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의 의지가 생사에 얼마나 영향을 끼치는지 생체 학자들이 연구를 하게 되었다. 한 사형수를 영하 40도의 추운 곳에서 큰 기둥에 묶어 놓고는 찬물을 뒤집어 씌웠다. 그 시로 물이 얼면서 온 몸이 얼어 붙었다. 간수는 사형수에게 "만일 네가 내일 아침 해가 뜰 때까지 살아 있으면 너를 석방 시켜 주고 또 직장도 구해주겠다". 놀랍게도 그 죄수는 다음날 해 뜰 때까지 살아 있었다.
학자들은 반대의 실험을 했다. 다른 사형수에게 미리 말했다. 네 몸에서 얼마나 피가 빠지면 죽는지 실험 하겠다. 그 대가로 가족들에게 10만 불을 주겠다고 제의했다. 그 제의를 받아 드린 사형수를 의자에 앉히고 왼쪽 손과 양 발을 기둥에 꽉 붙잡아 매고 앞에 있는 책상 위에는 오른손 바닥을 천정으로 향하게 하고는 책상에 꽁꽁 묶었다. 그리고 그 옆에는 피를 받을 basket과 호수가 달린 굵은 주사 바늘을 놓았다. 사형수는 그 준비과정을 직접 보면서 죽을 각오를 하고 있었다. 그리고는 검은 보자기로 얼굴을 덮고 팔뚝에 주사바늘을 찔렀다. 그러자 basket에 피가 세차게 쏟아지는 소리를 사형수는 들었다. 옆에서 직원들이 하는 말도 들었다. 100gr. 300gr...사형수는 그 수가 올라가는 것만큼 피가 많이 빠져 죽는 순간이 가까워 온다고 생각 하게 되었다.
한 직원이 "이제는 죽을 때가 되었지? 다른 동료가"그래 곧 죽을 거야" 그 말을 들은 사형수의 얼굴이 옆으로 기우러 졌다. 그리고 심장도 곧 멈추었다. 사실 사형수는 피를 한 방울도 흘리지 않았다. 피가 흘러 떨어지는 소리를 들었을 뿐이었다. 그러나 그는 나는 죽는구나, 피가 엄청나게 나오고 있으니 곧 죽는구나 하는 생각이 스스로를 죽게 한 것이다. 물 호스를 통하여 물이 basket에 떨어지는 소리를 눈이 가리워진 죄수는 자신의 피가 떨어지는 것으로 착각 한 것이다.
이 실험으로 생체학자들은 확신했다. 살아야겠다는 의지가 강할수록 초 인간적인 힘이 생긴다는 것이다. 반대로 삶의 의욕을 포기 할수록 자기의 생명을 단축 시킨다는 것이다. 전쟁터에서 적의 총알이 몸을 관통하여 피가 흘러도 본인은 모르고 있다가 옆의 전우가 ‘이것 봐 총에 맞았어’ 하는 말을 듣고 바지가 피로 범벅이 된 것을 보고는 겁에 질려 그 자리에 퍽 주저앉는 경우와 비슷하다.
6 25 때는 우울증, 권태, 고민, 번민 같은 말을 별로 듣지 못했다. 그 무서운 폭격기를 어떻게 피해야 할지, 오늘 저녁에 애들과 먹을 것을 구해야 하고 밤에 등을 부치고 잘 곳을 찾아야 하는 상황에서 오직 살아야겠다는 마음뿐 이었다. 그 생존의 의욕은 후에도 많은 역경을 이겨 낼 수 있었다.
필자에게는 힘이 되는 책이 있다 "스무살 까지만 살고 싶어요"라는 병상 기록이다. 즉 11살에 암에 걸려 여러번 수술을 받고 또 여러 가지 약을 많이 먹다 보니 약으로 오는 부작용이 생겨 그것을 치료하기 위해 또 다른 약이 추가되니 약을 밥 보다 더 많이 먹게 되고도 안 아픈 곳이 없다. 처음에는 한쪽 발이 아프다가 다음은 허리, 또 손이, 그 후에는 온몸이 마비가 되어 갔다. 링거를 얼마나 맞았는지 더 맞을 자리가 없어 발등에 맞아야 했다.
어느 날 아빠가 딸이 좋아하는 붕어빵을 들고 와서 먹으라고 하는데 억지로 쓴 입에 한 조각 뜯어 넣었으나 넘기지를 못하고 토하고 만다. 그것을 본 아빠는 눈물을 흘린다. 그것을 본 딸은 마음으로 운다. 그렇게 오래 동안 병석에 누워 있으면서도 살고 싶어한다. 아프지만 좀 더 살고 싶다. 심지어 밤에는 잠 자는 것 자체가 싫은 것이다. 혹시 자다가 깨지 못할까 두려운 것이다. 그녀의 소원은 일년 만이라도 더 살아 20살 되었다는 말이라도 듣고 싶어한다.
그런데 20살의 고개를 올라가지 못하고 흙으로 돌아 갔다. 그 책을 사랑하는 이유가 몇 가지 있다.
1. 의사는 6개월 살 수 있다고 했으나 9년 더 산 것은 환자의 강한 의지다. 생의 강한 의지를 배우자
2. 살아 있는 동안 언제나 설레는 마음으로 살자
3. 건강할 때 좋은 일을 많이 하자. 등이다.
보라! 성자 예수님은 살리는 운동을 하셨다. 병자를 건강하게 치유하시고 죽은 자를 살리시고 영생을 강조하셨다. "너는 살리라"라는 그 분의 말씀은 성경에 꽉 차있다. 또 예수님 자신이 늘 설레는 마음으로 사셨다. 길가에 꽃 한 포기를 보고도 가던 걸음을 멈추시고 시를 읊으시고 공중에 날아 가는 새를 보시고도 하나님의 섭리를 제자들에게 설교하셨다. 돌 하나를 보시고도 그 속에 담긴 신의 뜻을 설명하셨다.
그렇다. 산다는 것 자체가 너무도 황홀하다. 누구인가 1000억불을 주며 내 생명과 바꾸자고 해도 절대로 사양 하겠다. 그러면 천하를 주겠다고 액수를 올려도 천 번 사양하겠다. 오직 하나님이 주신 생명을 악착같이 귀하게 여기며 황홀하게 매일 매일 살리라.
학자들은 반대의 실험을 했다. 다른 사형수에게 미리 말했다. 네 몸에서 얼마나 피가 빠지면 죽는지 실험 하겠다. 그 대가로 가족들에게 10만 불을 주겠다고 제의했다. 그 제의를 받아 드린 사형수를 의자에 앉히고 왼쪽 손과 양 발을 기둥에 꽉 붙잡아 매고 앞에 있는 책상 위에는 오른손 바닥을 천정으로 향하게 하고는 책상에 꽁꽁 묶었다. 그리고 그 옆에는 피를 받을 basket과 호수가 달린 굵은 주사 바늘을 놓았다. 사형수는 그 준비과정을 직접 보면서 죽을 각오를 하고 있었다. 그리고는 검은 보자기로 얼굴을 덮고 팔뚝에 주사바늘을 찔렀다. 그러자 basket에 피가 세차게 쏟아지는 소리를 사형수는 들었다. 옆에서 직원들이 하는 말도 들었다. 100gr. 300gr...사형수는 그 수가 올라가는 것만큼 피가 많이 빠져 죽는 순간이 가까워 온다고 생각 하게 되었다.
한 직원이 "이제는 죽을 때가 되었지? 다른 동료가"그래 곧 죽을 거야" 그 말을 들은 사형수의 얼굴이 옆으로 기우러 졌다. 그리고 심장도 곧 멈추었다. 사실 사형수는 피를 한 방울도 흘리지 않았다. 피가 흘러 떨어지는 소리를 들었을 뿐이었다. 그러나 그는 나는 죽는구나, 피가 엄청나게 나오고 있으니 곧 죽는구나 하는 생각이 스스로를 죽게 한 것이다. 물 호스를 통하여 물이 basket에 떨어지는 소리를 눈이 가리워진 죄수는 자신의 피가 떨어지는 것으로 착각 한 것이다.
이 실험으로 생체학자들은 확신했다. 살아야겠다는 의지가 강할수록 초 인간적인 힘이 생긴다는 것이다. 반대로 삶의 의욕을 포기 할수록 자기의 생명을 단축 시킨다는 것이다. 전쟁터에서 적의 총알이 몸을 관통하여 피가 흘러도 본인은 모르고 있다가 옆의 전우가 ‘이것 봐 총에 맞았어’ 하는 말을 듣고 바지가 피로 범벅이 된 것을 보고는 겁에 질려 그 자리에 퍽 주저앉는 경우와 비슷하다.
6 25 때는 우울증, 권태, 고민, 번민 같은 말을 별로 듣지 못했다. 그 무서운 폭격기를 어떻게 피해야 할지, 오늘 저녁에 애들과 먹을 것을 구해야 하고 밤에 등을 부치고 잘 곳을 찾아야 하는 상황에서 오직 살아야겠다는 마음뿐 이었다. 그 생존의 의욕은 후에도 많은 역경을 이겨 낼 수 있었다.
필자에게는 힘이 되는 책이 있다 "스무살 까지만 살고 싶어요"라는 병상 기록이다. 즉 11살에 암에 걸려 여러번 수술을 받고 또 여러 가지 약을 많이 먹다 보니 약으로 오는 부작용이 생겨 그것을 치료하기 위해 또 다른 약이 추가되니 약을 밥 보다 더 많이 먹게 되고도 안 아픈 곳이 없다. 처음에는 한쪽 발이 아프다가 다음은 허리, 또 손이, 그 후에는 온몸이 마비가 되어 갔다. 링거를 얼마나 맞았는지 더 맞을 자리가 없어 발등에 맞아야 했다.
어느 날 아빠가 딸이 좋아하는 붕어빵을 들고 와서 먹으라고 하는데 억지로 쓴 입에 한 조각 뜯어 넣었으나 넘기지를 못하고 토하고 만다. 그것을 본 아빠는 눈물을 흘린다. 그것을 본 딸은 마음으로 운다. 그렇게 오래 동안 병석에 누워 있으면서도 살고 싶어한다. 아프지만 좀 더 살고 싶다. 심지어 밤에는 잠 자는 것 자체가 싫은 것이다. 혹시 자다가 깨지 못할까 두려운 것이다. 그녀의 소원은 일년 만이라도 더 살아 20살 되었다는 말이라도 듣고 싶어한다.
그런데 20살의 고개를 올라가지 못하고 흙으로 돌아 갔다. 그 책을 사랑하는 이유가 몇 가지 있다.
1. 의사는 6개월 살 수 있다고 했으나 9년 더 산 것은 환자의 강한 의지다. 생의 강한 의지를 배우자
2. 살아 있는 동안 언제나 설레는 마음으로 살자
3. 건강할 때 좋은 일을 많이 하자. 등이다.
보라! 성자 예수님은 살리는 운동을 하셨다. 병자를 건강하게 치유하시고 죽은 자를 살리시고 영생을 강조하셨다. "너는 살리라"라는 그 분의 말씀은 성경에 꽉 차있다. 또 예수님 자신이 늘 설레는 마음으로 사셨다. 길가에 꽃 한 포기를 보고도 가던 걸음을 멈추시고 시를 읊으시고 공중에 날아 가는 새를 보시고도 하나님의 섭리를 제자들에게 설교하셨다. 돌 하나를 보시고도 그 속에 담긴 신의 뜻을 설명하셨다.
그렇다. 산다는 것 자체가 너무도 황홀하다. 누구인가 1000억불을 주며 내 생명과 바꾸자고 해도 절대로 사양 하겠다. 그러면 천하를 주겠다고 액수를 올려도 천 번 사양하겠다. 오직 하나님이 주신 생명을 악착같이 귀하게 여기며 황홀하게 매일 매일 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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