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수요일부터 금요일까지 버지니아 주 리치몬드 지역 연합성회를 인도하러 갔다가 이승만목사님 계신 유니언 신학교를 방문할 기회가 있었습니다. 이목사님은 미국 교회협의회 회장과 미연합장로교단 총회장을 지내시기도 하신 한인 1세로서는 어떤 의미에서 미국 주류사회에서 최고로 인지도가 높으셨던 어른이십니다. L.A. 폭동이 났을 때 한흑합동예배도 이목사님이 주관하셨고 클린턴 대통령과 요한 로마 교황과도 만나 세계평화 문제를 의논하신 분이십니다. 그런데 이목사님이 은퇴를 하시고 지난 10여년간 신학교에서 한인 학생들을 지도하시는 일을 하고 계셨습니다. 제가 방문한 날도 신입생들을 환영하는 작은 모임을 준비하고 계셨습니다. 저와 동행한 목사님 말씀에 의하면 지난 10여년간 이승만목사님의 아버지와 같은 따스한 보살핌을 받지 않은 한인학생은 없을 것이라 했습니다. 제가 이목사님에게 "목사님, 신학생들이 목사님께서 옛날에 어떤 분이셨는지 알기는 아나요?"라고 여쭈었더니 웃으시면서 "내가 옛날에 어떤 사람이었는지 요즘 젊은이들이 아는 것이 내게 그리 중요하지 않아요. 나같은 은퇴한 사람이 젊은 신학생들이 공부를 하는데 도움을 주는 역할을 할 수 있는 그것만으로도 행복합니다."라고 하셨습니다.

높은 자리에 계실 때에도 그 어른은 높이 계시다는 느낌을 주지 않으시고 평범하게 사람들을 대하셨었습니다. 지금 어떤 의미에서 세상 사람들이 잘 알아주지 않는 곳에서 조용히 계시는데도 이상할 정도로 작으시다는 느낌이 전혀없이 젊은 목회자 한 사람 한 사람을 돕는 일에 최선을 다하시고 계셨습니다. 사도 바울이 말하는 자족하는 비결을 터득하셨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제가 떠나는데 캠퍼스를 나서는 순간까지 지켜보시며 환송을 하시는 모습을 보면서 참으로 마음이 숙연해졌습니다. 옛날 제가 젊은시절 목회를 할때는 정말 감히 이목사님을 찾아 인사를 드리는 것도 두려웠던 때가 있었습니다. 그 옛날 남에 가시면 남의 대통령들이 북에 가시면 북의 주석이 이승만목사님을 소홀히 대하지 않았었습니다. 그런 어른이 80을 넘기시면서도 미래의 목회자들을 양성하는 일에 최선을 다하고 계시는 모습이 참으로 귀하기만 했습니다.

유니언 신학교 교정을 걸으면서 이목사님이 "김목사님, 선우학원선생님 사모님이 떠나셨어요."하십니다. 하와이 이민 2세이신 사모님이 90중반의 연세에 떠나셨다는 말씀을 담담하게 하시며 선우박사님이 아직도 건강하다고 알려주셨습니다. 30년 40년도 더 어린 저를 그 어른들은 만날 때마다 존중해 주시고 기대해 주셨던 날들을 생각하며 괜스레 눈시울이 뜨거워졌습니다. 제가 시카고에 있을 때 선우박사님이 80을 넘기시면서 자녀들이 있는 서부로 떠나신다고 하시면서 "김목사님, 내가 평생 민족운동을 하며 모아온 글들인데...후세대에 좋은 자료가 될 것 같아요. 김목사님이 이 글들을 한번 정리해 주시면 좋겠어요."부탁을 하셨었습니다. 그런데 제가 아틀란타로 오게 되면서 그 이후 단 한번도 소식조차 드리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갑자기 어른의 기대와 신뢰를 저버린 마음이 되어 참으로 송구스럽기만 했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니 제 인생 가장 큰 축복 가운데 하나가 한 시대 큰 어른들과 지냈던 시간들이었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아마 제 세대 가운데 저만큼 미국에서 많은 어른들을 만나는 특권을 누린 사람도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북미주 민족운동의 우파라 할 수 있는 캐나다의 이상철목사님과 손명걸목사님을 위시하여 좌파라 할 수 있는 선우학원박사님과 홍동근목사님 그리고 좌우를 편하게 드나드시며 큰 일을 하신 이승만목사님을 위시한 기독교운동 어르신들을 만난 것이 먼 옛날의 이야기같지만 제 인생의 큰 축복이었던 것 같습니다.

몇년전에 한국에서 목회를 하는 창천교회 서호석목사님이 장기찬감독님이 돌아가시고 하관예배를 드리고 돌아오는 길에 전화를 해서 "형, 우리 어른들이 이제 다 떠나셔. 장감독님 보내고 돌아오는데 왜 내 마음이 이렇게 허전하지?"합니다. 그래서 "이제 서목사가 어른이다."했더니 "형, 어른들이 많이 계실 때가 참 좋았다."하는데 목소리에 물이 젖었습니다. 저도 더 이상 말을 하지 못했습니다.

지금 시대는 어쩌면 다 자기 일에 집중해서 사는 시대인 것 같다는 생각을 합니다. 그래서 그런지 더욱 큰 뜻을 함께 품고 동지애를 가지고 살던 시절이 많이 그리운 것 같습니다. 오늘 화요일 저녁 우리교회에서 고 김대중대통령 추모모임이 있다고 합니다. 제임스 레이니 대사가 오셔서 추모의 말씀을 하신다고 합니다. 그분은 에모리 총장도 지내셨고 한국 대사도 지내셨지만 무엇보다 우리 감리교단 파송 한국 선교사로 일하셨던 감리교 목사입니다. 너무 고마운 분입니다. 오래전 우리교회에서 죠지 오글 선교사님 은퇴모임을 할때도 오셔서 축하해 주실 때도 그랬지만 레이니목사님은 옛 친구들과 동지들을 항상 귀하게 여기십니다. 제가 오글선교사님 은퇴모임을 우리교회에서 했을 때 레이니목사님이 왜 우리교회에서 하느냐고 여쭈시기에 50-60년대 우리 조국 어려울 때 젊음을 바쳐 그 어떤 한국인들보다 더 한국을 사랑하며 헌신하셨던 그 어른들을 쉽게 잊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에서였다고 말씀드린 일이 있습니다.

옛 사람들이 그리운 것 보니, 가을인가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