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국 교회선교회(Church Mission Society·CMS)의 앤디 로버츠(Andy Roberts) 대표가 세계 기독교의 중심이 서구에서 다른 지역으로 이동하는 흐름에 맞춰 전통적인 선교 모델을 재검토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서구 교회가 선교사를 모집해 해외로 파송하고 재정을 지원하는 기존 방식에서 벗어나, 현지 기독교 지도자들에게 더 많은 책임과 의사결정 권한을 부여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로버츠 대표는 취임 후 첫 1년을 돌아보며 세계 교회가 점점 더 다양하고 긴밀하게 연결되고 있는 현실을 고려할 때, 서구 중심의 기존 선교 방식만으로는 오늘날의 선교 환경에 충분히 대응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그는 선교단체들이 자원 배분과 협력 관계, 세계 각지의 기독교 공동체 지원 방식을 재검토해야 한다며 "오늘날 선교는 모든 곳에서 시작돼 모든 곳으로 향한다"고 말했다.
이어 과거 세대 선교사들의 헌신과 기여를 인정하면서도, 영국이 더 이상 선교사를 파송하는 나라에만 머물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그는 "영국은 더 이상 단순히 선교사를 파송하는 나라가 아니다"며 "세계 교회의 선물과 신앙, 선교적 열정을 받아들이는 곳이기도 하다"고 말했다.
아프리카와 아시아, 라틴아메리카, 중동 출신 기독교인들이 복음 전도와 교회 개척에 활발히 참여하고 있으며, 이러한 움직임은 유럽에서도 나타나고 있다고 설명했다.
CMS 역시 세계 교회의 변화에 발맞춰 국제 선교 방식의 재정비를 추진하고 있다. 로버츠 대표는 이를 기존 구조를 근본적으로 재조정하는 '급진적인 재편(radical realignment)'이라고 설명했다. 현지 기독교 지도자들이 선교 활동의 방향을 결정하고 지원 방식을 설계하는 과정에서 더 큰 영향력을 행사하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그는 "단순히 변화를 위한 변화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며 "우리가 익숙하다는 이유로 기존 모델을 유지하기보다 하나님께서 실제로 행하고 계신 일에 맞춰 우리의 방향을 계속 조정하려는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CMS가 권력과 통제 측면에서 영국 중심성을 줄이고 세계 각 지역에 더 깊이 뿌리내리기를 바란다"며 "관계와 자원, 의사결정 권한을 현지 지도자들에게 더 가까이 옮기고 싶다"고 말했다.
또한 CMS 자체의 역할과 통제를 줄여 현지에서 더 큰 선교적 움직임이 성장할 수 있도록 지원하겠다고 덧붙였다.
CMS의 국제 네트워크 대표들이 참여한 최근 논의에서도 각 지역 지도자들이 경험을 공유하고 전략적 결정에 참여하는 협력 모델의 가능성이 확인됐다고 그는 설명했다. 다만 오랫동안 유지된 조직 구조를 바꾸는 과정이 쉽지만은 않을 것이라고 인정했다.
현재 CMS가 검토하는 과제에는 선교사 모집과 파송, 재정 지원 방식도 포함돼 있다.
로버츠 대표는 "영국에서 선교사를 모집하고, 후원금을 모금하게 한 뒤, 수년간 해외로 파송하는 기존 모델에도 여전히 가치가 있다"며 "그 방식을 단순히 폐기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것이 선교를 상상하는 유일한 방식이 돼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앞으로는 개별 선교사 한 명을 지원하는 데 초점을 맞추기보다, 현지 지도자들이 이끄는 다양한 선교 활동과 네트워크를 폭넓게 지원하는 방향으로 모금 방식을 발전시킬 수 있다고 제안했다.
로버츠 대표는 브라질에서 활동했던 경험을 소개하며 현지 지도력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그는 당시 학대 피해를 경험한 취약한 소녀들을 지원하는 단체인 리바이브 인터내셔널(ReVive International)의 설립을 도왔다.
이후 아내와 함께 영국으로 돌아갈 때 그는 자신이 계속 지도력을 행사하기보다, 초기부터 단체 활동에 참여해 온 브라질인 동료와 현지 팀에 리더십을 넘기기로 결정했다.
그는 이 경험을 통해 외국인 선교사가 지도력을 맡아야 한다는 생각이 선교사뿐 아니라 선교 대상 공동체 내부에도 깊이 자리 잡을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고 밝혔다.
로버츠 대표는 "외국인 선교사들은 자신들이 이끌어야 한다고 생각할 수 있다"며 "그러나 공동체 역시 외부인이 지도하는 데 익숙해지면 스스로 지도력을 발휘하는 모습을 상상하기 어려워질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선교단체의 실질적인 변화를 위해서는 국제적 참여를 확대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고 강조했다. 권한을 나누고 현지의 전문성과 경험을 신뢰하며, 반드시 통제권을 유지하지 않더라도 현지 주도의 선교 활동을 지원하는 태도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로버츠 대표는 국제 이주 역시 세계 선교 지형을 바꾸는 중요한 요인이라고 설명했다. 이주민 공동체와 문화 간 관계를 통해 복음이 전해지는 사례가 늘면서 국내 선교와 해외 선교를 명확하게 구분하기도 어려워지고 있다는 것이다.
그는 "오늘날 선교사는 유럽에서 사역하는 아프리카인일 수도 있고, 영국에서 같은 아랍어를 사용하는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중동 출신 기독교인일 수도 있다"며 "대륙을 가로지르는 이주 네트워크를 따라 활동하는 아시아 기독교인이나, 다른 지역에서 교회의 모습을 새롭게 고민하도록 돕는 라틴아메리카 출신 개척자일 수도 있다"고 말했다.
이어 "사람과 교회, 기독교 운동이 끊임없이 국경을 넘고, 이동하는 사람들이 일상적인 관계 속에서 예수님의 사랑을 전하는 상황에서는 국내 선교와 해외 선교의 구분이 점점 의미를 잃고 있다"며 "이주 자체가 선교 지도를 바꾸고 있다"고 덧붙였다.
로버츠 대표는 조직 구조 개편과 함께 제자훈련의 중요성도 강조했다. 그는 "영국을 포함한 세계 여러 지역에 제자훈련의 문제가 있다"며 기독교 신앙이 삶의 실제적인 변화를 이끌어야 한다고 밝혔다.
그는 "기독교는 쉽게 하나의 정체성이나 주일에 하는 활동, 막연한 가치관 정도로 머물 수 있다"며 "그것이 실제 삶의 방식을 변화시키지 못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참된 제자도는 종교 활동에만 머무는 것이 아니라 돈과 권력, 인간관계, 불의에 대응하는 방식에도 영향을 미쳐야 한다는 설명이다.
또한 CMS가 사회적으로 소외되거나 주목받지 못하는 공동체와 함께하는 사역을 계속해서 중시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이러한 영역을 '제자도의 변두리(edge of discipleship)'라고 표현했다.
여기에는 분쟁으로 피해를 입은 공동체, 목소리를 외면당해 온 원주민, 예수님을 알아 가는 무슬림 배경의 사람들, 영국 교회의 모습을 변화시키는 이주민, 전통적인 교회와 접점이 적은 지역에서 새로운 기독교 공동체를 세우는 개척자 등이 포함된다고 설명했다.
로버츠 대표의 발언은 세계 기독교의 인구 구성 변화와도 맞닿아 있다. 서구 교회가 세계 선교를 주도해 온 역사적 구조가 변화하면서, 선교단체의 지도력과 의사결정 구조가 세계 교회의 현실을 제대로 반영하고 있는지에 대한 논의도 이어지고 있다.
2025년 10월 서울에서 열린 세계복음주의연맹(WEA) 총회에서 선교 연구단체 오퍼레이션 월드(Operation World)의 기독교 연구자 제이슨 맨드릭(Jason Mandryk)은 전 세계 기독교인의 약 70%가 아프리카와 아시아, 라틴아메리카에 거주한다고 추산했다. 그는 세계 기독교 성장의 약 70%가 아프리카에서 이뤄지고 있다고 설명하며, 복음주의 기관의 지도부 구성이 실제 신자 분포를 충분히 반영하고 있는지에 대한 질문을 제기했다.
크리스천 데일리 인터내셔널(Christian Daily International)의 보도에 따르면, 올해 2월에는 아프리카 33개국에서 온 기독교 지도자 100명이 남아프리카공화국 요하네스버그에 모여 국제 선교에서 아프리카의 역할을 강화하는 방안을 논의했다. 국제선교위원회(IMB)가 주관한 이 모임에서는 아프리카 교회가 자체적인 선교 네트워크를 구축하고 복음 전도 활동에 대한 주도권을 확대해야 한다는 점이 강조됐다.
이는 지난 100년 동안 이어진 세계 기독교의 변화를 보여준다. 서구 국가에서 교회 출석률이 감소하는 가운데, 다른 지역의 기독교 공동체가 성장하고 영향력을 확대하면서 세계 선교의 주도권과 방향을 둘러싼 논의도 활발해지고 있다.
로버츠 대표는 서구 선교단체가 세계 복음 전도에 대한 참여를 중단해야 한다는 것이 아니라, 더 이상 자신들이 선교의 중심이라고 가정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그는 "오늘날 서구 선교 운동의 과제는 파송을 멈추거나 목소리를 내지 않거나 기여를 중단하는 것이 아니다"며 "우리가 중심에 있다고 생각하는 것을 멈추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제자를 삼고 선교의 변두리로 나아가라는 부르심은 굳게 붙들되, 누가 지도하고 누가 파송하며 선교단체가 어떤 모습이어야 하는지에 대한 우리의 생각은 훨씬 유연하게 가져야 한다"고 밝혔다.
그는 "예수님은 언제나 그런 선입견을 흔드는 데 능하셨다"고 덧붙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