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 비가 많이 내린 다음날 갑자기 하늘이 무척이나 아름답다는 생각이 들어 무작정 죠지아 북쪽으로 떠났습니다. 신문에 441번 하이웨이를 타고 가는 길이 드라이브 하기에 좋다고 해서 계속 올라가니 스모키 마운틴 국립공원이 나왔습니다. 단풍이 제대로 들지 않아 예쁘지는 않았지만 바람이 좋고 하늘이 높고 맑아 아주 좋았습니다.

그런데 집으로 돌아오는 어두운 밤길 운전을 하면서 가을에는 사람이 더욱 그립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특별히 오늘 먼저 하나님 나라로 떠나신 성도들을 기리는 성도추모주일을 생각하면서 먼저 떠난 교인들 생각이 많이 났습니다. 이해인 수녀가 쓴 늦은 11월에 사랑하는 이를 묻고 돌아와 얼은 손으로 촛불을 밝힐 수 있는 믿음을 달라는 기도문도 떠올랐습니다. 벌써 오래전에 우리 곁을 떠난 분들도 많고 아직도 생생한 기억으로 남아있는 분들도 많습니다.

'화요일에 모리와 함께' 에도 보면 "죽음은 생명이 끝나는 것이지 관계가 끝나는 것은 아니야." 라고 따뜻하게 제자에게 말해주는 스승의 말이 있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은 절대로 우리의 삶에서 잊혀지거나 없어지지 않습니다. 때로 그 어느 살아있는 사람보다 더 생생하게 우리 가운데 살아있습니다. 교인들도 그렇습니다. 비록 우리 곁을 떠나 가셨어도 우리 교회의 오늘에도 '구름같이 둘러싼 허다한 하늘의 증인들' 이 생생하게 살아있습니다. 무엇보다 우리들의 마음속에 오늘도 사랑으로 살아있습니다.

지금도 벌써 10여년전에 떠나신 L권사님과 헬렌 죠지아 계곡에서 목물하던 날이 생각나고 그분의 부인되시는 권사님이 추운 겨울 새벽기도가 끝나기만 하면 가슴으로 뎁히며 배달해 주시던 커피가 그립습니다. 가냘프고 아름다운 여인이지만 기도할 때는 쩌렁쩌렁 예배당을 울리던 H권사님을 잊지 못합니다. 그래서 저는 가끔 그 권사님 기도하실 때는 그 힘이 어디에서 나오는지 눈을 뜨고 몰래 바라보고는 했었습니다. 이곳에서의 목회초기 제가 어려움을 당할 때 "목사님, 별 힘 없는 늙은이지만 나는 목사님 편이니까 힘내세요." 하시던 K권사님이 생각납니다. 마지막 떠나는 날이 다가오면서 기력이 있을 때 꼭 하고 싶었다고 "I love you 목사님, 목사님과의 만남이 나에게는 하나님의 축복이었어요. 천국에서 만나요. I love you." 를 외치고 떠난 P집사님을 잊지 못합니다. 너무 아프게 떠났지만 그렇게 열심히 살고 교회를 열심히 사랑한 J권사님을 생각하면 지금도 가슴이 아픕니다. 죽음에 이르는 육신의 고통 가운데서도 "목사님 얼굴을 보니 이제 한이 없어요." 하시며 저를 반가이 맞아주시던 K집사님의 천사 같은 순박함은 내가 목사인 것을 보람있게 했습니다.

얼마전에도 교인 한분의 육신을 땅에 묻고 영혼을 천국으로 보내드렸을 때 남편되시는 장로님에게 흙을 한줌 건네 드리며 "장로님, 이제 권사님 잘 보내드리세요." 했더니 장로님이 "그래, 여보 잘 가오." 하시는데 사랑이 아픔이 되어 몰려왔습니다. 지금도 가끔 예배당 입구를 바라보다가 문뜩 환하게 웃으며 C권사님이 들어오실 것 같은 착각을 합니다. 설교하다가도 장난기로 지나가는 말 한마디씩 던지면 재미있어하고 좋아하시던 K권사님이 그 자리에 그대로 계실 것 같은데 안계셔서 당황할 때가 있곤합니다. 모두 그리운 분들, 우리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우리는 땅에서 예배의 백성으로 그분들은 하늘에서 하나님께 찬양과 영광을 돌리며 천군천사들과 함께 예배드리고 계십니다.

제가 시카고에 살 때 이맘때쯤되면 아버님 묘지관리사무실에서 편지가 날아옵니다. 추운 겨울이 다가오니 미네소타 솔잎으로 만든 무덤을 덮는 담요을 신청하라는 것입니다. 추운 겨울 얼은 땅에 뭍히신 분들이 춥지 않도록 하라는 것입니다. 코메디 아닌 코메디이지만 매년 비싼 돈을 내고 솔잎으로 만든 담요를 아버지 묘위에 덮어드리면서 불효했던 날들에 대한 용서를 빌고는 했었습니다.

오늘 우리교회 예배 제단은 교인들이 사랑하는 이들을 추모하는 국화꽃으로 만발할 것입니다. 그 꽃들 속에는 아프지만 아름다운 사랑의 그리움들이 담겨져있습니다. 그 사랑때문에 우리는 오늘 이렇게 살기에 감사하고 또 감사하기만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