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고백하는 모든 자들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행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골2:6). 이 행하는 삶은 기독교 영성과 직결된다. 기독교 영성의 핵심은 예수 그리스도이다. 그 예수님도 영성을 가지고 계셨다. 그 영성을 가지고 예수님은 이 땅에서 온전히 기쁘고 아름답고 행복하게 사셨다.
오늘날 우리가 추구하는 진짜 영성은 무엇인가? 그토록 얻고자 하는 아름답고 향기 있는 영성이 무엇인가? 그것은 인간 주도의 영성은 아닐 것이다. 인간중심의 행위로 되는 영성은 더욱 아닐 것이다. 인간의 지혜와 이성으로 기막히게 만들어지는 영성은 더 더욱 아닐 것이다. 예수님의 영성이 진짜 영성이다. 그 예수님의 영성이 필요하다. 성경을 통하여 직접 보여 주신 예수님의 순수하고 아름다운 영성을 따라가야 한다. 예수님의 영성은 세상의 것과 혼합 된 영성이 아니라 하늘로부터 임하는 그야말로 맑은 하늘의 영성이다.
그렇다면 예수님의 영성은 무엇일까? 물론 개인에 따라 여러 가지로 나눌 수 있겠지만, 크게 세 가지로 나누고 싶다. 1)비우는 영성, 2)채우는 영성, 3)나누는 영성이다. 오늘은 그 첫번째로, ‘예수님의 비우는 영성’에 대하여 함께 나누고자 한다.
예수님의 영성은 비우는 영성이다.
예수님은 비우는 영성의 극치를 이루신 분이시다. 예수님은 원래 하나님과 동등한 분이지만 그러한 원래의 자신을 비어 종의 형체를 가지고 사람으로 오신 분이시다(빌2:6-8). 예수님의 사역은 ‘비움’으로 시작한다. 철저하게 자기를 비우셨다. 이 세상 어디에서 이 보다 더한 비움을 보았는가? 예수님이 자신을 비우셨던 것처럼 ‘자신을 비우는 것’이 기독교 영성의 첫 번째 원리가 되어야 한다.
그렇다면 ‘비운다’는 말의 의미가 무엇일까? ‘비운다’라는 단어를 헬라어로 보면, 몇 개의 뜻이 있는데, 그 중에서 ‘영향력이 없게 하다’는 뜻을 발견할 수 있다.
예수님이 자신을 비우셨다는 말은, 사역의 모든 현장에서 ‘자신의 영향력을 없게 하셨다’는 말이다. 그렇다. 예수님은 자기의 소유권을 버렸고, 자기를 텅 빈 상태로 만들었으며, 자신을 철저하게 겸손히 낮추셨다. 예수님은 처음부터 끝까지, 변함없이, 비우는 영성으로 일관하셨다.
우리가 비워야 할 것이 무엇인가?
예수님의 비우는 영성을 주목하게 되면, 예수님의 영성은 오늘날 시대정신과 시대흐름과 우리들의 기대치와는 상당히 거리가 멀다는 것을 금세 알게 된다. 오늘 같은 시대에 누가 자기의 것을 비우려고 할까? 그러나 진짜 기독교 영성을 원한다면 예수님의 비우는 영성을 따라야 한다.
무엇을 비워야 하는가?
복음을 복음되지 못하게 하는 율법주의와 자기의 의와 자기의 기준과 자기의 능력과, 과거 삶의 그리움과 옛 성품과 하나님을 반대하는 세상의 원리를 버려야 한다. 또한 믿음이 아닌 불순종과 세상의 욕심과 세상의 기준과 정욕, 그리고 나의 야망과 철저한 개인주의와 이기적인 모습, 부정적인 생각과 태도, 등등의 모든 것들을 비워야 한다. 성경은 이러한 것들을 통 털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요일2:16)이라고 말한다. 이러한 것들은 예수님으로부터, 하늘로부터 온 것이 아니라, 세상으로부터 왔다. 그 ‘육신의 정욕, 안목의 정욕, 이생의 자랑’은 다음과 같이 생각할 수 있다.
1)육신의 정욕
- 하나님께서 금지하신 것, 곧 하나님께서 싫어하시는 것을 마음에 품고 그리워하며 쫓아가는 것을 말한다.
2)안목의 정욕
- 하나님과 상관이 없고, 하나님께서 싫어하시는, 환상에 불과한 것을 그리워하며 쫓아가는 것을 말한다.
3)이생의 자랑
- ‘이생’은 영원한 영적 생명(zoe)이 아니라, 일반적인 생명(bios)을 말한다. 곧 영적인 것이 아닌, 일반적인 생명의 만족을 위하여, 돈과 재물과 많은 소유와 화려함 같은 것을 자랑하고, 그것을 목표삼고 그것에 가치를 두고 따라가는 것이다.
비우는 영성 VS 모조품 영성
이러한 세상적인 것을 마음 깊은 곳에 그대로 가지고 있으면서 ‘비우는 영성’을 간직한다는 것은 거짓말이다. 그것은 비우는 영성이 아닌, ‘모조품 영성’이다. 기독교인들이 비우는 영성을 갖지 못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모조품 영성의 능력(?)아래 굴복 당하기 때문이다.
모조품 영성이 무엇인가? 비우는 영성의 주체는 예수님이신데, 모조품 영성의 주체는 사람이다. 그러기에 모조품 영성이란 자신이 만든 기준과 틀을 따라가는 영성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이 있는 것 같은데, 속을 들여다보면 철저하게 자기의 것과 세상의 것이 공존하고 있는 영성이다. 그래서 모조품 영성인 것이다. 모조품 영성은 기독교 영성이 아니다. 거짓 영성이다. 모조품 영성에 속지말자. 모조품 영성은 몰아내야 한다.
이 ‘모조품 영성’을 가지고 있는 한 ‘비우는 영성’은 환상에 불과하다. 이룰 수 없다. 예수님의 비우는 영성이 정말 이 시대에, 모든 교회들과 기독교인들의 신앙과 삶의 현장에 절대적으로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예수님은 하나님 앞에서 철저히 자신을 비우셨다. 비우는 영성의 극치를 이루신 예수님의 영성을 살아보자. 다음에 한 번 더 ‘예수님의 비우는 영성’에 대하여 나눌 것이다.
/올네이션스교회 양종관 목사
오늘날 우리가 추구하는 진짜 영성은 무엇인가? 그토록 얻고자 하는 아름답고 향기 있는 영성이 무엇인가? 그것은 인간 주도의 영성은 아닐 것이다. 인간중심의 행위로 되는 영성은 더욱 아닐 것이다. 인간의 지혜와 이성으로 기막히게 만들어지는 영성은 더 더욱 아닐 것이다. 예수님의 영성이 진짜 영성이다. 그 예수님의 영성이 필요하다. 성경을 통하여 직접 보여 주신 예수님의 순수하고 아름다운 영성을 따라가야 한다. 예수님의 영성은 세상의 것과 혼합 된 영성이 아니라 하늘로부터 임하는 그야말로 맑은 하늘의 영성이다.
그렇다면 예수님의 영성은 무엇일까? 물론 개인에 따라 여러 가지로 나눌 수 있겠지만, 크게 세 가지로 나누고 싶다. 1)비우는 영성, 2)채우는 영성, 3)나누는 영성이다. 오늘은 그 첫번째로, ‘예수님의 비우는 영성’에 대하여 함께 나누고자 한다.
예수님의 영성은 비우는 영성이다.
예수님은 비우는 영성의 극치를 이루신 분이시다. 예수님은 원래 하나님과 동등한 분이지만 그러한 원래의 자신을 비어 종의 형체를 가지고 사람으로 오신 분이시다(빌2:6-8). 예수님의 사역은 ‘비움’으로 시작한다. 철저하게 자기를 비우셨다. 이 세상 어디에서 이 보다 더한 비움을 보았는가? 예수님이 자신을 비우셨던 것처럼 ‘자신을 비우는 것’이 기독교 영성의 첫 번째 원리가 되어야 한다.
그렇다면 ‘비운다’는 말의 의미가 무엇일까? ‘비운다’라는 단어를 헬라어로 보면, 몇 개의 뜻이 있는데, 그 중에서 ‘영향력이 없게 하다’는 뜻을 발견할 수 있다.
예수님이 자신을 비우셨다는 말은, 사역의 모든 현장에서 ‘자신의 영향력을 없게 하셨다’는 말이다. 그렇다. 예수님은 자기의 소유권을 버렸고, 자기를 텅 빈 상태로 만들었으며, 자신을 철저하게 겸손히 낮추셨다. 예수님은 처음부터 끝까지, 변함없이, 비우는 영성으로 일관하셨다.
우리가 비워야 할 것이 무엇인가?
예수님의 비우는 영성을 주목하게 되면, 예수님의 영성은 오늘날 시대정신과 시대흐름과 우리들의 기대치와는 상당히 거리가 멀다는 것을 금세 알게 된다. 오늘 같은 시대에 누가 자기의 것을 비우려고 할까? 그러나 진짜 기독교 영성을 원한다면 예수님의 비우는 영성을 따라야 한다.
무엇을 비워야 하는가?
복음을 복음되지 못하게 하는 율법주의와 자기의 의와 자기의 기준과 자기의 능력과, 과거 삶의 그리움과 옛 성품과 하나님을 반대하는 세상의 원리를 버려야 한다. 또한 믿음이 아닌 불순종과 세상의 욕심과 세상의 기준과 정욕, 그리고 나의 야망과 철저한 개인주의와 이기적인 모습, 부정적인 생각과 태도, 등등의 모든 것들을 비워야 한다. 성경은 이러한 것들을 통 털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요일2:16)이라고 말한다. 이러한 것들은 예수님으로부터, 하늘로부터 온 것이 아니라, 세상으로부터 왔다. 그 ‘육신의 정욕, 안목의 정욕, 이생의 자랑’은 다음과 같이 생각할 수 있다.
1)육신의 정욕
- 하나님께서 금지하신 것, 곧 하나님께서 싫어하시는 것을 마음에 품고 그리워하며 쫓아가는 것을 말한다.
2)안목의 정욕
- 하나님과 상관이 없고, 하나님께서 싫어하시는, 환상에 불과한 것을 그리워하며 쫓아가는 것을 말한다.
3)이생의 자랑
- ‘이생’은 영원한 영적 생명(zoe)이 아니라, 일반적인 생명(bios)을 말한다. 곧 영적인 것이 아닌, 일반적인 생명의 만족을 위하여, 돈과 재물과 많은 소유와 화려함 같은 것을 자랑하고, 그것을 목표삼고 그것에 가치를 두고 따라가는 것이다.
비우는 영성 VS 모조품 영성
이러한 세상적인 것을 마음 깊은 곳에 그대로 가지고 있으면서 ‘비우는 영성’을 간직한다는 것은 거짓말이다. 그것은 비우는 영성이 아닌, ‘모조품 영성’이다. 기독교인들이 비우는 영성을 갖지 못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모조품 영성의 능력(?)아래 굴복 당하기 때문이다.
모조품 영성이 무엇인가? 비우는 영성의 주체는 예수님이신데, 모조품 영성의 주체는 사람이다. 그러기에 모조품 영성이란 자신이 만든 기준과 틀을 따라가는 영성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이 있는 것 같은데, 속을 들여다보면 철저하게 자기의 것과 세상의 것이 공존하고 있는 영성이다. 그래서 모조품 영성인 것이다. 모조품 영성은 기독교 영성이 아니다. 거짓 영성이다. 모조품 영성에 속지말자. 모조품 영성은 몰아내야 한다.
이 ‘모조품 영성’을 가지고 있는 한 ‘비우는 영성’은 환상에 불과하다. 이룰 수 없다. 예수님의 비우는 영성이 정말 이 시대에, 모든 교회들과 기독교인들의 신앙과 삶의 현장에 절대적으로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예수님은 하나님 앞에서 철저히 자신을 비우셨다. 비우는 영성의 극치를 이루신 예수님의 영성을 살아보자. 다음에 한 번 더 ‘예수님의 비우는 영성’에 대하여 나눌 것이다.
/올네이션스교회 양종관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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