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휴대전화 연락처에 아들과 딸의 이름 앞에는 똑같이 ‘시온의 대로’라고 적어 두었다.
아이들의 이름을 저장하면서 그 앞에 기도를 놓았다. 아이들이 바른 길을 걷기를, 세상의 소란보다 더 깊은 것을 알아보기를. 짧은 이름 앞에 적어 둔 네 글자에는 엄마의 긴 기도의 마음이 담겨 있었다.
그런데 어느 날, 나 역시 내 삶의 길을 다시 닦아야 하는 자리에 서게 되었다.
이혼은 한 사람을 떠나는 일로 끝나지 않았다. 가정의 자리를 지켜야 했고, 엄마로서 감당해야 할 몫이 남았다. 무엇보다 돈이 필요했다. 금과 은이 필요했다.
한 달 한 달 돌아오는 이자가 두려웠다. 다시는 겪지 않으리라 생각했던 돈 없는 설움을 또 마주했다. 현실은믿음보다 나를 더 압박해 왔다. 다음 달을 생각해야 했고, 무너질 틈 없이 내 삶을 관리해야 했다.

그때 잠언은 내 앞에 다른 셈법을 놓았다.
“지혜를 얻는 것이 금을 얻는 것보다 얼마나 나은고 명철을 얻는 것이 은을 얻는 것보다 더욱 나으니라.”
— 잠언 16:16
금과 은이 필요하지 않다는 뜻은 아니다. 필요한 것을 구하되, 그것만으로 삶의 가치를 계산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나는 가장의 자리를 지켜야 했다.
가정을 지키고, 다시 일어서고, 내 삶을 바르게 관리해야 했다.
동시에 연예인으로 살아가는 자리에서 지켜야 할 것도 있었다. 사람들의 시선 앞에 서는 얼굴만이 아니라, 말과 태도, 사생활의 경계, 그리고 어떤 상황에서도 쉽게 무너지지 않아야 할 나 자신의 중심이었다.
대중에게 보여지는 삶을 살아간다고 해서, 내 삶의 모든 부분을 내어주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더 분명한 기준과 절제가 필요했다.
엄마로서도, 한 사람의 여성으로서도, 세상에 드러나는 사람으로서도 나 자신을 함부로 잃어버릴 수는 없었다.
당장의 이익을 위해 정직을 내어주지 않는 것.
두려움이 나의 모든 선택을 대신하지 않게 하는 것.
그것이 내가 배워야 할 다른 셈법이었다.
잠언 16장 17절은 그 길을 이렇게 말한다.
“정직한 사람의 대로는 악을 떠나는 것이라 자기 길을 지키는 자는 자기의 영혼을 보전하느니라.”
관계를 떠나는 일도 그랬다. 마음이 떠났다고 말하는 것은 쉬웠지만, 떠나는 순간에도 어떤 사람으로 남을 것인지는 또 다른 문제였다.
상처를 안고 떠날 수는 있다. 그러나 상처가 나의 말과 선택을 끝까지 지배하게 할 필요는 없다.
나를 지킨다는 것은 삶을 포기하지 않는 일이며,
바르게 관리한다는 것은 주님이 주신 지혜로 내가 맡은 삶을 끝까지 돌보는 일이다.
잠언은 내게 이기는 힘을 준다.
모든 것을 소유하는 힘이 아니라, 금과 은이 필요한 현실 속에서도 다른 셈법을 선택하는 힘.
무너지고 싶었던 날에도 다시 일어나, 엄마의 자리와 연예인으로서의 책임, 그리고 한 사람으로서의 존엄을 지켜 내는 힘이다.
시온의 대로를 기도했던 엄마가, 오늘은 그 길에서 자신의 삶을 지켜갑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