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 글을 쓴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더구나 글을 잘 쓴다는 것은 더더욱 어려운 일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글 잘 쓰는 사람을 유난히 좋아한다. 그만큼 독자의 마음을 움직이는 글을 쓰는 사람이 드물기 때문이다.
시와 소설과 수필을 쓰는 이들 가운데는 수많은 독자의 사랑을 한 몸에 받는 작가들이 있다. 그중에는 탁월한 인격으로 선한 영향력을 끼치는 이들이 적지 않다.
[2] 그들이 쓴 글을 읽고 깊이 감동하며, 삶의 방향을 바꾸고, 실제로 변화된 인생을 살아가는 독자들이 적지 않다. 그러나 여기에는 우리가 간과해서는 안 될 문제가 하나 있다. 글을 기가 막히게 잘 쓰면서도 사상이나 인격에 심각한 결함을 지닌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이다. 이상하게도 그런 이들이 쓴 글에는 인간미가 넘치고, 따뜻한 위로가 담겨 있으며, 읽는 이의 가슴을 울리는 감동적인 문장들이 꽤 많다.
[3] 왜 사람들이 그들의 글에 쉽게 빠져드는지 충분히 이해할 정도이다.
나 역시 유독 좋아하는 두 작가가 있다. 그들의 글을 한두 번 읽다 보면 어느새 깊이 빠져들고 만다. 글을 읽는 동안 마음이 따뜻해지고, 가슴이 뭉클해지며, 눈시울이 뜨거워지는 경험을 하게 된다. 바로 그 감동의 힘 때문에 글쓴이의 다른 면모까지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이기 쉽다. 글쓴이와 그가 쓴 글은 분리해서 볼 필요가 있다.
[4] 그렇다고 문제 있는 분들이 쓴 글이라고 무조건 배척하거나 그들의 작품 전체를 정죄해야 한다는 뜻은 아니다. 작품이 지닌 문학적 가치와 정서적 감동은 인정할 수 있고 또 그래야 한다. 그러나 작품의 감동에 사로잡힌 나머지 글쓴이의 사상과 인격까지 무조건 신뢰해서는 안 된다. 글이 아름답다고 해서 글쓴이의 사상까지 반드시 진실한 것은 아니며, 독자의 마음을 움직이는 능력이 뛰어나다고 해서 그 사람의 인격까지 훌륭한 것은 아니다.
[5] 메시지의 가치와 메신저의 신뢰성은 서로 관련되어 있지만, 동일한 것은 아니다.
고대 수사학에는 사람을 설득하는 세 가지 요소가 있다. 로고스(Logos), 에토스(Ethos), 파토스(Pathos)다. 로고스는 논리와 이성에 호소하는 힘이고, 에토스는 말하는 사람의 신뢰성과 인격이며, 파토스는 듣는 사람의 감정에 호소하는 힘이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수사학』에서 에토스는 설득의 핵심적인 요소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으로 평가된다.
[6] 말하는 사람의 성품과 신뢰성이 청중의 판단에 큰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아무리 논리적으로 훌륭한 주장을 펼치고 감정을 깊이 움직이는 말을 하더라도, 그 말을 전하는 사람을 신뢰할 수 없다면 설득의 힘은 약해질 수밖에 없다.
이 원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설교자에게 더욱 엄중하게 적용된다. 설교자는 세상에서 가장 고귀한 메시지인 하나님의 말씀을 맡아 전하는 사람이다.
[7] 어떤 목회자는 뛰어난 언변과 탁월한 성경 해석, 극적인 설교 구성으로 청중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그러나 정작 그의 삶에서 드러나는 인격이 설교의 내용과 심각하게 어긋난다면 어떻게 되겠는가? 말씀을 통해 하나님을 신뢰하게 해야 할 설교자가 자신의 삶으로 오히려 말씀에 대한 불신을 키우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 청중은 설교자가 선포하는 말씀만 듣는 것이 아니라, 그 말씀이 설교자의 삶 속에서 어떻게 구현되는지도 지켜보기 때문이다.
[8] 그렇다고 설교자의 인격에 흠이 있다는 이유만으로 그가 전하는 하나님의 말씀 자체가 잘못되었다고 판단해서는 안 된다. 하나님의 진리는 그것을 전하는 사람의 도덕적 완전성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말씀을 전하는 사람의 삶이 그 말씀을 가리는 걸림돌이 될 수 있다는 사실 역시 결코 가볍게 여겨서는 안 된다. 말씀의 권위는 하나님에게서 오지만, 그 말씀을 드러내거나 가리는 책임은 말씀을 맡은 사람에게 있다.
[9] 성경은 이 문제를 매우 분명하게 다룬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이와 같이 너희 빛이 사람 앞에 비치게 하여 그들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고 말씀하셨다(마 5:16). 바울 역시 디모데에게 “오직 말과 행실과 사랑과 믿음과 정절에 있어서 믿는 자에게 본이 되어”라고 권면했다(딤전 4:12). 설교자의 말과 삶은 분리될 수 없으며, 그의 인격은 복음의 진실성을 세상에 보여 주는 중요한 통로가 된다.
[10] 그러므로 우리는 글을 읽을 때 감동만으로 판단하지 말아야 하며, 설교를 들을 때 언변만으로 평가하지 말아야 한다. 글의 내용은 진리와 선함의 관점에서 살펴야 하고, 글쓴이의 사상은 성경적 가치관에 비추어 분별해야 한다. 설교자의 메시지는 성경에 비추어 검증하되, 그의 삶 역시 그가 선포하는 말씀과 일치하는지 살펴야 한다. 메시지와 메신저가 동일 걸음으로 같이 가야 한다.
[11]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능력과 사람의 삶을 바르게 이끄는 능력은 반드시 같은 것이 아니다. 감동을 주는 글은 많지만 진리로 이끄는 글은 분별해야 하며, 감동을 주는 설교는 많지만 삶으로 복음을 증언하는 설교자는 더욱 귀하다.
우리가 궁극적으로 추구해야 할 것은 사람의 마음을 잠시 흔드는 감동을 넘어, 진리로 우리의 생각을 바꾸고 거룩한 삶으로 우리를 이끄는 감동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