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해자 "다 회개하고, 구원받음"
피해자 "같이 천천히 말라 죽자"
시청자도 '사적 복수' 격한 응원
"한국에서는 용서가 쉽지 않은 것 같다."
미국 프로야구 메이저리그 출신 추신수 선수(SK)가 과거 학교폭력에 연루된 안우진 선수(키움)의 WBC(월드베이스볼 클래식) 대표팀 탈락을 아쉬워하며 남긴 말이다. 해당 발언을 비롯해 추신수 선수의 해당 인터뷰에 대해선 거센 비판과 반론들이 나오고 있지만, '워딩' 자체는 곱씹어 볼 만하다.
끔찍한 학교폭력 피해자 문동은(송혜교·아역 정지소)의 가해자 박연진(임지연·아역 신예은) 일당을 향한 복수극, 넷플릭스 시리즈 <더 글로리>에서도 '용서'는 일말의 고려 대상도 아니다. 죽지 않고 살아남은 문동은은 학폭 신고가 받아들여지지 않자 자퇴한 후 인생 20여 년 전부를 가해자들에 대한 '완벽한 복수'를 위해, 한땀한땀 치밀하게 설계하고 준비한다. 이런 '빌드업' 과정이 공개된 시즌1의 주 내용.
박연진·전재준(박성훈)·이사라(김히어라)·최혜정(차주영)·손명오(김건우) 등 주요 가해자 5인에 대한 응징을 위해선, 자신의 삶도 함께 파괴되는 것조차 상관없다. 그 타오르는 복수심을 1초라도 잃을까, 웃음조차 짓지 않을 정도. 헌법상 권리인 '행복 추구'는 언감생심, 차가운 한줄김밥을 씹으며 옥상에서 연진이 사는 집을 노려볼 뿐이다.
▲문동은의 아역 정지소와 송혜교 연기 모습. ⓒ넷플릭스 |
마치 연인에게 하듯 주 가해자인 연진에게 편지를 쓰면서 마음을 다잡는(?) 동은은, "나 네가 시들어가는 이 순간이 아주 길었으면 좋겠거든. 우리 같이 천천히 말라 죽어보자"고 혼잣말한다. "타락할 나를 위해, 추락할 너를 위해" 살아가는 동은은 "오늘부터 내 꿈은 너야, 연진아"라고 다짐한 터.
여기서 '기독교적 용서'와 '교회'는 영화 <밀양>이 그랬듯 (물론 오해한 것이지만) 하나의 '양념'처럼 등장한다. 가해자 중 한 사람인 이사라는 대형교회 목회자 딸이자 중독 상태인 '약빨'로 작품활동을 하는 화가로 등장한다.
이사라는 17년 만에 문동은을 만난 자리에서 "너한테 한 짓 다 회개하고 구원받았어"라고 당당하게 말한다. 기독교인들의 '말뿐인 회개', '값싼 구원'은 이미 클리셰(Cliché, 진부한 표현)가 돼 버렸다.
이후 문동은이 "넌 진짜 신이 있다고 생각해? 정말로?"라고 묻자, 이사라는 "방금 그 말 신성모독이야. 회개해. 천벌받기 싫으면"이라고 응수한다. 이에 문동은이 잠시 눈을 감더니 "방금 하나님이랑 기도로 합의 봤어. 괜찮으시대"라고 하자 사라는 "미친 X이 선 넘네"라고 받아치고, 동은은 다시 "너네 주님 개빡쳤어. 너 지옥행이래"라고 조롱한다.
▲(왼쪽부터) 교회에서 목사 딸 이사라와 대화하는 문동은. ⓒ넷플릭스 |
이성과 감정을 넘어선, 용기와 희생이 담긴 '원수 사랑'과 '용서'라는 가치가 처절하게 외면당하는 시대다. 시청자들도 피해자의 '사적 복수'를 열렬히 응원한다. 대리만족 또는 정의구현의 심정일 것이다. "넌 벌 받아야지. 신이 널 도우면 형벌, 신이 날 도우면 천벌"이라는 동은의 말에, 시청자들은 문동은처럼 "되게 신난다".
드라마처럼 가해자들에 대한 '공적 처벌'이 피해 규모에 비해 현저히 부족하거나 없는 등의 사회적 이유도 있다. 개인주의가 팽배해진 사회에서 '잘해주면 호구 된다', '호의가 계속되면 권리인 줄 안다' 등의 구호도 난무한다. 삶이 망가진 피해자들에게 "눈에는 눈으로, 이에는 이로"는 "너무 페어플레이 같은 것"이기도 하다.
하지만 예수님은 분명 "용서하라"고 말씀하셨다. 심지어 "일곱 번까지도 용서해야 합니까"라고 묻는 베드로에게 "일곱 번뿐 아니라 일곱 번을 일흔 번까지라도" 용서하라고 명령하셨다. 기도를 가르치실 때도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 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시옵고(주기도문)"를 넣으셨다.
하긴 용서가 쉽고 당위적이며 순리에 맞는 것이라면, 굳이 예수님께서 이렇게 강조하실 필요도 없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용서, 왜 해야 하며 어떻게 해야 하는지 깊이 생각해 봐야 한다.
용서 기초, 하나님께 받은 용서
원동력? 그리스도 속죄의 죽음
공동체 이유와 정의 추구, 장려
죄인임 깨달을 때, 원한 벗어나
팀 켈러의 용서를 배우다
팀 켈러 | 윤종석 역 | 두란노 | 360쪽 | 24,000원
이러한 때에, 회의론자들의 사도이자 '21세기의 C. S. 루이스'로 불리는 팀 켈러(Timothy Keller) 목사가 이 주제에 천착해 최근 발표한 작품이 <용서를 배우다(Forgive)>이다. 특유의 변증적 시각에 깊이와 넓이를 갖춘 책이 시의적절하게 나왔다.
팀 켈러는 자신의 다른 작품들처럼 먼저 '용서'를 용납하지 않는 우리 사회의 현주소를 진단하고, 책의 대전제인 '용서하지 않은 종의 비유(마 18:21-35)'를 통해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진정한 용서란 무엇인지 해설한다. 그리고 '용서하지 않아야 하는 이유'들을 하나씩 살핀 다음, 역사를 파고들어 기독교의 '용서'를 통해 (서구) 사회가 어떻게 변화해 왔는지 보여준다.
이후에는 구약 모세오경과 시편과 선지서, 신약 복음서 등 '용서의 원리와 실제'가 살아 숨 쉬는 교본인 성경을 펼친 후, 거룩하고 정의로우신 하나님께서 왜 용서하시는지, 예수 그리스도는 어떻게 십자가를 통해 정의와 사랑이 입 맞추게 하셨는지, 용서가 궁극적으로 지향하는 것은 무엇인지 등을 1장과 2장에서 설명하고 있다.
'용서하지 않은 종의 비유'에서 찾는 교훈으로 저자는 "우리의 용서가 하나님께 받은 용서에 기초해야 한다는 점"이라고 말한다. "다른 사람을 용서하지 않는다면, 이는 우리가 참으로 회개해 하나님께 용서받은 게 아니라는 증거다."
용서의 문을 열고 그 안으로 들어가는 것은, 가고 싶지 않지만 '아직도 가야 할 길'이다. 기독교는 처음부터 보복 없는 용서를 강조하고 실천하며 '복수로 점철된 고대 사회'에서 단연 눈에 띄었고, 서구 사회는 이러한 사랑의 윤리 덕분에 개인의 평등한 존엄성과 권리를 처음으로 공언하게 됐다. 그러나 죄책감은 심리치료로 묽어지고, 새로운 수치와 명예 문화는 용서 개념을 말살하고 있다.
▲팀 켈러 목사. |
저자에 의하면 기독교의 용서에는 기본적으로 세 가지 차원이 있다. ①수직적 차원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베푸시는 용서, ②내면적 차원은 우리가 가해자에게 베푸는 용서, ③수평적 차원은 우리가 가해자에게 내미는 화해의 손길이다. 비유 속 종이 용서하지 못한 이유는, 진정한 참회 대신 '자기 연민'에 그쳤기 때문이다. 회개하지 않았기에, 수직적 차원의 용서가 수평적 차원으로 연결되지 못했다.
"당신이 복음을 믿으면서도, 그러니까 순전히 하나님의 은혜와 값없는 용서로 구원받았다고 믿으면서도 계속해서 누군가에게 원한을 품고 있다면, 이는 최소한 당신의 삶에서 복음의 실제 효과를 막고 있다는 증거다. 또는 당신이 복음을 아예 믿지 않으면서 믿는다고 착각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어느 경우든 누군가를 용서하지 않으면 영적 옥살이를 자초한다."
그리고 우리가 용서할 수 있는 원동력은, 십자가에서 이뤄진 그리스도의 속죄의 죽음에 있다. 저자는 "하나님의 자비로만 살아가는 우리가 남을 심판한다면 스스로 하나님 자리에 앉아 있는 것 아닌가"라며 "서로 비판하고 되갚으면서 복수를 주고받는다. 모두 왕 행세를 하는 종이다. 왕 행세를 하는 종이 변화되려면, 종 되신 왕의 놀라운 사랑을 보는 길밖에 없다"고 설명한다.
"피고석에 있어야 할 우리가 판사석을 차지했다. 반면 당연히 우주의 심판석에 좌정하신 주님은 거기서 내려와 피고인의 자리에서 십자가를 지셨다. 온 땅을 심판하실 분이 우리 대신 심판과 형벌을 받으셨다는 사실이 우리를 낮아지게 하고 원한에서 벗어나게 한다. 나 또한 순전히 자비로만 살아가는 죄인임을 깨닫게 되기 때문이다. 동시에 이것은 우리를 높여서 원한에서 벗어나게 한다."
▲교회에서 이사라에게 "너 지옥행이래"라고 도발하는 문동은. ⓒ넷플릭스 |
나아가 기독교의 용서는 개인과 내적 치유에만 머무르지 않고, 공동체라는 외적·사회적 치유도 중시한다. 그리고 정의 추구를 저해하지 않고 오히려 장려한다. 저자는 "내적 용서는 가해자의 고통을 바라던 데서 유익을 바라는 쪽으로 태도를 바꿔놓는다. 이것이 내적 용서의 정수로, 반감이 사랑으로 돌아선다는 뜻"이라며 "용서를 베풀 때의 정수는 사랑이다. 자격을 따져서 용서해야 한다는 거래적 세속 모델은 사랑을 배제한다"고 풀이했다.
그러면서 "정의를 행할 때의 정수도 사랑이다. 정의를 추구한다는 것은 사랑으로 진실을 말하는 것, 그리고 정당한 처벌을 막으려고 가해자를 싸고도는 행태를 버리는 것"이라며 "정의 시행의 정수는 이웃 사랑이다. 가해자들이 그들의 마음 속에서 활동하는 악에서 해방되기를 바랄 정도로 그들을 사랑하는 것이다. 그래서 정의와 용서를 함께 추구하는 게 가능하다"고 전했다.
책의 뒷부분, 마지막 3장은 '진정한 용서를 시작하다: 용서, 어떻게 해야 하는가'이다. 이 나머지 내용이자 결론 부분은 절반만 공개된 <더 글로리> 뒷부분, 시즌2가 공개되면 함께 읽어볼 것이다. 투 비 컨티뉴드(To Be Continu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