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든 친구와 친척을 뒤로 하고 비행기에 몸을 실었을 때 눈물이 났습니다. 친구들이 써놓은 이별의 말이 적힌 두꺼운 노트북을 읽으면서 옆에 앉은 사람이 보는 게 부끄러워 소리를 내지는 못했지만 북받치는 슬픔에 가슴이 저렸습니다. 그렇게 한국을 뒤로 하고 미국에 왔습니다. 언제 다시 올 기약도 없이 떠나 온 뒤로 13년이 돼 갑니다.

미국은 설렘이었고 혼란이었고, 난처함이고, 부끄러움이고, 고통이었습니다. 이제는 미국에서 이민생활은 내게는 익숙해진 가시가 되었습니다. 어떤 고통이 오래 되면 우리는 그 고통에 익숙해집니다. 그래서 처음보다 덜 아픕니다. 그리운 얼굴이 생각이 나고, 그리운 거리가 생각이 나도 그리워만 하는 것이 이제는 그냥 늘 있는 일입니다. 가끔 몸살을 앓듯 남몰래 찾아오는 그리움이 있어도 바쁘게 지나는 삶속에서 마음 한구석으로 밀어 놓게 됩니다. 이런 쌓아놓은 그리움이 뭉치면 때로는 한숨이 되어 나옵니다. 바쁜 이민 생활 속에서 잠시 틈이 났을 때 마음이 허전 한 이유는 아마도 쌓여있는 그리움만큼 우리 마음에 빈곳이 있어서 인가 봅니다.

이번 주에 교인 한 가정이 한국으로 귀국하셨습니다. 정들었던 교우들과 헤어지는 것이 섭섭하셔서 자꾸만 눈물을 글썽이시면서 “미안합니다.” 라고 말씀하시면서 가셨습니다. 교우님을 보내드리면서 서운하고 아쉬웠습니다. 그런데 또 한편으론 서글펐습니다. 내 마음이 무뎌진 게 아니가 하고는 내 속마음을 들여다보고는 조금 우울해 졌습니다.

정들었던 사람이 떠나가는데 슬프고 섭섭한데 애써 슬퍼하지 않으려 하지 않아도 이상한 덤덤함이 느껴졌습니다. 내가 ‘왜 마음이 이리 둔해 졌나?’ 하고 묻고 생각하다 보니 내가 만남도 많았지만 이별도 많이 겪어서라는 걸 깨달았습니다.

이민생활은 사랑하는 사람들과의 이별로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슬퍼하는 가운데 또 새로운 사람들과의 만남이 시작됩니다. 그리고 의지할 것 없고 생면부지의 타국 땅에서 가족보다 더 친하게 지내게 되는데, 이런 정든 사람들이 떠나갑니다. 교회로 사람들이 오고 떠나는 일은 이민교회에서는 늘 있는 일입니다. 학생들은 공부가 끝나면 떠나고, 어른들도 출장이 끝나면 돌아가고, 새로운 삶을 찾아 이사 가기도 합니다. 생명의강교회에 5년 전에 온 뒤로 많은 분들을 만났고 많은 분들이 떠나셨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이제 사람을 떠나보내는 것이 익숙해 진 모양입니다.

“내일 만날 사람처럼 헤어집시다. 조금만 울고... 그래야 다시 만났을 때 어색 하지 않으니까” 제가 변명처럼 하는 말입니다. 떠나가는 사람들을 보내놓고 차라리 엉엉 울고 잊었으면 좋겠는데. 어쩌면 어색한 서운함으로 보내놓고 뒤돌아 마음이 답답해지는 것은 다 쏟아 놓지 못한 울음들이 마음 한 곳에서 내 가슴을 눌러서 인가 봅니다.

우리는 나그네처럼 왔다가 가는 사람들입니다. 천국을 향한 순례에 길에서 서로 어깨를 부비며 함께 걷다가 다른 길로 가야하는 형제들을 향해서 우리는 “집에서 보자”라고 인사말을 해주고 싶습니다. “천국에서 영원히 보고 살 텐데, 잠깐 헤어지는 건데 머” 예수님을 믿는 믿음 안에서의 만남들은 앞으로 천국에서 함께 지낼 식구들을 미리 알게 되는 기쁜 일입니다. 어떤 분들은 예수님을 모르다가 우리 영원한 가족에 일원이 되는 과정을 내가 목격하기도 합니다. 우리는 오늘 눈물로 헤어지지만 기쁨으로 반드시 다시 만날 것을 알기에 소망을 가집니다.

우리가 믿는 예수님께서 준비 해 놓으신 처소에서 우리가 지나왔던 여정에 대한 추억을 함께 나눌 날들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먼저 떠난 분들과 남아있는 사람들이 그때는 다 같이 만나서 모두가 함께 웃을 그날이 기다려집니다. 그때 까지 우리가 올라야 산과 건너야 할 강 들이 많이 있겠지요. 앞으로 또 많은 사람을 만나고 헤어지겠지요. 우리 조금만 우울해 합시다. 힘든 오늘이 지나면 밝은 내일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으니까요. 우울한 날들엔 우리 내일을 생각 합시다. 그때 우리는 어쩌면 우울한 날들을 그리워 할 지도 모르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