삶을 희생해서는 안 됩니다. 탄탄하고 오래 지속되는 참된 사랑은 자기 자신의 행복과 타인의 행복을 동시에 추구하는 사랑입니다. 우리는 함께 행복해야 합니다.”

엠마뉘엘 수녀는 고통을 감내하며 희생하는 사랑과 봉사에는 반대한다. 자신을 대면하는 것, 자신을 속이지 않는 것이 선행되어야 타인을 향한 진정한 사랑이 발현된다는 것이다. 이는 삶에 대한 철저한 고민을 통해 자신이 이 땅에서 해야 할 일을 깨닫고 거기에 온몸을 던진 본보기로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종교를 뛰어넘어 던지는 지침-희망을 찾아가는 법에 대하여

엠마뉘엘 수녀는 세상을 떠나기 몇 달 전, 이 마지막 증언에서 여전히 활기 넘치고 거침없는 태도로, 그동안 한 번도 언급한 적 없었던 일화와 생각들을 쏟아낸다. 그녀는 이 책에서 전쟁과 폭력, 빈곤과 기아의 문제 등 자신이 평생 화두로 삼았던 다양한 사회 문제를 언급하는데, 특히 차별받고 학대받는 여성과 아이들의 문제에 관한 그녀의 생생한 증언들은 놀랍기까지 하다.

가령 그녀는 열 달마다 아기를 낳아야 하는 카이로의 빈민촌 여자아이들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그들은 매 해 임신하고 그중 절반은 사산하는 참상을 겪는다. 교리에 위배될지라도 그 아이들 위해 피임약을 처방하는 것이 옳다.” 또 그녀는 킬러로 자란 아이들의 안타까운 사례 등에 대해 언급하며 인간 존엄성 회복의 절실함을 전해주며, 청소년 교육 문제에 대한 소신도 피력한다.

“그렇지만 젊은이들에게 반항하라고 말씀하시지는 않지요?” “그렇게 얘기합니다. 내가 유럽에서 만난 세상, 껍데기와 권력과 돈만이 중시되는 세상에 맞서 반항하라고 하지요. 하지만 모든 걸 깨뜨리면서, 혼자서 궁지에서 벗어나려고 애쓰면서 하라고 하지는 않습니다.”

한 세기를 통과하는 진정한 서사시

엠마뉘엘 수녀는 빈민촌에는 ‘다정함과 미소’가 있었지만, 유럽에는 ‘우울과 의기소침’이 가득했다고 말한다. 깡그리 박탈당한 세계에서 따뜻한 연대감과 공생 의식을 느꼈으나, 물질적 풍요가 가득한 곳에는 온통 불평과 불만, ‘불필요한 잉여’뿐이었다는 것이다. 이렇듯 엠마뉘엘 수녀는 소통의 부재와 가난한 정신은 결국 진정한 삶의 의미를 잃게 만든다는 것을 자신의 체험으로 보여준다.

도덕과 윤리의 추구나 인간성 회복과 같은 이상적 가치가 비실용적인 것으로 여겨지는 이 시대, 한 세기를 통과하는 진정한 서사시와도 같았던 엠마뉘엘 수녀의 삶과 신념은 깊은 울림으로 다가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