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마테오한국학교 교장 임영숙 씨는 한국어를 가르치는 열정만큼 하나님을 향한 열정 또한 남다르다. 샌프란시스코 소재 생명의강교회 개척목회자인 임명순 목사 사모이기도 한 그녀는 이민 생활 20여 년 동안 오로지 하나님 인도하심에 붙들려 살아왔다 고백했다.
모태신앙이었지만 하나님을 깊이 체험하지 못했던 임명순, 임영숙 부부에게 미국은 하나님을 깊이 체험케 한 야곱의 ‘벧엘’ 같은 곳이었다.
“꿈 많던 20대, 영화감독이 되고 싶어 유학 온 남편을 따라 미국으로 오게 됐죠. 영화감독을 향한 열정에 넘쳤던 남편이 목회의 길을 걷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습니다”
당시 영화관련 전공이 없던 한국을 떠나 미국 유학을 선택했던 남편. 그를 따라온 아내 임씨 모두에게 ‘목회’란 계획에 없던 전혀 뜻밖의 일이었다. 그러나 하나님 인도하심은 인간의 생각과 달랐고, 유학비자로 3년 정도를 머물려 했던 임 씨 부부 이민 생활은 벌써 20년이 훨씬 넘었다.
남편 임 씨는 유학 6개월 만에 하나님을 깊이 만났고, 목회의 길을 결심했다. 남편보다 조금 늦게 미국에 도착한 아내 임 씨는 남편에게서 갑작스럽게 목회를 하겠다는 소리를 듣게 됐다고. 이런 남편의 고백으로 무척 당황했고, 목회가 고생 길로 여겨져 승낙하고 싶지 않았다고 한다.
“그런데 이상하게 아무 말도 할 수 없었어요. 내 생각은 ‘목회의 길이 쉬운 길이 아니니, 안되요. 여보, 조금만 더 생각해 보세요’ 라고 말하고 싶은 데, 그런데 이상하게 제 마음은 ‘할렐루야~ 아멘~’하며 기뻐하고 있는거예요. 입을 떼면 ‘아멘’이 터져나올 것만 같았죠. 이제 보면 그런 마음을 허락하신 것은 성령의 인도하심일 수 밖에 없었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어요”
남편을 향한 하나님의 큰 계획이 있을 거라 확신한 임 씨는 그 후 신학대학 뒷바라지를 하며 남편이 목회의 길을 잘 걷도록 지금까지 버팀목이자 동반자 역할을 감당하고 있다. 한 때 영화감독을 꿈꿨던 남편은 이제 ‘하나님 영화를 제작하는 임 목사’로 불리며 현재 5번 째 교회 개척을 위해 한국에 머물고 있다.
임 씨와 남편의 영혼에 대한 사랑과 열정은 신학생 시절부터 샘솟기 시작했는데, 학업과 일이 끝난 저녁 시간을 이용해 한인을 직접찾아 나설 정도였다고 한다.
“한인이 있다는 소문만 들리면 찾아갔습니다. 가서 위로하고 복음을 전하는 속에서 한인 이민자 안에 있는 아픔을 발견하게 됐고, 이런 가운데 이민 목회의 필요성과 결의를 가지게 됐어요” 당시 그들이 만났던 한인은 주로 ‘이민사회에 적응하기 위해 가장 먼저 발을 디딘다는 교회’에서 상처를 받고 아픔을 감추고 살아가고 있는 사람이 많았다고 한다.
이후 불신자는 물론 상처입은 사람을 위한 목회를 결심하고 90년 6월 다니던 리치몬드침례교회를 나와 임 씨 가정과 어머니, 아버지까지 총 6명이 새롭게 예배를 드리기 시작했다. 리치몬드침례교회를 떠나기 쉽지는 않았지만 남편의 목회 열정을 도와, 그 해 10월 창립예배를 드리고, ‘상항중앙침례교회’로 교회개척을 시작했다. 98년 ‘복음이 강처럼 흘러야 한다’는 하나님의 비전을 받고, 2001년 전 교인의 기도와 동의로 ‘생명의강교회’로 이름을 변경했다.
현재는 샌프란시스코에서 시작된 복음의 강물이 미얀마 3개 도시, 차웅타, 웨상, 파테인의 생명의강교회를 세웠고, 이것이 한국까지 이르러 올 4월 개척을 준비 중에 있다.
“쉴 새 없이 달려온 지난 삶을 돌아볼 때 인간이니까 편안하게 현실에 머물고 싶은 생각도 많이 했습니다. 그런데 혹 그것이 하나님 영광을 막지나 않을까 생각하니 순종할 수 밖에 없더라구요”
임 씨에게는 무엇보다 남편의 대한 순종 이전에 하나님 나라와 의를 향한 열정과 같은 곳을 함께 가는 부부에게 임한 하나님 축복인 ‘화목’이 베어 있었다.
“제가 아내지만 남편을 목사로써 항상 존경해요. 아무리 추운 겨울에도 새벽기도를 빠뜨리지 않고, 설교를 전할 땐 설교말씀을 토시 하나 빼놓지 않고 외우는 열정이 있죠. 그런 남편의 설교는 힘이 있고, 항상 성령의 은혜를 내리는 통로가 되고 있습니다”
임 씨는 “목회를 향한 남편의 열정과 순수한 몸부림에 순종할 수 밖에 없고 그를 이끄신 하나님 은혜에 더욱 그렇다”며 순종을 통한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강조했다.
모태신앙이었지만 하나님을 깊이 체험하지 못했던 임명순, 임영숙 부부에게 미국은 하나님을 깊이 체험케 한 야곱의 ‘벧엘’ 같은 곳이었다.
“꿈 많던 20대, 영화감독이 되고 싶어 유학 온 남편을 따라 미국으로 오게 됐죠. 영화감독을 향한 열정에 넘쳤던 남편이 목회의 길을 걷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습니다”
당시 영화관련 전공이 없던 한국을 떠나 미국 유학을 선택했던 남편. 그를 따라온 아내 임씨 모두에게 ‘목회’란 계획에 없던 전혀 뜻밖의 일이었다. 그러나 하나님 인도하심은 인간의 생각과 달랐고, 유학비자로 3년 정도를 머물려 했던 임 씨 부부 이민 생활은 벌써 20년이 훨씬 넘었다.
남편 임 씨는 유학 6개월 만에 하나님을 깊이 만났고, 목회의 길을 결심했다. 남편보다 조금 늦게 미국에 도착한 아내 임 씨는 남편에게서 갑작스럽게 목회를 하겠다는 소리를 듣게 됐다고. 이런 남편의 고백으로 무척 당황했고, 목회가 고생 길로 여겨져 승낙하고 싶지 않았다고 한다.
“그런데 이상하게 아무 말도 할 수 없었어요. 내 생각은 ‘목회의 길이 쉬운 길이 아니니, 안되요. 여보, 조금만 더 생각해 보세요’ 라고 말하고 싶은 데, 그런데 이상하게 제 마음은 ‘할렐루야~ 아멘~’하며 기뻐하고 있는거예요. 입을 떼면 ‘아멘’이 터져나올 것만 같았죠. 이제 보면 그런 마음을 허락하신 것은 성령의 인도하심일 수 밖에 없었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어요”
남편을 향한 하나님의 큰 계획이 있을 거라 확신한 임 씨는 그 후 신학대학 뒷바라지를 하며 남편이 목회의 길을 잘 걷도록 지금까지 버팀목이자 동반자 역할을 감당하고 있다. 한 때 영화감독을 꿈꿨던 남편은 이제 ‘하나님 영화를 제작하는 임 목사’로 불리며 현재 5번 째 교회 개척을 위해 한국에 머물고 있다.
임 씨와 남편의 영혼에 대한 사랑과 열정은 신학생 시절부터 샘솟기 시작했는데, 학업과 일이 끝난 저녁 시간을 이용해 한인을 직접찾아 나설 정도였다고 한다.
“한인이 있다는 소문만 들리면 찾아갔습니다. 가서 위로하고 복음을 전하는 속에서 한인 이민자 안에 있는 아픔을 발견하게 됐고, 이런 가운데 이민 목회의 필요성과 결의를 가지게 됐어요” 당시 그들이 만났던 한인은 주로 ‘이민사회에 적응하기 위해 가장 먼저 발을 디딘다는 교회’에서 상처를 받고 아픔을 감추고 살아가고 있는 사람이 많았다고 한다.
이후 불신자는 물론 상처입은 사람을 위한 목회를 결심하고 90년 6월 다니던 리치몬드침례교회를 나와 임 씨 가정과 어머니, 아버지까지 총 6명이 새롭게 예배를 드리기 시작했다. 리치몬드침례교회를 떠나기 쉽지는 않았지만 남편의 목회 열정을 도와, 그 해 10월 창립예배를 드리고, ‘상항중앙침례교회’로 교회개척을 시작했다. 98년 ‘복음이 강처럼 흘러야 한다’는 하나님의 비전을 받고, 2001년 전 교인의 기도와 동의로 ‘생명의강교회’로 이름을 변경했다.
현재는 샌프란시스코에서 시작된 복음의 강물이 미얀마 3개 도시, 차웅타, 웨상, 파테인의 생명의강교회를 세웠고, 이것이 한국까지 이르러 올 4월 개척을 준비 중에 있다.
“쉴 새 없이 달려온 지난 삶을 돌아볼 때 인간이니까 편안하게 현실에 머물고 싶은 생각도 많이 했습니다. 그런데 혹 그것이 하나님 영광을 막지나 않을까 생각하니 순종할 수 밖에 없더라구요”
임 씨에게는 무엇보다 남편의 대한 순종 이전에 하나님 나라와 의를 향한 열정과 같은 곳을 함께 가는 부부에게 임한 하나님 축복인 ‘화목’이 베어 있었다.
“제가 아내지만 남편을 목사로써 항상 존경해요. 아무리 추운 겨울에도 새벽기도를 빠뜨리지 않고, 설교를 전할 땐 설교말씀을 토시 하나 빼놓지 않고 외우는 열정이 있죠. 그런 남편의 설교는 힘이 있고, 항상 성령의 은혜를 내리는 통로가 되고 있습니다”
임 씨는 “목회를 향한 남편의 열정과 순수한 몸부림에 순종할 수 밖에 없고 그를 이끄신 하나님 은혜에 더욱 그렇다”며 순종을 통한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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