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6년 2월이었습니다. 여는 때와 마찬가지로 뱃속의 아기를 위해 정기검진을 하러 병원에 갔습니다. 그러나 심전도 검사결과 태아가 위급하니 급히 제왕절개 수술을 받아야 한다는 청천벽력과 같은 의사의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앞뒤 생각할 겨를도 없이 수술대에 올랐습니다. 마취로 인해 정신이 희미했지만 아이가 나올때 “으앙”하는 울음소리를 들을 수 있었습니다. 안도의 한숨과 함께 잠이 들었습니다.
그러나 아기가 태변을 먹어 인큐베이터 안으로 들어갔고, 앰블란스에 실려 서울 영동 세브란스 병원으로 급히 옮겨졌다는 소식을 나중에야 듣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혜성이는 엄마 품에 안기지도 못하고 다른 병원으로 옮겨졌습니다. 2 주 후에 남편은 혜성이를 병원에서 집으로 데려왔고, 정밀검사 결과 아무런 이상이 없다고 알려주었습니다. 저는,”그럼, 그렇지, 내 인생에 불행은 없을 거야” 하며 안도의 한숨을 쉬었고, 예쁜 혜성이를 품에 안을 수 있었습니다.
아이가 태어난 지 4주가 되면서 남들이 다 하는 BCG 접종을 받으러 주치의를 찾았습니다. 그때서야 저는 이 세상에서의 가장 큰 불행이 나에게 찾아왔다는 끔찍한 소식을 듣게 되었습니다. MRI 검사결과 혜성이는 머리에 이상이 있었고, 모세기관지염으로 이미 뇌성마비 판정을 받은 상태였습니다.
“일생 동안 ‘장애’로 살아야 한다니…”
남편은 이미 알고 있었지만 산후조리를 하고 있는 저를 위하여 차마 말을 할 수 없었던 것이었습니다. 혜성이는 뇌성마비로 몸을 거의 움직이지 못할 뿐만 아니라, 눈도 보이지 않고, 말도 못하는 복합장애를 가지고 태어났습니다. 혹시나 정상아이로 자랄 수 있을까 하는 간절한 바램으로 부지런히 병원을 들낙거렸지만 걸음마는 커녕 말 한마디 못하고, 부모와 눈 한번 마주치지 못하는 중증장애아였습니다.
어느 장애아를 낳은 엄마가 시장을 가려고 문 밖에 나서기만 하면 동네 아줌마들이 이상한 눈으로 보고, 젊은 엄마가 무슨 죄를 지었기에 그런 아기를 낳았느냐는 말에 큰 상처를 받았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누구보다도 행복한 가정을 꿈꾸며 그런 가정을 이루기를 원했던 저의 인생에 혜성이와 같은 아이가 태어나리라는 것은 꿈에도 상상을 못한 일이었습니다. 하나님을 몰랐던 당시에 우리 부부에게는 ‘절망’ 그 자체였습니다.
혜성이는 목을 가누지도 못했고, 알 수 없는 말로 칭얼거리며 종일토록 뒤척였습니다. 가만히 누워있지를 않고, 버둥거리며 칭얼거림으로 수 많은 날을 안아주고, 얼러주며 밤을 지새우기도 하였습니다. 절망과 좌절 속에서 이제는 혜성이를 더 이상 돌볼 수 없다고 생각하던 어느 날이었습니다. 잠시도 배가 고프면 참지 못하고 울던 혜성이가 끙끙 앓는 소리를 내더니 결국은 잠이 들었던 것입니다. 말도 못하고, 만져도 반응이 없으니 어디가 아픈 지도 모르며 그저 애만 태우는 엄마의 마음은 그 날도 여지 없이 무너져 내렸습니다.
그런데 혜성이의 잠든 얼굴을 바라보면서 이상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혜성이의 얼굴을 보면서 측은한 생각에 엄마의 눈을 뗄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그 동안 혜성이의 장애에 아파하고, 괴로워하고 절망했을 뿐 혜성이를 사랑의 마음으로 품지 못한 나 자신을 발견하게 된 것입니다.
지금 생각해 보니 그것은 하나님이 저에게 주신 하늘의 마음이었습니다. 당시 신앙이 없었던 저에게 하나님께서는 혜성이를 통해 놀라운 일을 행하고 계셨던 것입니다. 내 딸을 위해 엄마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가를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피할 수 있어서 행복하다면 기꺼이 피하겠지만, 피할 수 없다면 부딪혀서 이겨내야 하겠다는 강렬한 삶의 의지가 제 가슴 밑에서부터 용솟음쳤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여자는 약하지만, 엄마는 강하게 만드신 것 같습니다. <계속>
/북가주밀알선교단 제공
그러나 아기가 태변을 먹어 인큐베이터 안으로 들어갔고, 앰블란스에 실려 서울 영동 세브란스 병원으로 급히 옮겨졌다는 소식을 나중에야 듣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혜성이는 엄마 품에 안기지도 못하고 다른 병원으로 옮겨졌습니다. 2 주 후에 남편은 혜성이를 병원에서 집으로 데려왔고, 정밀검사 결과 아무런 이상이 없다고 알려주었습니다. 저는,”그럼, 그렇지, 내 인생에 불행은 없을 거야” 하며 안도의 한숨을 쉬었고, 예쁜 혜성이를 품에 안을 수 있었습니다.
아이가 태어난 지 4주가 되면서 남들이 다 하는 BCG 접종을 받으러 주치의를 찾았습니다. 그때서야 저는 이 세상에서의 가장 큰 불행이 나에게 찾아왔다는 끔찍한 소식을 듣게 되었습니다. MRI 검사결과 혜성이는 머리에 이상이 있었고, 모세기관지염으로 이미 뇌성마비 판정을 받은 상태였습니다.
“일생 동안 ‘장애’로 살아야 한다니…”
남편은 이미 알고 있었지만 산후조리를 하고 있는 저를 위하여 차마 말을 할 수 없었던 것이었습니다. 혜성이는 뇌성마비로 몸을 거의 움직이지 못할 뿐만 아니라, 눈도 보이지 않고, 말도 못하는 복합장애를 가지고 태어났습니다. 혹시나 정상아이로 자랄 수 있을까 하는 간절한 바램으로 부지런히 병원을 들낙거렸지만 걸음마는 커녕 말 한마디 못하고, 부모와 눈 한번 마주치지 못하는 중증장애아였습니다.
어느 장애아를 낳은 엄마가 시장을 가려고 문 밖에 나서기만 하면 동네 아줌마들이 이상한 눈으로 보고, 젊은 엄마가 무슨 죄를 지었기에 그런 아기를 낳았느냐는 말에 큰 상처를 받았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누구보다도 행복한 가정을 꿈꾸며 그런 가정을 이루기를 원했던 저의 인생에 혜성이와 같은 아이가 태어나리라는 것은 꿈에도 상상을 못한 일이었습니다. 하나님을 몰랐던 당시에 우리 부부에게는 ‘절망’ 그 자체였습니다.
혜성이는 목을 가누지도 못했고, 알 수 없는 말로 칭얼거리며 종일토록 뒤척였습니다. 가만히 누워있지를 않고, 버둥거리며 칭얼거림으로 수 많은 날을 안아주고, 얼러주며 밤을 지새우기도 하였습니다. 절망과 좌절 속에서 이제는 혜성이를 더 이상 돌볼 수 없다고 생각하던 어느 날이었습니다. 잠시도 배가 고프면 참지 못하고 울던 혜성이가 끙끙 앓는 소리를 내더니 결국은 잠이 들었던 것입니다. 말도 못하고, 만져도 반응이 없으니 어디가 아픈 지도 모르며 그저 애만 태우는 엄마의 마음은 그 날도 여지 없이 무너져 내렸습니다.
그런데 혜성이의 잠든 얼굴을 바라보면서 이상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혜성이의 얼굴을 보면서 측은한 생각에 엄마의 눈을 뗄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그 동안 혜성이의 장애에 아파하고, 괴로워하고 절망했을 뿐 혜성이를 사랑의 마음으로 품지 못한 나 자신을 발견하게 된 것입니다.
지금 생각해 보니 그것은 하나님이 저에게 주신 하늘의 마음이었습니다. 당시 신앙이 없었던 저에게 하나님께서는 혜성이를 통해 놀라운 일을 행하고 계셨던 것입니다. 내 딸을 위해 엄마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가를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피할 수 있어서 행복하다면 기꺼이 피하겠지만, 피할 수 없다면 부딪혀서 이겨내야 하겠다는 강렬한 삶의 의지가 제 가슴 밑에서부터 용솟음쳤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여자는 약하지만, 엄마는 강하게 만드신 것 같습니다. <계속>
/북가주밀알선교단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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