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한미부인회의 출범과 활동(애틀랜타 한인 이민사 p 115)

현재 활동하는 한미부인회는 그 설립 시기를 1986년 4월 18일(금) 발기 총회로 잡고 있다. 그래서 제 2부 4장 7절에서 언급하고 있는 바와 같이 제1대 한미부인회 회장을 1986년에 재임한 김써니(Sunny Kim)으로 기록하고 있다. 그런데 그 이전에도 애틀랜타에는 한미부인회가 활동하고 있었음에 틀림없으나, 이 한미부인회에 대한 자료를 얻을 수가 없다. 한국일보 시카고 지사에서 발행한 미주 판에는 그 이전의 애틀랜타 한미부인회에 관한 기사를 다수 싣고 있다.

1979년 7월 21일 기사에서는 다음과 같은 간단한 기사를 전한다.

애틀랜타 한미부인회는 7월 15일 Conyers시에 있는 김준선 회원 자택에서 회원 15명이 모여 임시 총회를 열고 현재 임시 회장으로 있는 박은미씨를 회장으로 선출하였다. 이어 애틀랜타 한미부인회는 현재 이 지역에서 미국인 남편으로부터 학대받으며 고생하고 있는 Sandy(미국명)씨를 적극 도와주기로 했으며, 애틀랜타 한미부인회 기금 확보 문제를 협의하였다.

1979년 9월 29일 발행한 미주판에는 “애틀랜타 한미부인회는 오는 10월 21일 오후 스톤마운틴에서 한미부인회 추계 야유회를 개최한다. 또한 12월 정기 모임에는 이민교 산부인과 의사를 초청하여 부인 건강 강좌도 갖게 된다고 한다.”는 내용이 실려 있다. 또한 동 신문의 1979년 10월 26일 기사에는 “애틀랜타 한미부인회(회장 박은미)는 10월 21일 스톤마운틴에서 가지려던 야유회를 취소하고 대신 엄수나 섭외부장 자택에서 월례 정기회를 개최키로 하였다.”는 내용을 싣고 있다. 이상의 세 기사 내용을 통하여 애틀랜타에는 일찍부터 한미부인회가 활동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다만 이 당시 활동하던 한미부인회에 대한 자료를 얻을 수 없기 때문에 그 연혁을 기록할 수 없는 것이 안타깝다.

오늘날 애틀랜타에서 활동하는 한미부인회는 1986년 출범하였다. 애틀랜타한인단체 수백여 개 중에서 단체 행사에 대한 기록을 가장 잘 남긴 단체가 한미부인회다. 기록을 잘 남겼을 뿐만 아니라 실질적으로 가치있는 행사와 활동도 가장 많이 한 단체에 속한다. 제 2부 4장 7절에서 한미부인회 활동을 비교적 자세히 잘 기록하고 있기 때문에 여기서는 애틀랜타컨스티튜션신문 1990년 12월 26일자에 수록된 기사를 번역하고 싣고자 한다. 다음은 그 기사의 요약인데, 주간동남부 1991년 1월1일자 신문을 간접 인용한 것이다.

그들은 1950년대와 1960년대 ‘잊혀진 전쟁과 소란스러운 평화’로부터 온 외로운 이민자들이다. 그들 중에 첫 번째 그룹은 휴전이 되면서 몇 년 후에 GI남편을 따라 생소한 나라에 첫발을 디뎠다. 이곳에는 그들을 말이라도 따뜻하게 하면서 맞이할 한인 커뮤니티가 없었으며, 그들의 오랜 문화관습을 이해해 줄 미국인 또한 없었다. 그들은 새로운 세계에 적응해서 살아야 할 방식을 새로 배워야만 했다. 1969년 미국인과 결혼하고 1년 후에 미국땅을 밟은 주영 제임스(43)여사는 “여러 해에 걸쳐 나는 한국으로 돌아겠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있었지요.”라고 말했다. 현재 스톤마운틴에서 꽃집을 경영하는 제임스 여사는 이어서 “그러나 말이에요. 이제는 한국에서는 살 수 없을 것 같아요. 한국이 외국이 되어 버렸어요.”라고 말하였다. 제임스 여사처럼 성공적인 삶이 있는 반면 고요한 아침의 나라에서 온 신부들 모두가 미국 땅에서 행복을 구사하지는 못한다.

한국 주둔 경력이 오래된 미국인들은 동료들에게 GI와 한국 여인과의 국제결혼은 80%가 실패에 봉착하게 된다고 주의를 주고 있다. 한인커뮤니티의 지도자들은 그러한 실패율이 높다는 것을 인정하고 있다. 이러한 관심사가 1986년 애틀랜타 한미부인회가 태동케 된 계기를 만들었다.한미부인회는 국제 결혼한 한국 여인들의 교육과 조언, 친목 도모를 위해 상호 노력하고 있따. 전체 회원은 200여 명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정기적으로 열리는 회의에는 100여명이 참석한다. 현 한미부인회 회장인 이미선(Judy Lee)씨는 회원 자격에 대해 “외국인과 결혼한 한인 여인이거나 한인과 결혼한 외국 여성을 대상으로 하고 있다.”고 말하면서 현재는 대부분의 회원이 미국인 배우자를 가진 한국 여성인데, 남편과 이혼을 했거나 사별한 회원도 많은 편이라고 밝혔다.

매달 모임을 통해 회원들에게 구직 신청서 작성법, 수표 사용법, 자녀와의 대화 방법, 미국 음식 조리법 등을 가르치고 있다. 마약과 범죄 예방법 등도 다루는 등 틈틈이 미국 생활에서 야기되는 문제를 서로 토론한다. 전문적인 안내가 필요한 회원에게는 특별히 전문가를 알선하여 해결토록 한다.

한미부인회의 주요 사업 중에 하나는 미국인 가정에 입양한 한국인 양자나 양녀에게 한국의 전통 문화와 접촉할 기회를 제공해 주는 것이다. 또 셀터에 묵고 있는 불우한 처지에 놓여있는 미국인들에게는 매년 음식 등을 제공하며, 조지아 주에 거주하는 우수한 한인 혼혈 학생을 선발하여 장학금을 수여하는 연례 행사도 하고 있다.

한국에는 수만 명의 미군이 주둔하고 있다. 한국 주둔 미군이 한국 여성과 사랑에 빠져 결혼에 골인하더라도 미국에 와서는 한국인 아내를 부끄럽게 여기고 결국은 파경으로 가는 경우가 드물지 않다. 애틀랜타 지역에서도 미국인-한인 부부가 이러한 맥락에서 비극적인 사건으로 종말을 맺는 경우가 있었다.

한미부인회는 다양한 활동을 통하여 한인 사회에 기여하였다. 이 중에서 가장 두드러지는 활동은 어려운 처지에 놓여 있는 국제 결혼한 한인을 돕는 활동이다. 이러한 한미부인회 활동은 대체적으로 언론에 보도되지 않는다. 언론에 보도되는 경우가 오히려 드물다. 다음은 1990년 2월 20일 한국일보에 보도된 것으로서 한미부인회의 활동 사례 중 하나다.

국제 결혼한 한인 R모(30)여인은 마리에타에 살고 있는 데, 남편의 학대로 브로노 정신병에 강제로 입원을 당한 사실이 알려져 한인 사회의 분노를 사고 있다. R여인은 본인도 모르게 입원을 당한 후 철창문에 갇히고 난 후에야 정신병원에 강제로 수용된 것을 알고 한국의 부모에게 알렸다고 한다. 그래서 한국의 부모가 뉴욕과 애틀랜타의 친지에게 알려 이들이 한미부인회의 도움을 요청한 것이다. 이에 한미부인회 홍성민 회장이 적극 나서 R여인을 정신 병원에서 퇴원시켰으며, 남편을 상대로 아이의 양육비와 위자료 청구 소송 등을 진행 중으로 건너왔으며, 현재 10개월 된 딸이 있고 결혼한 지 2년이 안되어 임시 영주권을 소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