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hoto : ) 최정인 교수: 미드웨스턴침례신학대학원(MBTS) 교수, 배톤루지한인중 앙교회 담임, 뉴올리언즈침례신학대학원(NOBTS) 객원교수, 성경과 교회사와 신학를 중심으로 기독교의 핵심 진리를 연구하고 전하는 일을 통하여 하나님의 왕국 사역에 매진하고 있으며, 온오프라인을 통해 신학생들과의 신학적 토론과 상담으로 많은 인기를 얻고 있다. 역서로 《신자들의 교회》(대장간)와 《탈기독교 세계의 예배와 선교》(디싸이플, 근간)
(Photo : ) 최정인 교수: 미드웨스턴침례신학대학원(MBTS) 교수, 배톤루지한인중 앙교회 담임, 뉴올리언즈침례신학대학원(NOBTS) 객원교수, 성경과 교회사와 신학를 중심으로 기독교의 핵심 진리를 연구하고 전하는 일을 통하여 하나님의 왕국 사역에 매진하고 있으며, 온오프라인을 통해 신학생들과의 신학적 토론과 상담으로 많은 인기를 얻고 있다. 역서로 《신자들의 교회》(대장간)와 《탈기독교 세계의 예배와 선교》(디싸이플, 근간)

 

 "밝으매 그 제자들을 부르사 그중에서 열둘을 택하여 사도라 칭하셨으니" (누가복음 6:13)

예수께서 공생애 사역을 하신 햇수는 보통 3년 반 정도로 추정할 수 있습니다. 그 최초의 사역은 요한복음 1, 2장에 나온다. 그리고 공관복음서는 주로 갈릴리 사역부터 출발한다면 예수께서 열두 사도를 선택하신 시기는 언제였을까? 아마 최소한 1년 정도는 흘렀을 것이다. 그런데 사도는 침례 요한에게 침례를 받고 제자가 되었거나, 침례 요한을 알고 있을 정도로 초기부터 예수와 함께했던 제자들 가운데서 열둘을 택하하신 것이다.

예수께서 심야 기도는 삼위 하나님의 내적 회의 (사도행전 1: 12~26)

복음서에는 예수께서 밤샘 혹은 심야 기도를 하시는 장면이 세 번 나온다. 그러나 오병이어 이후의 밤은 제자들을 찾아 호수를 걸으셨고, 겟세마네의 밤은 체포로 끝났으니, 온전한 밤샘 기도는 열두 사도를 택하시기 전날 가버나움 북쪽 그 산에서 드린 기도뿐이다. 나는 이 기도를 삼위 하나님의 내적 회의(inner meeting)로 이해한다. 삼위 하나님의 사업은 하나님의 왕국을 세우시는 것이며, 예수께서 하늘로 돌아가신 뒤 그 왕국을 확장하는 일의 핵심이 바로 그날 택하신 열둘이기 때문이다. 제자는 예수를 따르는 이들이고, 사도는 보내심을 받은 사람이다.

기도하며 기다린 증인 공동체(12~14절)

승천의 증인은 열한 사도만이 아니었다. 본문이 말하는 "그들"과 "제자들", 그리고 15절의 백이십 명을 고려하면 이 공동체 거의 전부가 증인이었다.

그들이 머문 곳을 한국어 성경은 "다락방"이라 옮겼다. 성경이 번역될 당시 한국에는 2층 집이 드물었던 탓에 우리는 좁고 어둡고 천장 낮은 공간을 상상한다. 그러나 원어 휘페론(ὑπερῷον, huperóon)은 대저택의 연회실을 떠올려도 좋을 만큼 넓은 2층 공간이다. 예수께서 마지막 만찬을 나누신 곳이 바로 이 마가 요한의 어머니 마리아의 집 2층이었다. 백이십 명이 최소한 열흘을 먹고 자고 기도했던 장소라는 점을 생각하면, 그 집의 규모와 마리아의 헌신이 어느 정도였는지 짐작할 수 있다.

누가가 열한 사도의 이름을 열거하는 방식도 눈여겨볼 만하다. 원어에서는 접속사 카이(καί)로 처음 여덟 명이 두 명씩 네 짝을 이루고 나머지 셋만 따로 열거된다. 사도행전 전반부에서 베드로와 요한이 함께 움직이는 이유가 여기 있다. 이름이 드러나지 않은 사도들도 이미 짝을 이루어 사역하고 있었던 것이다.

14절은 더 놀랍다. 이 공동체에는 여자 제자들과 예수의 어머니와 아우들이 포함되어 있었다. 누가복음 8장은 여자 제자들이 자기 소유로 예수 공동체를 섬겼다고 분명히 밝힌다. 스무 명 남짓한 공동체가 3년 가까이 경제활동 없이 복음 사역에 전념할 수 있었다면 그 후원의 규모가 어떠했겠는가. 교회에서 여자 어른의 중요성은 예나 지금이나 결코 간과될 수 없다. 남자 제자들의 면면도 마찬가지다. 어부든, 매국노로 불리던 세리든, 무력 투쟁으로 독립을 꿈꾸던 셀롯인이든, 과거의 신분은 아무런 고려 대상이 아니었다. 중요한 것은 지금 주님께 붙들려 그분의 왕국을 위해 얼마나 헌신하는가이다.

직분은 계급이 아니라 봉사다(15~26절)

베드로는 유다의 자리를 두고 시편 109편 8절을 인용한다. "그의 직분을 타인이 취하게 하소서." 하나님 앞에서 받은 직분을 바르게 행하지 않으면 결국 타인이 그것을 맡게 된다는 뜻이다. 우리는 성령이 주신 은사를 따라 주님이 맡기신 직분을 받고, 그 직분을 따라 하나님이 이루시는 사역을 감당한다. 은사, 직분, 사역. 이것이 순서이며 이것이 교회의 질서다. 제자들의 기도에 "봉사와 및 사도의 직무"라는 표현이 나란히 놓인 것도 같은 이치다. 은사와 직분과 사역은 결단코 계급이 아니고 권세도 아니다. 이 순서를 잊을 때 공동체는 권세를 부리는 자리로 변질된다.

사도의 자격은 분명했다. 요한의 침례로부터 승천의 날까지 항상 함께 다닌 사람이어야 한다. 그 사도들이 감당할 가장 중요한 사역은 부활의 증언이다. 예수의 죽으심은 온 유대가 아는 사실이었으나 부활은 그분이 택하여 만나주신 이들만 아는 사실이었다. 그러므로 교회는 예수 부활 증인 공동체다. 부활을 전하는 것은 곧 십자가를 전하는 것이다. 십자가는 부활을 포함하고 부활은 십자가를 포함한다.

후보로 세워진 두 사람 가운데 하나는 이름이 셋이었다. 바사바라 불렸고 히브리어 이름은 요셉이며 라틴어 이름 유스도까지 가졌으니, 그는 이미 라틴 문화권의 영향 아래 있던 사람이다. 다른 하나는 이름이 하나뿐인 맛디아였다. 제자들은 각자 선호하는 후보가 있었겠지만 인간의 모든 판단을 내려놓고 기도한다. 흥미롭게도 그들은 승천하신 지 며칠 되지 않은 성자 예수께 기도했다. 성부의 이름으로만 기도하는 것이 정석이 아니다. 어느 위격의 하나님께 기도하든 같은 기도다.

결과는 투표가 아니라 제비였다. 기도하고 제비를 뽑아 주님이 인도하신 결과에 승복했고, 이름이 셋이던 제자가 아니라 이름이 하나이던 제자가 열두째 사도가 되었다. 맛디아가 평생 사도가 되기를 소원하며 세력을 모았으리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우리의 귀결점도 하나다. 각자의 은사와 직분과 사역은 달라도, 그 모두는 하나님의 왕국을 세우기 위해 예수 부활의 증인으로 사는 데로 모인다.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행 1:8).

최정인 교수의 은혜로운 예배 영상은 이곳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베톤루지한인중앙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