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김을 말하려는 것입니다. 노예도 주님을 섬기고, 연인도 사랑하는 사람을 섬깁니다. 같은 섬김이라 하더라도 질이 다릅니다. 어떻게 다를까요?

비행기 여행을 하면서 한편의 영화를 보았습니다. 영화 제목은 “La Vie En Rose” (장밋빛 인생)이었습니다. 1900년대를 대표하는 프랑스의 여가수, Edith Piaf의 일생을 재 구성한 영화였습니다. 불우한 가정에서 자라 버려진 듯 살아온 잡초 같은 인생이었지만, 18살에 노래 하나로 일약 스타가 됩니다. 그녀의 노래를 들으며 수많은 사람들이 환호를 하며, 갈채를 보내며, 그녀 앞에 머리를 숙입니다. 명실 공히 프랑스 샹송의 여왕으로 그의 인생은 다시 시작하게 됩니다.

수 많은 남성들이 그녀 앞에 머리를 조아리고, 그를 여왕처럼 떠 받들었고, 그녀 역시 여왕처럼 군림하며 살아갔습니다. 그에게 사랑하는 남자가 생겼습니다. 마르셀, 그는 권투선수로서 세계 챔피언이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그녀에게 구애했지만, 피아프의 마음은 챔피언인 마르셀에 꽂히고 맙니다.

내게 흥미롭게 다가왔던 영화의 한 장면은 그처럼 화려하고, 당당하고, 콧대 높은 피아프가 유독 마르셀 앞에서는 순한 양이 되고, 착한 식모가 되어 앞치마도 마다 않고 두를 것 같은 모습이었습니다. 그녀를 찾아온 애인 마르셀에게 뭔가를 해주지 못해 안달이었습니다. 무엇을 먹고 싶으냐고, 커피를 타 주고, 빵을 구워오는 모습이 새로웠습니다.

가끔 그런 모습을 봅니다. 손에 물 한번 담그지 않고, 공주처럼 곱게 자라온 자매들이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면, 그 남자를 위해 밥도 해 주고 싶고, 빨래도 해 주고 싶어 하는 모습입니다. 사랑은 뭔가를 해 주지 않고는 견디지 못하게 하는 묘한 힘이 있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서 라면, 어려운 일도 마다 않고 척척 해 내게 만드는 놀라운 힘이 바로 사랑입니다.

제 아내도 교회를 개척한 후에 교회를 열심히 섬겼습니다. 힘든 일, 궂은 일도 마다하지 않고 척척 해 내었습니다. 제 아내보다 더 열심히 섬기시는 분들도 많이 계십니다. 그래도 저를 따라 묵묵히 교회를 섬기는 모습을 보며 생각해 보았습니다. 주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섬기는 마음이 우선이겠지요. 그러나 목사인 남편을 사랑하는 마음이 없다면, 그렇게까지는 못할 거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사랑하는 남편이 가는 길을 같이 가려는 마음입니다.

노예는 주인을 섬기고, 연인은 사랑하는 사람을 섬깁니다. 노예도 섬기고, 연인도 섬기지만, 두 섬김은 성질이 다릅니다. 노예는 사랑 받으려고 섬기지만, 연인은 사랑하므로 섬기는 것입니다. 노예라 할 찌라도, 주인을 사랑하는 노예라면 그는 기꺼이 앞치마를 두를 것입니다.

피아프의 연인 마르셀은 불의의 비행기 사고로 세상을 뜨고 맙니다. 사랑하는 사람을 잃고만 피아프는 슬픔을 이기지 못합니다. 삭발하며 두문불출합니다. 마침내 슬픔을 딛고, 피아프는 다시 무대에 섭니다. 그리고 이렇게 노래합니다.

“그대가 원한다면, 나는 세상 끝이라도 갈 수 있어요. 머리도 금발로 물들이겠어요. 그대가 원한다면, 달도 따러 가겠어요. 도둑질도 하겠어요. 그대가 원한다면, 나는 조국도 버리고, 친구도 떠나겠어요. 그대가 원한다면, 사람들이 무엇이라고 비웃어도 무엇이든 하겠어요.”
-“Hymne a L’amour”(사랑의 찬가) 중에서

그대가 원한다면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그 노래가 귓가에 쟁쟁합니다. 그리고 생각해 보았습니다. 나는 어떤가? 나는 과연 할 수 있을까? 무엇이든 할 수 있을까? 주님이 원하신다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