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의 제국인 중국은 항상 우주의 중심이었고 중국인은 곧 문화인이었습니다. 그리고 다른 나라들은 변방국가였고 열등한 민족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중국의 변방 사람들을 오랑캐라고 불렀습니다. 그 말을 다른 말로는 ‘이’라고 표현하였습니다. 그래서 동쪽의 오랑캐라는 말로 ‘동이’라고 하고 서쪽의 오랑캐는 ‘서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들은 또한 오랑캐를 ‘호’라고도 불렀습니다. 본래 중앙아시아에 살던 흉노족을 말하던 것이었습니다. 여기서 나온 말이 ‘호두’ ‘후추’ 등 우리가 사용하는 것들이 있습니다. 그런가하면 남쪽에 살던 오랑캐는 ‘만’이라는 말로 호칭하여 ‘남만’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만용’ ‘만행’이라는 말은 미개한 오랑캐같은 행동이라는 의미로 시작된 말입니다. 이런 중국인들의 의식은 그들의 우월감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들이 가진 우월감이 다른 나라와 민족을 열등하게 표현한 것입니다. 이것은 민족적이고 문화적인 우월감의 이야기입니다. 이 우월감은 개인에게서도 발견되는 것으로서 겸손으로 가는 길의 장애물이기도 합니다.

필리핀의 대통령이 되었던 막사이사이는 겸손하고 성실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대장장이의 아들로 태어나서 자동차 운전수, 버스회사의 지배인이 되었고, 제2차대전후는 국방 장관을 거쳐 마침내는 대통령까지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여전히 소박하고 겸손했다고 합니다. "나의 직책은 대통령이지만 나의 마음은 이 나라의 한 병사이다" 이것은 곧 막사이사이가 늘 품고 있는 신념이었다고 합니다.

다음의 글은 시인 이해인의 글 <합창을 할 때처럼>입니다.

<높은 음의 소프라노는 소프라노대로 낮은 음의 알토는 알토대로 그리고 높은 음과 낮은 음 사이에서 다리 역활을 해주는 중간음의 메조는 메조대로 각자의 역활을 충실히 해냄으로써 이루어내는 그 아름답고 겸손한 합창의 조화를 나는 늘 새롭게 사랑합니다. 다른 파트가 솔로를 하는 동안은 호흡을 가다듬고 쉴 수 있으나 절대로 방심할 수 없는 긴장감을 합창에서 배웁니다. 자기 차례가 올 때까지 고요하고 참을성있게 깨어 있는 기다림과 인내를 합창에서 배웁니다. 다른 이의 목소리에 조심스레 귀를 기울이는 예민함과 지혜를 합창에서 배웁니다. 목소리가 빼어나도 혼자서만 튀지 않고 다른 이와 맞추어가는 겸손과 양보를 합창에서 배웁니다.>

빌립보교회는 마게도니아지방의 빌립보라는 도시에 세워진 교회입니다. 자주장사 루디아가 바울에게 전도받고 그녀의 집에서 모이면서 세워진 교회입니다. 바울과 실라는 그 곳 빌립보에서 감옥에 갇히는 사건을 통해 간수의 가족을 전도하기도 하였습니다. 그곳이 빌립보이며, 빌립보교회는 그렇게 생겨나게 되었습니다. 이 빌립보교회는 유럽땅에 세워진 최초의 기독교회입니다. 바울은 이 빌립보교회에게 권면하기를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을 품으라’고 하였습니다. 그 예수님의 마음이란 ‘마음의 태도’를 의미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영어번역(NIV)은 ‘Your attitude should be the same as that of Christ Jesus.’로 번역하고 있습니다.

그 예수님은 본래 하나님의 본체이신데 자기를 비어(made himself nothing) 종의 형체를 가져 사람들과 같이 되었고 십자가에 죽으셨습니다. 이것이 예수님의 마음의 태도인 것입니다. 즉 자신을 비우는 것입니다. 그리고 높은 자리에 내려와 종의 신분을 취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죽기까지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예수님의 낮아지심입니다. 자신을 비우는 것, 즉 자신을 아무 것도 아닌 것으로 여기는 것은 매우 어려운 것입니다. 살아있는데 죽은 자처럼 여겨야 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입니다. 그리고 왕이 그 자리를 내려와 종의 신분으로 사는 것은 상상할 수 없는 어려움입니다. 그리고 더 나아가서 남을 위해 나의 목숨을 내어주는 죽음은 철저한 자기부정입니다. 자기를 비우는 예수님의 마음은 우리가 닮아 가기를 소원하는 목표가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