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정희 전도사
(Photo : 서정희 전도사)

하욤 아프 아타.
소리 내어 몇 번 읽어 본다. 낯선 히브리어의 리듬이 입안에 맴돈다. 잠언 22장 19절에 나오는 말이다.
“내가 네게 여호와를 의뢰하게 하려 하여 이것을 오늘 특별히 네게 알게 하였나니.”
하욤은 ‘오늘’, 아타는 ‘너’다. 그 사이의 아프는 문맥에서 강조의 뜻을 더한다. 개역개정 성경은 이 구절을 ‘오늘 특별히 네게’라고 옮겼다.
오늘 특별히 네게.
나는 이 말을 자꾸 되뇌어 본다. 수많은 날 가운데 오늘, 수많은 사람 가운데 너. 이 말을 읽고 있자니 나도 특별한 사람이 되고 싶어진다. 스페셜한 사람. 나이가 들어도 여전히 꿈꾸는 것이 많은 사람이다.
그런데 특별한 사람이 된다는 건 어떤 것일까. 남들이 부러워하는 사람이 되는 것일까. 남보다 앞서고, 더 많이 갖고, 무슨 일이든 잘 해내는 사람일까. 나 역시 성실하게 살려고 애써 왔다. 계획을 세우고, 해야 할 일을 미루지 않으려 했다. 그런데 삶은 자주 계획표 밖으로 흘러갔다. 애쓴다고 다 되는 것도 아니었고, 마음먹는다고 마음대로 되는 것도 아니었다.
어떤 날은 자신만만하다가도 작은 일 하나에 마음이 무너진다. 잘 견디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문득 조급해지고, 괜찮다고 여겼는데 앞이 캄캄해진다. 우리는 저마다 씩씩하게 살아가는 듯 보이지만, 남에게 다 말하지 못한 사정 하나쯤은 품고 산다. 그래서일까. 사람은 누구나 답을 알고 싶어 한다. 지금의 어려움은 언제 끝날지, 내가 가는 길이 맞는지, 앞으로 무슨 일이 일어날지.
점집을 찾는 마음에도 그런 간절함이 있지 않을까. 불확실한 내일을 조금이라도 먼저 알고 싶은 마음, 누군가 지금의 고민에 분명한 답을 내려 주었으면 하는 마음. 나라고 다를까. 나 역시 답을 몰라 막막할 때가 있고, 아무리 생각해도 길이 보이지 않을 때가 있다. 당장 누군가 정답을 알려 주었으면 싶을 때도 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인 우리는 다른 길을 택한다. 앞날을 미리 알아내려 하기보다 말씀 앞에 앉는다. 모든 답을 한꺼번에 얻으려 하기보다, 오늘 내게 주시는 말씀을 듣고 여호와를 의뢰하는 법을 배운다.
릴케는 《젊은 시인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쉽게 풀리지 않는 질문을 서둘러 해결하려 하지 말고, 그 질문과 함께 살아가라는 뜻의 조언을 남겼다. 답을 얻지 못한 시간도 삶의 일부라는 이야기다. 생각해 보면 우리는 모르는 채로 기다리는 일을 참 어려워한다. 그러나 믿음은 모든 것을 미리 아는 능력이 아니다. 내일을 알지 못해도 오늘을 살아갈 수 있도록 하나님을 신뢰하는 일이다.
잠언 22장 17절은 지혜로운 사람의 말에 귀를 기울이라고 한다. 18절은 그 말씀을 마음속에 간직하고 입술에 담으라고 한다. 그리고 19절에서 그 목적을 밝힌다. 여호와를 의뢰하게 하려는 것이라고. 말씀을 듣고 마음에 새기는 까닭은 모든 것을 아는 사람이 되기 위해서가 아니다. 알 수 없는 일 앞에서도 하나님을 신뢰하는 사람이 되기 위해서다.
나는 책을 읽다가 마음에 걸리는 문장을 만나면 메모해 둔다. 특히 시집을 많이 읽던 고등학교시절부터 그런 습관이 생겼다. 한 문장을 옮겨 적고 그 옆에 그날의 생각을 남긴다. 시간이 흐른 뒤 오래된 노트를 펼치면 문장보다 먼저 궁금해지는 것이 있다.
그날의 나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을까. 무엇이 마음에 걸렸기에 이 문장을 적어 두었을까.
2015년 10월 20일, 내 노트에는 고흐가 동생 테오에게 보낸 편지에서 옮겨 적은 글이 있다.
“열심히 노력하다가 갑자기 나태해지고 잘 참다가 조급해지고 희망에 부풀었다가 절망에 빠지는 일을 또다시 반복하고 있다.
그래도 계속해서 노력하면 수채화를 더 잘 이해할 수 있겠지. 그게 쉬운 일이었다면 그 속에서 아무런 즐거움도 얻을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러니 계속해서 그림을 그려야겠다.”
이 문장을 적어 둔 날의 마음을 지금도 정확히 알 수는 없다. 다만 고흐가 겪는 흔들림이 낯설지 않았던 것 같다. 열심히 하다가 나태해지고, 잘 참다가 조급해지고, 희망을 품었다가 절망하는 마음. 그러면서도 다시 그림을 그리겠다는 사람.
나는 마지막 문장이 좋다. 그러니 계속해서 그림을 그려야겠다.
완벽해서 계속하는 것이 아니라, 아직 부족하기 때문에 다시 해 보는 것. 모든 것을 이해해서가 아니라, 아직 이해하지 못한 것이 남아 있기 때문에 배우기를 멈추지 않는 것. 오늘의 나는 고흐의 문장을 다시 읽으며 말씀 앞에 앉는 내 모습을 생각한다.
잠언은 지혜를 듣는 일에서 시작해 그것을 마음에 간직하고, 진리를 깨달아 바르게 답하는 데까지 나아간다. 그리고 그 지혜는 곧 생활 속으로 들어온다. 가난한 사람을 함부로 대하지 말고, 힘없는 사람의 권리를 빼앗지 말며, 쉽게 화내는 사람의 길을 따르지 말라고 한다. 자기 일을 능숙하게 하는 사람은 왕 앞에 서게 된다는 말도 있다.
말씀의 흐름이 참 현실적이다. 지혜는 머릿속에 쌓아 두는 지식이 아니다. 나보다 약한 사람을 대하는 태도에, 화가 날 때의 선택에, 내게 맡겨진 일을 해내는 성실함에 드러난다. 여호와를 의뢰한다는 말도 마찬가지다. 입술로 고백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오늘의 삶에서 모습을 갖추어야 한다.
나 역시 늘 그렇게 살지는 못한다. 마음이 급해지면 말이 앞서고, 내 사정이 힘들면 다른 사람의 형편을 넉넉히 헤아리지 못한다. 말씀을 오래 읽었다고 해서 매번 지혜롭게 행동하는 것도 아니다. 그래서 다시 읽는다. 내 마음이 말씀보다 앞서 달려갈 때, 내가 옳다는 생각으로 다른 사람을 판단할 때, 아직 배워야 할 것이 많다는 사실을 잊지 않으려고.
말씀을 읽는다고 내일의 모든 답이 주어지는 것은 아니다. 기도한다고 모든 일이 내가 바라는 순서대로 풀리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오늘 읽은 말씀이 내가 내릴 선택을 바꾸고, 누군가에게 건넬 말을 바꾸고, 뜻대로 되지 않는 일을 견디는 마음을 바꾸어 놓을 수는 있다. 어쩌면 그것이 말씀을 마음에 간직한다는 뜻일 것이다.
하욤 아프 아타.
오늘 특별히 네게.
이 말이 오늘은 나를 향한 부름처럼 들린다. 내가 특별해서가 아니다. 여전히 흔들리고, 자주 조급해지고, 모르는 것투성이인 나에게도 오늘의 말씀이 주어졌다는 사실이 특별하다. 내일을 미리 알아내는 대신 오늘의 말씀을 받고, 아직 알 수 없는 일까지 하나님께 맡기며 살아가는 것.
고흐에게는 다시 붓을 드는 일이 있었고, 릴케에게는 질문과 함께 살아가는 시간이 있었다. 내게는 다시 말씀을 펼치는 일이 있다. 오늘 다 이해하지 못해도 읽고, 마음에 새기고, 그 말씀을 의지해 하루를 살아 보는 일. 언젠가는 지금보다 더 잘 이해할 수 있겠지. 언젠가는 그 말씀을 내 삶으로 더 잘 표현할 수 있겠지.
특별한 사람이 되고 싶다. 여전히 그렇다. 다만 이제는 조금 다른 특별함을 꿈꾼다. 모든 일이 잘 풀리는 사람이 아니라, 일이 뜻대로 되지 않을 때에도 여호와를 의뢰하는 사람. 말씀을 많이 아는 데서 그치지 않고, 그 말씀 때문에 한 번 더 참고, 한 번 더 이해하고, 한 번 더 사랑하는 사람.
하욤 아프 아타. 오늘 특별히 네게.
오늘, 내게 주어진 말씀을 믿고 살아 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