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28일 오전 버지니아 알링턴의 펜타곤 북쪽 주차장에는 수천대의 오토바이가 모여들기 시작했다. 

이날 정오에 시작되는 ‘천둥 소리(The Rolling Thunder)’ 행사에 참여하기 위해서다. 

천둥 소리는 미국이 참전했던 전쟁 중 포로가 된 군인들(POW, Prisoner Of War)과 실종된 군인들(MIA, Mission In Action)을 기억하고 기념하자는 취지에 공감하는 사람들이 매년 미모리얼 데이(Memorial Day)에 워싱턴DC에 모여 오토바이를 타고 행진하는 행사다. 

이들은 오토바이를 타고 펜타곤에서 출발해 미모리얼 다리를 건너 워싱턴 DC링컨 기념관을 지나 베트남전 기념관까지 행진하는 데 올해로 30주년인 이날 행사에 미 전역에서 수천명의 사람들이 모였다.
부디 쿠퍼는 이 행사에 참석하기 위해 일리노이 퍼키슨에서 900마일을 달려 워싱턴 DC까지 왔다. 올해까지 17년동안 이 행사에 참석했다는 그는 “우리가 원하는 것은 책임이다. 전쟁 중 포로가 되고 실종된 군인들을 찾고 그들을 집으로 돌아오게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매년 미모리얼 데이가 되면 워싱턴 DC 일대는 이 행사에 참석하기 위해 온 사람들의 오토바이 소리로 가득하다. 사람들은 굉음을 내며 지나가는 오토바이와 오토바이 뒤에 달려있는 전쟁 중 포로와 실종된 군인들을 상징하는 검은색 깃발을 보며 전쟁 포로와 실종자들을 기억하게 된다.  

시작은 베트남전 참전용사인 레이 만조와 아티 물러 두 사람에 의해서였다. 

이들은 1987년 워싱턴 DC 베트남전 기념비에서 베트남 전쟁 말 일부 실종된 미군과 포로들이 버려졌다는 말을 들고 이것은 동료 군인을 절대 뒤에 남겨두지 않는다는 해병대 정신에 위배된다며 이 이슈를 알려야 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이들은 베트남전 참전용사 오토바이 동호회가 주관한 행사에 참가한 후 워싱턴 DC에서 오토바이 집회를 하면 좋겠다는 아이디어를 얻었다. 

오토바이의 굉음을 내며 워싱턴 DC에 들어가 정부, 의회, 언론들에게 전쟁 중 포로가 된 군인와 실종된 군인들 이슈를 알리겠다는 것이다. 그들은 가족, 친구 참전용사들을 일일히 연락해 같이 오토바이로 행진하자고 제안했다.

이 행사의 이름은 1965년 북베트남 공격 명령인 ‘천둥소리 작전’(Operation Rolling Thunder)로 했다. 천둥 소리와 같은 오토바이 굉음을 내며 워싱턴 DC 지도자들에게 이 이슈를 알리자는 것이다. 이들은 오토바이 잡지 등에 이 행사를 소개하는 편지를 썼고 첫 행사인 1988년 미모리얼 데이에 놀랍게도 전국에서 2500여명이 참가했다. 

매년 참가자들의 수가 늘어나며 이들의 목소리는 의회, 정부에 전달되어 전쟁 포로와 실종된 미군을 찾고 재향군인들 권익을 위한 조치와 법들이 마련되었다. 1993년에 채택된 실종 군인법과 전사한 군인의 장례행절 근처에서는 시위를 금지하는 영웅 존경법 등이 대표적인 예들이다. 

천둥소리에 참가하는 사람들 대부분은 재향군인들이고 현재 미국 전역에 95개 지부가 있다. 이들은 회원을 모집할 때 자신들은 ‘오토바이 동호회가 아니다(Rolling Thunder®, Inc. Is Not a Motorcycle Club)라는 것을 분명히 하고 있다. 

사람들은 미모리얼 데이만 되면 전국 각지에서 모이는 이들을 보며 미모리얼 데이는 단순히 소풍하고 핫도그 먹는 날이 아니라 우리의 생명과 안전을 지켜주기 위해 싸우다 산화한 영웅들을 기리는 날이라는 것을 새롭게 기억하게 된다. 

이날 12시 출발 시간이 되자 펜타곤 북쪽 주차장에 기다리고 있던 수천대의 오토바이는 일제히 시동을 켰다. 천둥소리와 같은 굉음이 주차장에서 터져나왔다.

경찰 오토바이를 시작으로 이들은 4줄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 가운데는 렉스 틸러슨 국무장관도 있었다. 이들은 천둥 소리를 내며 성조기를 흔들며 환호하는 사람들의 환대를 받으며 포토맥 강을 건너 워싱턴 DC로 입성했다. 

<케이아메리칸 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