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정책연구원 원장 이정훈 교수(울산대)가 지난 11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세계적 열풍인 넷플릭스 드라마 <오징어게임> 열풍 등을 비롯해 다양한 현안에 대한 일부 기독교인들의 '음모론'에 대해 우려를 제기했다.

이 교수는 '크리스천이라면...'이라는 제목의 해당글에서 "'오징어게임'을 보면 안 된다는 주장이 등장했다. 음모론이 판을 치고 있다"며 "기독교 유튜버가 구독자를 늘리려면 '증오, 혐오, 분노를 일으키거나 음모론을 다루어야 한다'는 분석이 전문가들 사이에서 등장했다"고 운을 뗐다.

이어 "'오징어 게임'은 마귀의 세계를 표현한 것이기 때문에 절대로 보면 안 된다고 강조하시는 분들이 음모론을 신봉한다"며 "이 분들의 주장에 따르면, 세상은 이미 '딥스테이트'나 '글로벌리스트'들에게 완전히 장악돼, 우리가 손 쓸 수조차 없는 지경이라고 개탄한다. 그들이 마귀의 도구라고 주장하는 것도 잊지 않으신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이 교수는 "이 분들의 주장이 사실이라면, 이미 우리가 사는 세상은 완전히 마귀가 장악한 말 그대로 '마귀 소굴'이라고 할 수 있다. 굳이 마귀적 드라마를 보지 않고 현실에서 숨만 쉬고 있어도, 마귀에 둘러쌓여 있다는 말"이라며 "드라마나 현실세계가 차이가 없다면, 드리마를 거부해야 하는 것이 규범이 될 수 있다면, 이 분들의 주장이 '참'이라면, 모든 크리스천들은 세상을 등져야만 한다"고 덧붙였다.

아울러 이 교수는 "그렇다면 우리는 마귀 청정 지역(?)인 화성이나 목성으로 탈출해야 할까? 우리가 화성이나 목성에 정착하는 날부터 다시 그 사회가 죄로 물들지 않겠는가? 그 다음에는 어디로 탈출해야 하는가"라며 "유리로 된 징검다리 위에서 안전을 보장받는 기도를 드리는, 이 신앙의 분별을 잃은 자의 비참한 신앙과 우리의 신앙은 무엇이 얼마나 다를까"라고 반문하기도 했다.

나아가 이정훈 교수는 일부 기독교인의 종교적 자기 합리화와 관련해 오징어게임 속 기독교인의 모습과 하등 다를바가 없다고도 강조했다. 그는 "교회에 투자자 존 리를 초대해 한방을 노리는 것을 정당화하고, 그 한방으로 대박이 나면 하나님의 은혜이고 쪽박을 차면 하나님의 징계라는 식의 하나님을 모욕하는 신앙과 '오징어 게임' 속 혐오의 대상이 된 기독교인의 신앙은 무엇이 다를까"라고 했다.

그리스도인의 소통의 기술 중 규범적 표현을 자주 차용하며 전제하는 행태에 대해서도 반성을 촉구했다. 그는 "'크리스천이라면...'은 요즘 그리스도인들 간의 소통 속에서 가장 많이 들리는 표현 아닐까"라며 "'크리스천이라면 ~해야 한다', '마땅히 ~해야 한다'는 표현은 '의무'를 부과하는 굉장히 강력한 말"이라고 했다.
이어 이 교수는 "법학자인 제게 규범적 표현은 매우 민감한 영역을 만들어 낸다. 바울은 엄밀히 따지면 당대의 최고 법학자였다. 칼빈도 마찬가지"라며 "두 분의 언어를 깊이 묵상해 보면, 우리의 경박함과 무엇이 다른지 명확해진다. 성경에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반드시 ~해야 한다' 또는 '~하면 반드시 죽는다'고 명백하게 말씀하신 것들은 크리스천에게 강력한 '도덕법'이 되며, 이것이 바로 규범의 원천이 된다"고 했다.

그는 "'코로나 백신은 구원의 조건이나 표지가 될 수 없다'고 발언했더니, 반응이 부정적인 관점에서 폭발적이다(물론 긍정적인 반응도 폭발적이다. 그래서 나는 희망을 느낀다)"며 "어떤 이는 '선악과'를 예로 들면서, '선악과'도 하나님이 허락해서 먹었냐고 나에게 따진다"고 말했다.

이정훈 교수는 "성경은 분명히 표현하고 있다. '먹으면 반드시 죽는다'고. 너무나 명확하게 명시하고 있다"며 "우리는 규범적 '금지'와 '허용'의 차이도 구분하지 못하기 때문에, 스스로 저주의 비극을 초래한다. 복음이 쉽게 저주로 바뀔 수 있다"고 전했다.

이 교수는 그러면서 "하나님의 명백한 말씀에 의혹을 제기한 것은 사단이다. 이 의혹 제기에 용기를 얻어 하나님과의 언약을 일방적으로 파기한 것은 아담과 이브이지, 하나님이 올무를 놓은 것이 아니다"며 "하나님이 되고 싶은 것은 아담의 본질적 죄성이다. '금지'를 남발하고 싶은 충동은 그 더러운 죄성을 현실에서 실현해 타인을 억압하고, 자신의 경건과 거룩을 타인과 구분하려는 죄성에 기인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자리에 서고 싶은 죄를 실현하는 사악한 방법 중 하나"라고 분석했다.

이 교수는 "'크리스천이라면...'이라는 표현들이 '금지'를 전제로 여기저기서 들려온다는 것은 죄가 난무하고 있다는 뜻이다. 그리스도인의 구원을 애매모호한 규범 기준을 근거로 박탈하는 분은 하나님이 아니다"며 "백신을 거부한 행위가 공로가 되어, 구원을 성취한다는 미친 신앙은 종교개혁 이래 우리 신앙의 근간이 되어 온 '칭의' 교리와 신학에 정면으로 도전하는 것일 뿐 아니라, 아담을 속인 그 더러운 목소리와 별반 다르지 않다는 것이 나의 확신"이라고 주장했다.

끝으로 이 교수는 젠더 이데올로기의 뿌리를 추적하며 동성애 배후 사상으로 주디스 버틀러라는 인물의 존재를 알리고, 그 위험성을 경고하던 시절 일부 기독교인들의 표절의 표절을 거쳐 버틀러가 푸코의 계승자로 둔갑하고 푸코마저 '네오마르크스주의자'로 낙인찍히는 등 오독이 판을 치고 있는 상황을 맞은 데에는 "씁쓸하다"는 반응을 보였다.

이 교수는 "버틀러는 헤겔을 재해석한 것으로 좌편향 학계의 스타가 되었다. 버틀러 이론은 이해하기 어렵기에 푸코의 주장과 비교하며 설명했던 것일 뿐(물론 푸코가 이해하기 쉽다는 말은 아니다)"이라며 "표절의 시대를 지나, 마치 버틀러가 푸코의 이론을 계승한 것처럼 되어 버렸다. 한 표절자에 의해 푸코가 '네오마르크스주의자'라는 황당한 주장도 떠돌다 사라졌다"고 했다.

그러면서 "바빠서 논평을 하지 않았더니, 좌파 쪽에서는 '극우들이 주디스 버틀러를 오독했다'는 주장들이 쏟아져 나오고, 버틀러를 비판한다는 쪽에서는 같은 말을 반복하는 것 말고 제대로 된 반박이 나오지 않고 있다"며 "버틀러가 푸코를 학문적으로 계승했다고 주장하는 것도 오류이지만, 푸코가 아동을 성폭행했다는 기 소르망의 폭로가 있다는 사실이 버틀러가 학문적으로 '소아성애'를 정당화했다는 논거가 될 수는 없다(이 글을 잘못 읽고, 내가 버틀러를 옹호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나올지도 모른다. 우리 상황이 이 정도)"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