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2년 7월 15일 창립된 뉴욕감리교회(담임 이강 목사)는 창립 35년을 맞아 다채로운 교회 축제를 펼치고 있다.

지난 10월 22일(월)부터 '믿음이 흔들리는 분께 고(告)함'이라는 주제로 특별새벽기도회가 진행되고 있다. 이강 목사가 말씀을 전하는 특별새벽기도회는 31일(수)까지 5시 30분부터 6시 25분까지 열흘간 진행된다.

또한 28일(주일) 오후 5시에는 뉴욕감리교회서 함께 신앙 생활했던 초창기 구성원을 초청해, 이민 교회 초창기 개척 시절 애환과 추억을 나누며, 그들 노고를 치하하고 그동안 함께 동행한 하나님 손길을 기뻐하고 감사하는 'Homecoming Sunday'를 실시한다. 이날 2명 권사 임직을 축하하는 시간도 마련된다.

이어 31일(수) 저녁부터 내달 2일(금)까지 김원기 목사(워싱턴휄로쉽교회)가 강사로 나선 가운데 '끝없는 사랑'이라는 주제로 부흥성회가 열린다.

이강 목사는 "성경에 나타난 모든 인물은 하나님으로부터 감시를 받았던 인물이다. 감시를 받는다는 것은 또 다른 측면에서 하나님께서 우리를 눈동자처럼 지키신다는 성경적 표현이다. 성경 인물을 하나님 명령에 순종할 뿐 아니라 하나님을 거스르지 않고 생활하기 위해 애써서 기도하였던 인물이다. 기도 가운데 자신 생활을 하나님께 공개했고, 공개된 모든 영역에서 하나님 도우심을 받았다."라며 "이들은 모두가 다 자신을 하나님께 기도로 먼저 내어놓고 하나님 감시 받기를 원했다. 그렇게 하나님 감시를 받기 원했던 것은 감시받는 그들 삶이 하나님 도우심으로 충만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기도 가운데 우리 삶 모든 영역을 하나님께 공개한다는 것은 공개된 영역이 하나님 감시를 받기에 동시에 눈동자처럼 지키시는 그분 보호와 도움을 요청하는 것이 되는 것이다"고 설명했다.

이 목사는 "인격적으로 하나님을 만난다는 것은 하나님께 내가 공개한 영역에 그분 도우심이 임한다는 것과 맞물려서 이해할 수 있다. 그렇기에 기도는 하나님을 인정하고 그분을 신뢰하는 행위다. 그래서 우리는 기도가 바로 영의 세계, 하나님 능력의 세계, 인간 영역을 벗어난 세계로 들어가는 관문이라고 말하는 것이다."라며 "이번 창립 35주년에 우리가 회복해야 할 것이 이러한 기도다. 우리 자신을 공개하는 기도를 우리가 하나님께 드릴 때 비로소 우리는 그분 도우심을 초청하고 겸손하게 받아들일 수 있다. 창립 35주년이라는 이정표는 바로 우리 자신을 하나님과 하나님 백성 앞에서 겸손하게 공개하고 그분 도우심을 초청하는 시간이다. 그리고 이에 따른 첫사랑을 회복하는 시간이다"고 강조했다.

▲지난 6월에 진행된 체육대회 이후 ⓒ뉴욕감리교회


*뉴욕감리교회 역사*
1960년도 후반기에 퀸즈 엘름허스트에 뉴욕선원 선교교회가 있었다. 한국 감리교신학대학을 나오고 영락교회에 소속한 오철호 목사가 일찍 도미해 미국장로회 선교부에 재직하면서 엘름허스트 병원 뒤쪽에 위치한 자택에 교회 간판을 달고 선교를 시작하였다. 당시 외항선원에게 선교하는 것을 목적으로 교회를 시작했지만, 등록하고 예배를 드리는 교인은 없었고 표창복 권사 내외가 그를 돕고 있었다.

그러던 중 미국 케네디 대통령 진보적 개방적 대외정책에 힘입어 아시아 이민 문호가 열리게 되었고 이에 따라 많은 한인 이민자가 줄을 이어 뉴욕에 들어오기 시작하였다. 1969년부터 1971년까지는 주로 의사와 간호원 가족이 이민자 대종을 이뤘으며 엘름허스트 병원을 중심으로 많은 교포가 정착해 살기 시작했다.

1970년 겨울, 이러한 교포들 중 몇몇 기독교인은 선원선교교회 간판이 붙어있는 오철호 목사 가정에 드나들면서 친교를 나누게 됐고, 주일이 되면 자연스럽게 몇 가정씩 둘러 앉아 예배를 드리기 시작하였다. 마침내 1971년 여름, 표창복 권사 산파역으로 오철호 목사 내외, 표창복 권사 내외, 유완모 내외, 문상빈 내외, 김종윤 내외, 전성진 내외가 한자리에 모여 첫예배를 드리기 시작했다.

주일이 되면 예배를 드리고 뉴왁 항구에 가서 어쩌다 만나는 한국인 선원을 위로하면서 싣고 간 고국 영화 필름을 보여주고 말씀으로 그들 어려운 처지를 감싸줬다. 어떤날은 후러싱 메도우공원으로 피크닉을 가서 바비큐 파티를 하며 환영과 위로 자리를 마련하고 전도에 힘쓰기도 했다. 선원이 망망대해에서 폭풍을 만나 생명이 풍전등화와 같을 때 공포에 떨던 경험을 이야기하면서 그들을 하나님 말씀으로 위로하며 믿음만이 소망이요 구원이라는 진리를 깨우쳐 주면서 선교 사명을 다했던 것이다.

교회 믿음의 식구가 계속 늘어나고 또한 믿지 않는 교포 수도 급격히 증가하는 추세를 직면한 교인은 이제 새로운 예배 처소를 찾을 수밖에 없었다. 교인은 하나님께 새로운 예배처소를 허락해 달라고 기도하기 시작했고, 다행히 브로드웨이와 코로나 애비뉴에 위치한 미국인 개혁교회 (Reformed Church)에서 교회당을 빌려주겠다는 허락을 받을 수 있었다.

비록 소예배실이기는 하지만 1971년 가을부터 마침내 기도로 소원하던 하나님 성전에서 하나님께 예배를 드릴 수 있었다. 믿음의 형제는 나날이 늘어갔고 마침내 소예배실에서 대예배실로 예배 처소를 옮겨야 할 정도가 되기에 이르렀다. 그와 동시에 고국에서 감리교 목사를 초빙해 새로운 출발을 하자는 데 의견이 모아지게 되었다.

기독교대한감리회 본부에 연락을 해 1972년 7월 15일 중부연회에서 파송된 이재은 목사를 초대 담임목사로 모시고 뉴욕감리교회라는 교회이름으로 예배를 드리니 이것이 바로 뉴욕감리교회의 탄생이요 하나님의 축복 첫출발이었다. (자료:전성진 정리:이규정 장로)

*뉴욕감리교회 뿌리로 한 현역 목회사역자 : 이후근, 여금현, 이성현, 예충범, 예정숙, 윤국진, 김종성, 박성진, 최은종, 최정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