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린 이런 목사를 원한다
우린 이런 목사를 원한다. 올바른 신학을 정립하여 신앙의 본질을 정확하게 가르치는 목사. 소명감을 가지고 교인들을 공평하게 대하며, 자기에게 특별히 잘하는 사람을 편애하지 않는 목사 
[사설] 북한 미사일 발사… 악은 필멸한다
북한이 또 다시 미사일을 발사했다. 지난 28일 북한은 미국 본토까지 타격이 가능한 것으로 평가되는 ICBM(대륙간탄도미사일)급 '화성-14형' 2차 시험발사를 감행했다. 국제사회는 즉각 규탄에 나섰고, 우리 군은 미군과 함께 대… 
기독교인이 우울증과 싸울 수 있는 10가지 방법
최근 목회자의 프리칭을 돕는 웹사이트 '프로 프리처'(PRO PREACHER)에 브랜든 힐게만(Brandon Hilgemann) 목사가 '기독교인이 우울증과 싸울 수있는 10 가지 방법'이라는 제목으로 글을 게재했다. 
성경고고학의 보물 '사해 사본' 발견하고 테이프로 붙이기도 했다?
1947년 타암라(Ta‟amra) 부족에 속한 베두윈 소년에 의해 성경 사본이 사해의 북서쪽 유대 광야에서 처음으로 발견되었다. 사해 사본의 발견은 학자들은 물론이고 유대인이나 기독교인들에게 거대한 충격을 가져다 주었다. 성경… 
“즐거움 자체는 죄가 아니지만 그것이 우상이 된다면…”
사단이 사용하는 전략은 어떤 것이 있을까? 우리가 적을 알고 하나님이 마련해 주신 무기 사용법을 안다면, 분명 이길 수 있다. 우리 안에 계신 이가 세상에 있는 이보다 크시기 때문이다(요일 4:1~4). 
[김성민 칼럼] 지붕 없는 천막
지난 주 차고를 정리하다가 오래 된 박스 하나를 찾게 되었다. 요즘 들어 더 이상 사용하지 않는 물건을 정리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는 터라 더 눈에 뜨인 것이다. 안 뜯은 지 오래 된 박스를 열어보니 뜻밖에 물건이 나왔다. … 
꿈꾸는 것을 멈췄는가? 다시 꿈꾸게 하는 성구 5가지
어린이에게 자라나서 무엇이 되기를 원하는지 묻는다면 의사, 과학자, 체조 선수, 발레리나, 프로 농구 선수 등 다양한 답벼을 듣게 될 것이다. 아이들은 꿈꾸는 것을 좋아한다. 사실, 아이가 꿈을 꾸는 것을 그만 둔다면 그것은 … 
피서로 독서를, 그리고 여행을
독서와 여행은 짝이다. 여행은 여러 종류가 있는데, 독서와 짝인 여행이 진짜 여행이다. 찌든 삶을 도피하기 위한 여행은 삶에서 일탈해 쉼을 얻기 위한 방편이 
성경에서 가장 비열한 사람은 누구인가?
성경에는 훌륭한 사람들의 예가 많이 있지만, 사악한 사람들의 사례도많이 있다. 그런데 성경에서 어떤 한 사람은 성질이 나쁘고 비열하게 그려진다. 
[이동규 칼럼] 성(性)중독과 성도착증이란 무엇인가
우리 삶에서 없어서는 안 될 것들이 있다. 그중에 하나가 살아 숨쉬는 것들에게 밀접하게 관계된 성(性)에 대한 것이다. 성이란 하나님께서 우주만물을 창조하시고, 인간을 창조하시며 생육하고 번성하라 하셨다. 바로 성이란 … 
아픔 때문에 더욱 애틋해지고 강해지는... 우리의 연애와 사랑
사람들은 사랑을 꿈꾼다. 아름답고 찬란하며 빛나는 사랑을 찾아 헤매고 있다. 그들의 마음은 사랑의 기쁨과 눈부심과 웃음에 부풀곤 하지만, 그 사랑에 슬픔과 아픔과 눈물이 섞여 있다는 것은 자주 망각한다. 
임지현 재입북 사태로 돌아보는... 탈북민과 자본주의 사회, 통일
지금 한국교회 안에서 준비하고 있는 많은 탈북민들이, 지금 당장 통일이 된다면 고향으로 달려가 고향 땅에 교회를 세우고 하나님의 사랑을 전하겠노라 다짐한다. 나 역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늘 이렇게 말해왔다. 
기독교 좌파와 우파의 공통된 잘못
하나님은 사람의 외적조건을 심사하여 심판하는 차별하는 분이 아니다. 내적 정체성을 기준으로 구원해주시는 구별하는 하나님이다. 바꿔 말해 신자는 불신자 때의 내적 정체성과 완전히 다를 뿐 아니라 더 중요하게는 정반대… 
[김인수 목사의 한국교회사] 교회의 항일(抗日)활동 (II)
무군무부(無君無父:임금도 없고 아비도 없다)의 종교로 낙인찍혀 온갖 수난을 겪은 천주교회와는 달리 처음부터 위군위민(爲君爲民)의 종교로 인식된 개신교는 일찍부터 애국심을 길러 왔다. 그런 기독교인의 애국심 발로의 한… 
[김영한 칼럼] 나사렛 예수의 대제사장 기도(II)
예수의 대제사장 기도는 그가 십자가를 지시기 전에 여태까지 지녀왔던 하나님과의 내적 삼위일체적인 관계를 가장 자세하게 드러내고 있다. 여기서 우리는 역사적 예수의 영원한 원천으로 거슬러 올라갈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