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에 대한 양자 역학적 접근,
블랙홀 어느 지점에 이르면 다른 차원의 시간 열려
“부활을 믿을 때, 나중에 얻을 궁극적 부활이 삶 속으로 스며들기 시작한다”
영원한 관점, 생명의 관점 속에서 십자가를 보신 하나님 

씨드교회는 2024년 부활 주일을 맞아 "죽어도 살겠고” (요한복음 11:25-26)라는 제목의 설교를 통해, 부활은 2천년 전에 일어났던 역사적 사건을 믿는 개념론적, 교리적 차원의 믿음이나, 죽은 다음에 부활할 것을 믿는 것에 머물지 않고, “나중에 얻게 될 영원한 궁극적 부활이 삶 속으로 스며드는” 현실적인 것이며, 이 부활은 인간의 구원을 넘어, 로마서 8장의 피조물의 구원의 문제에까지 잇닿아 있다며, ‘환경 문제’가 구원 받은 그리스도인의 사명이라고 선포했다.

“최근 과학에 관심이 생겼다. 결정적 이유는 과학을 알면 알수록 신앙과 맞닿아 있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과학을 좀더 심도있고 폭넓게 이해할수록 하나님의 영역이 발견되기 시작했다. 과학, 사회적 영역 자체가 창조의 대상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흔적을 궁극적으로는 담아내게 되어 있다. 제가 결정적으로 관심을 갖게 된 이유는 임용성 장로님 덕분이다. 이 분은 한국인으로서는 최초로 미국에서 양자역학으로 박사학위를 따신 분일 것이다. 그분이 양자역학을 공부할 수록 신앙과 만나는 부분이 많다고 하신다. 최근에 이분이, 빛과 빛이 세개 부딪히면 입자가 생긴다. 양자역학에서, 빛은 파동이면서 입자이다. 저는 이런 것을 보면서, 예수님은 신성과 인성을 갖고 계시는데, 양자역학을 적용하면 너무나 당연한 것이 된다.”

“인터스텔라에 대해 다룰 때, 블랙홀과 웜홀에 대해 잠깐 나눈 적이 있다. 블랙홀에 빨려 들어가서 어떤 지점에 가면, 우리가 경험하고 있는 시간의 차원이 끝난다고 한다. 그리고 다른 차원의 시간으로 넘어간다고 한다. 대부분의 과학자들이 이것을 당연하게 받아들인다. 우리가 죽은 다음에 우리의 시간이 끝나고 그 이후에 새로운 차원의 시간이 열릴 수 있다. 예수님께서 하신 유명한 말씀,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어떻게 죽어도 사는가? 그런데, 우리의 죽음 자체가 생명과 이어져 있고 영원한 세계가 우리의 죽음과 이어져 있음을 이 논의 속에서 생각해 볼 수 있다.”

“부활을 믿는 것이란, 예수님께서 죽음을 돌이키시고 다시 사셨다는 그 승리의 이야기에 저와 여러분을 초대해 주신 것이다. 그리스도의 삶에 우리가 참여함으로, 우리의 삶도 그분의 부활의 이야기가 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음을 막지 않으셨다. 또 지금도 세상 가운데 죽음이 일어나고 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 영원한 관점, 생명의 관점 속에서 그 죽음을 보고 계시고 그 십자가를 통해 부활의 역사를 이루어 주셨다. 다른 말로, 어떤 실패와 절망이든 하나님께서는 돌이키실 수 있다. 이것이 부활의 능력이다.”

“성경의 많은 인물을 보라. 나는 더이상 소망이 없는 인간이라고 생각하는 인물들을 회복해서 사용하신다. 예를 들면, 모세, 사람을 죽였고 왕국에서 쫓겨났고 광야에서 40년을 살았다. 나는 실패자야, 자신에게 절망했던 모세를 하나님은 찾아가셔서 출애굽의 리더로 삼으신다. 부활절을 맞이할 때 우리가 생각할 수 있는 사람 중의 하나가 베드로이다. 배신자인 베드로를 놀라운 사도로 아름다운 하나님의 사람으로 살게 하셨다.”

“하나님의 사람에게는 이런 패턴이 있다. 죄인을 하나님의 영광에 참여하게 하신다. 이것이 부활의 도식이다. 예수를 믿는다는 것은 이 이야기 속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하나님은 모든 것을 돌이키실 수 있다. 죽음도 바꾸는 예수님의 능력 앞에 우리에게는 어떤 회복도 가능하다.”

“우리의 상황은 끝난 것이 아니다. 우리의 실패는 그것이 이야기의 끝이 아니다. 우리의 죽음도 죽음으로 끝난 게 아니다. 야이로의 딸이 죽었다. 모두 울고 있었다. 예수님이, 이 아이가 죽은 것이 아니라 자고 있는 것이라고 하신다. 어떤 죽음도 죽음으로 끝난 게 아니다. 이것은 절망의 상황이 아니라 하나님의 역사를 기대해야 하는 상황이다.”

“설교를 만족스럽게 했다고 느끼는 적은 매우 드물다. 그러다 설교를 망치면, 월요일 화요일이 계속 힘들다. 그러다 주중에 리더들이 보낸 보고서를 읽었다. 그 말씀을 살아내는 이야기가 너무 많은 것이다. 저의 죽었던 설교가 부활하더라. 저의 부족한 설교도 여러분이 부활시킬 수 있다.”

“부활을 믿을 때 많은 경우 ‘2천 년 전에 예수님이 살아나셨다’는 사실을 안 믿겨지지만, 믿어야지, 그정도 수준이다. 즉, 과거에 일어난 사건으로 부활을 믿는다. 어떤 분들은 죽은 다음에 부활할 것을 믿는다. 이것만 믿는 것을 부활신앙이라고 생각하는데, 아니다. 이 둘은 서로 연결되어 있다.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믿을 때, 나중에 우리가 얻을 영원한 궁극적 부활이 내 삶 속으로 스며들기 시작한다. 우리 부활 신앙은 굉장히 현실적인 것이다. 개념적인 것, 교리적인 것이 아니라 일상에서 현실에서 경험하는 것이다.”

“그 부활 중의 하나가 환경 문제이다. 롬 8:19-21에 ‘피조물이 탄식한다’고 나온다. 피조물의 탄식, 이 말씀이 그냥 문자인가, 지금 우리가 실제로 듣고 있는가? 지구 온난화, 해수면 상승, 지구 평균 온도 상승, 동식물의 멸종을 피조물의 탄식 소리로 듣고 있다. 인간의 탐욕으로 인해서, 기업은 더 많은 이익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환경이 파괴되었다. 인간의 죄악으로 피조물이 속박된 상태에 있다.”

“피조물의 해방, 우리가 구원을 생각할 때 인간의 구원만 생각한다. 그러나 세상의 피조물도 구원의 대상이라는 것을 이 구절에서 알 수 있다. 인간의 구원은 피조물의 구원과 밀접하게 관계되어 있다. 환경문제는 단지 사회문제가 아니라 구원의 문제, 구원받은 이들이 감당해야 할 사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