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햇살이 황홀할만큼 아름답습니다. 천고마비의 계절이어서 일까요? 그냥 이 아름다운 계절이 일년 삼백육십오십일 내내 계속되었으면 하는 헛된 바램이 들 정도입니다. 그럴리도 없겠지만 저의 바람대로 그렇게 된다면 울창한 숲과 맑은 공기가 있는 조지아주가 애리조나의 사막처럼 되고 말 것입니다. 아랍사람들의 격언 중 “비가 오지 않는 화창한 날만 계속되면 사막이 되고 만다”는 말이 있듯이 비바람도 불어야 하고 뜨거운 날과 추운 날도 있어야 요즘같은 황홀한 가을햇살의 아름다움을 즐길 수 있는 것입니다.

예쁜 단풍을 보면서 어떤 분들은 ‘하나님이 물감을 칠하셨다’고 신앙적이고 시적인 표현을 하기도 하고 어떤 분들은 일조량이 부족한 결과로 잎에 노쇠현상이 일어난 결과라는 과학적이지만 사뭇 기계적인 해석을 하기도 합니다. 저 보고 둘 중 한 쪽을 택하라고 한다면 시적이고 신앙적인 표현을 택하는 삶을 살기를 원한다고 대답할 것입니다.

엊그제 책방에 들렀다가 책방 주인 집사님으로부터 “쿠션”이라는 책을 선물로 받았습니다. 이런 일도 처음이지만 그 책도 제목이 주는 인상과는 딴판으로 대단한 책이었습니다. 첫 장부터 기선을 압도하는 내용과 표현에 숨을 죽이고 읽어내려가다가 숨이 멎는 것 같은 충격을 받은 대목을 접했습니다.

옛날 우물가에서 장난하며 이 우물이 깊은지 얕은지 알기 위해 돌을 떨어뜨리는데 밀폐된 공간에서 돌이 바닥에 닿는 소리가 한참 있다가 들리면 그 우물은 깊은 것이고 금방 들리면 얕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저자는 이런 말을 합니다. 남이 나에게 어떤 말을 할 때 마음이 깊은 사람은 상대방의 말이 내 마음에 와 닿을 때까지 걸리는 시간이 길고 내 마음에서 나가는 말이 다른 사람에게 전달되는 시간도 오래 걸리지만 내 마음이 얕으면 (쿠션이 없으면) 즉각적으로 반응한다는 것입니다.

이 글을 읽으면서 저는 이런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내 안에 있는 믿음의 정도에 따라 내가 보는 것이 천차만별로 달라지겠구나!’ 똑같은 것을 보면서도 온 대지에 물감을 칠한 화가이신 하나님의 손길을 느끼는 사람이 있는 반면에 일조량이 줄어든 결과로 나무에 수분이 부족하여 노화현상이 일어난 것이라고 이해하는 사람도 있으니 과연 시각의 차이가 사람됨과 살아가는 방법을 결정하는 거구나, 그런 생각을 하는 것이지요.

힘든 시대를 살아가고 있지만 믿음의 시각으로 이 어려움의 시대를 조명한다면 희망을 잃지 않을 것입니다. 세상을 향해 당당히 도전장을 던지면서 “맞짱을 뜨는 내공”은 믿음의 시각으로 바라보는 사람에게만 존재하게 될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이 모두 이런 은총 속에 거하며 이 때를 거슬러 올라가는 삶을 살게 되기를 바랍니다.

가을햇살이 황홀할만큼 아름답습니다. 이 가을이 다 가기전에 이 아름다움을 엔조이하십시오. 그리고 선하시고 아름다우신 하나님을 인해 감사하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