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인수 목사(전 미주장신대 총장)
(Photo : ) 김인수 목사(전 미주장신대 총장)

“이르되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며 너와 네 집이 구원을 받으리라.” (사도행전 16:31)

 필자는 어려서 잘 모르지만, 해방 직후에 한국 사회에서 유행했던 경구(警句)가 있었습니다. “미국이라 믿지 말고, 소련에게 속지 말며, 일본 사람 일어나니, 조선 사람 조심하라.”는 내용입니다.

 맨 먼저 나오는 “미국이라 믿지 말고...”라는 가사는 미국은 언제까지나 우리의 우방이 될 수 없고, 언젠가 우리 곁을 떠날 수 있다는 의미입니다. 그럼 한국과 미국과의 관계를 역사적으로 더듬어 보기로 합시다.

 한국이 미국과 최초로 접촉한 것은 1866년 미국 무역선 General Sherman호가 대동강을 거슬러 올라오자, 관군의 퇴각하라는 명령을 어기고 계속 항진하다 결국 화재로 침몰하는 사건이 있었습니다. ‘General Sherman호 사건’입니다. 이 배에 영국 선교사 Robert Thomas가 중국 성경 몇 권을 가지고 왔다가, 배가 불타자 강변으로 올라와, 성경을 강변에 흩뿌리고, 칼에 맞아 순교한 사적은 모두 알고 있습니다. 최초의 개신교 순교자였습니다.

 미국 무역선이 조선에서 화재로 침몰한 사건을 조사하고, 통상을 요구할 목적으로 1871년 군함 다섯 척을 출동시켜 막강한 해군력으로 강화도를 유린한 후, 퇴각한 사건이 있었는데 이것이 신미양요(辛未洋擾)입니다.

 1876년 조선은 일본과 강화도 조약을 맺으면서 처음으로 중국 이외의 외국과 조약을 체결하고 개항(開港)했습니다. 그로부터 6년 후인 1882년 5월 조선과 미국은 ‘조미(朝美)수호통상조약’을 맺고 정식으로 미국과 교역을 시작했습니다.

 이 일을 계기로 조선과 미국은 정식 외교관계가 수립되어 1883년 미국은 서울에 영사관을 설치했고, 조선은 1887년 박정양을 초대 주미특명전권공사에 임명하고 와싱톤에 주미조선영사관을 개설했습니다.

 1905년 7월, 미국 전쟁부 장관 William Taft와 일본 내각 총리 카츠라 다로 사이에 소위 ‘카츠라-테프트 메모’가 채결되었습니다. 그 내용은 미국이 필리핀을 식민지로, 일본이 조선을 식민지로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이 협약으로 일제는 1905년 11월 을사늑약을 강제하여 조선의 외교권을 늑탈(勒奪)하고, 드디어 1910년 조선을 일본의 식민지로 만들었습니다.

 분명히 1882년 조미통상조약을 맺을 때, 조선이 독립국임을 선언한 미국이 자국의 이익을 위해 슬쩍 조선을 일본의 식민지로 넘긴 것입니다. “국제 사회에 영원한 친구도 영원한 적도 없다.”는 말이 사실로 증명된 것입니다.

 미국은 6.25사변 때 수만 명의 장병들을 희생 시키며 남한을 지켜 주었고, 이승만 대통령의 혜안(慧眼)으로 한사코 반대하는 미국을 설득하여 한미상호방위조약을 맺음으로 오늘까지 약 3만 명의 미군이 남한에 주재하여 북한의 남침을 방어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미국은 자기 나라에 해로운 일이나 유익이 되는 일이 있으면, 옛날 카츠라-태프트 메모와 같이 한국을 버릴 수 있는 나라임을 유념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한국은 핵무기를 갖고 있어야 합니다. 북한이 핵무기를 갖고 있는 한, 한국은 안전하지 못합니다. 지금 당장 핵무기를 갖지 못하면, 즉시 만들 만반의 준비를 하고 있어야 합니다.

 우리는 세상 어떤 나라도 영구히 믿어서는 안 됩니다. 영원히 변치 아니하고 우리를 사랑하시며 구원해 주실 분은 오직 진리이신 예수 그리스도 한 분 뿐입니다. 우리는 이 사실을 신앙고백 합니다. 샬롬.

L.A.에서 김 인 수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