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시선교를 하면서 집시민족은 참으로 특이한 민족임을 더욱 느끼게 된다. 그들에게 주위의 환경 등은 별 영향을 미치지 못하는 것 같다. 그 이유는 집시 민족이 동유럽 뿐 아니라 유럽의 많은 나라에 흩어져 살고 있는데 대다수의 집시들이 한결같이 동일한 삶을 영위하고 있다. 그들의 성격을 보면 낙천적인 것인지 아니면 모든 것을 포기하고 아무 생각 없이 사는 사람들인지 지금도 분명하게 알 수가 없다.

언젠가는 전직 대통령과 유명 연예인들의 자살이 한국에서 사회적인 문제가 되고 있어 집시 형제들과 자살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다. 그들에게 집시들이 자살을 했다는 이야기를 들어본 적이 없다고 했더니 집시형제들은 그렇다고 수긍하면서 자신들도 집시들이 자살을 했다는 이야기를 들어본 적이 별로 없다고 하였다.

대다수 자살한 사람들은 고통스러운 삶을 더 이상 견디기 어려워 극단적으로 삶을 회피하는 방법으로 선택한 것이 자살인데 그들이 자살에 이르기 까지는 자신에게 주어진 이 땅에서 삶을 마감하기까지 얼마나 많은 생각을 했겠느냐 하는 것이다. 그런데 자살했다는 이야기를 들어본 적이 없는 집시들을 보면서 마음 한편으로는 고통조차도 느끼지 못하는 무딘 감정과 생각이 별로 없는 민족이라고 그렇게 단정을 하고 있었다.

▲전통 의상을 입고 춤을 추는 루마니아 집시들의 모습
지난 7월의 중순 경 주일(7월 19일) 오후, 홀라스호목 마을에 예배를 인도하기 위해 들어가는 길에 집시형제들이 서너 명 씩 모여 뭔가 이야기를 하는 듯 했다. 무슨 일이 있느냐고 물으니까 한 집시 여인이 동거남과 싸움을 하고 난 뒤에 주일 새벽녘 아이들이 모두 잠든 틈을 타 문에 목을 매어 자살을 했다고 했다.

먼저 주일 예배를 드리고 난 후에 자살을 한 집시 여인에 대해서 다시금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그 여인은 32세로 이미 8명의 자녀를 두고 있었는데 첫째 남편은 교도소에 수감되어 있고 결혼을 하지 않은 가운데 현재의 남자와 구차헤지라는 동네에서 동거를 하고 있었다고 한다.

자살한 집시 여인이 구차헤지라고 불리는 동네에 살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홀라스호목 집시교회가 있는 이 마을에 와서 자살을 한 것은 두 번째 남자를 만나기 전에 이 동네에서 아이들과 함께 살았는데 두 번째 남자를 만나면서 그 사람 집으로 이사를 했다가 그로부터 폭행을 당하여 힘들고 어려울 때에 친인척이 있는 이 마을에 아이들과 함께 왔다가 자살을 하지 않았나 그렇게들 이야기를 하였다.

집시 여인이 자살을 한 뒤 사흘 뒤에 장례식이 있었다. 장례식은 양쪽 집안 간에 큰 싸움으로 번질 만큼 긴장된 가운데서 장례식이 진행되었다. 다행히도 아무런 사고 없이 장례식을 마칠 수 있었는데 그는 가톨릭교회의 묘지에 묻히게 되었고 세상에 남겨진 8명의 자녀들은 친 아버지가 아닌 엄마의 동거남으로 다시금 돌아가게 되었다.

장례를 마치고 난 후에 이 집시 여인에 대한 여러 사실들이 드러나게 되었다. 이 여인의 본 남편은 교도소에 수감된 가운데 고리사채업을 하는 현재의 동거남을 만나게 되었다고 한다. 이 집시 여인은 그에게서 사채를 빌려 쓰게 되었는데 빌린 사채를 갚지 못하자 허물어져가는 집일지라도 홀라스호목에 있는 자신의 집을 팔아서 갚으려 하기도 했지만 그래도 부족하니까 이 여자가 스스로 지금의 동거남에게 팔려가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 집시 여인은 그렇게 지금의 남자를 만나게 되었고 전 남편과의 8명의 자녀를 데리고 남자 집으로 들어가게 되었는데 이 여인에게 큰 아이로 15살 된 딸이 있었는데 언제부턴가 자신의 딸과 현재 동거남의 관계가 이상하다고 생각을 하면서 싸움으로 이어지게 되었고 그로 인해서 틈틈이 폭행을 당했던 모양이었다. 죽기 며칠 전에는 큰 딸이 임신이 되었는지 검사를 했다고 한다.

결국 이러한 일이 있고 난 후에 이 여인은 동거남으로부터 엄청난 폭행을 당한 후에 전에 살던 마을로 쫓겨나게 되었고 이를 비관해서 결국 자살에 이르게 되었다는 것이다.

자살을 통해 본 성윤리의 부재
이 집시 여인의 자살은 집시민족이 안고 있는 여러 문제들을 복합적으로 보여주는 단적인 예라고 할 수 있다. 앞전의 글에서도 언급을 한바 있지만 먼저 저들에게 있어서는 가족이라는 공동체가 남녀가 성년이 되어 많은 사람들의 축복을 받는 가운데 가정에 세워지는 것이 아니라 청소년의 티를 벗어나기도 전에 서로가 눈이 맞아 함께 살게 되고 그러다 보니 아이를 낳게 되고 그렇게 해서 가정이 세워지지만 정작 부모로서 교육을 받은 적도 없고 아이가 아이를 키우는 그러한 모습이다.

집시민족에게 있어서 또 다른 문제는 성윤리의 부재이다. 남녀가 쉽게 만나지만 헤어짐도 그리 어렵지 않게 쉽게 헤어진 다는 것이다. 문제는 이웃으로 함께 살아가다가 이웃 간에 마음이 서로 맞으면 함께 살았던 사람과 헤어지고 다른 사람과 또 다른 삶을 시작한다는 것이다. 그리고는 전혀 거리낌 없이 살아가는데 여러 마을에서 집시선교 사역을 감당하다 보니 늘 상 듣는 이야기가 되었고 듣는 사역자 역시 별로 충격을 받을 만한 이야기 거리가 아니라는 점이다.

집시 사회에서 고리 사채 문제는 갈수록 어려운 문제가 되고 있다. 국가에서도 이러한 문제를 있음을 알고서 여러 대책을 강구하고 있지만 고리 사채를 이용하는 집시들이 전혀 생각 없이 고리사채를 이용하고 있는 것이 문제이다. 사채를 이용하고 난 뒤에 고리로 갚아야 하는 데에는 별 생각 없이 당장 눈앞에 보이는 사채를 이용하고 있다는 점이다.

대다수의 집시들은 국가로부터 사회복지 보조금을 우체국이나 은행을 통해서 지급을 받고 있는데 보조금이 나오는 날이 되면 사채업자가 우체국 앞에서 기다렸다가 보조금을 가로채기도 하고 어떤 사채업자는 사채를 줄 때에 은행을 통해서 지급되는 점을 이용해 현금 지급카드를 받고서 돈을 빌려 준다는 것이다.

오늘 언급하고 있는 집시 여인은 어린 나이에 남자를 만나서 30대 초반에 이미 8명의 자녀를 두었고 사채를 이용하다 결국 자신의 집은 물론이고 사채업자에게 모든 것을 빼앗기는 신세가 되었다. 더욱 그녀를 힘들게 했던 것은 자신이 낳았던 딸이 사채업자인 동거남에게 성폭력을 당하게 됨을 눈으로 볼 수 없었을 것이다. 결국 집시 여인은 고통스런 삶을 회피하는 방법으로 자살이라는 것을 택하지 않았나 생각이 든다.

집시선교 현장에서 이와 같은 참담한 일들이 일어남을 보면서 때로는 무력함을 느끼기도 한다. 위에서 언급한 이러한 문제 가운데 있는 집시들에게 오직 그리스도의 복음만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키(사 53:5)이지만 복음으로 한 사람이 그리스도 앞으로 나오고 변화가 되는데에는 많은 시간들이 걸리게 됨은 어쩔 수 없는 점이라 생각된다.

엊그제 자살한 집시 여인의 큰 딸이 자신의 엄마를 구타하고 끝내는 자살로 내몬 사채업자 인 엄마의 동거남과 함께 자전거를 타고서는 아무 일이 없었던 것처럼 시내를 지나가는 모습을 보면서 그 딸은 무슨 생각을 하면서 살아가는가 하는 착찹한 마음이 들었다.

Rev. Choi, Young & Anna (최 영 & 양 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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