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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의 전통적 절기는 아닌 한국 교회만 가지고 있는 특별한 전통이 몇 가지가 있는데 그 가운데 하나는 송구영신 예배라는 것입니다. 새해가 되기 전 전년 12월 31일 밤에 모여 드리는 예배가 바로 송구영신 예배입니다. 송구영신이란 말을 찾아보면 사전적 의미로는 '묵은 해를 보내고 새해를 맞는다'는 뜻입니다.

 송구영신이란 말은 한국 고유의 전통에서 그 기원을 찾을 수 있는데 음력 섣달그믐 밤에 묵은해를 보내고 신년의 운수 대통을 기원하던 무속적인 민속 행사에 사용된 용어였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전통적 행사는 주술적이고 기복적이었습니다. 한국 전통 자료를 조사하다 보면 '향토문화대전' 에 나타난 송구영신은 '이 날 전국 각 곳에서는 한 해의 마지막 날이므로 새벽녘에 닭이 울 때까지 잠을 자지 않고 수세(음력 섣달 그믐날 밤에 잠을 자면 눈썹이 센다고 하여 등불을 밝히고 밤을 새움)를 하면서 새해를 맞이함' 이라고 표현되고 있습니다.

 또한 '동국세시기'라는 책에는 '인가에서는 다락과 마루와 방과 부엌 모두에 등잔을 켜놓는다. 흰 사기접시 하나에다 실을 여러 겹 꼬아 심지를 만들고 기름을 부어 외양간, 변소까지 환하게 켜 놓으니 마치 대낮 같다. 그리고 밤새도록 자지 않는데 이것을 수세라 한다.' 송구영신은 명백하게 한국의 전통 무속신앙과 관련이 되어 있습니다. 이 날 집안을 환하게 밝히고 정성스럽게 제사상을 차리고 밤잠을 자지 않고 신령을 기다리며 불 밝혀진 집으로 들오는 신령들에게 소원을 비는 것이었습니다. 그렇게 하면 일년 동안 운수 대통할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교회에서 송구 영신 예배를 드리는 것은 결코 이러한 한국 세시풍속에 근거한 의미를 두고 하는 것은 절대로 아닙니다. 새해에 복을 비는 주술적이며 기복적 사상은 한국 초기 송구 영신 예배를 드렸던 의도와 전혀 다른 의미입니다.

한국의 첫 송구 영신 예배는 1887년 12월 31일에 한국에 선교사로 온 언더우드와 아펜젤러 선교사가 사역하던 당시 정동교회와 베델교회가 연합하여 드린 것이 최초의 예배였습니다.

첫 번째 예배가 어떠했는지에 대하여는 자세히 알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당시는 한국 선교의 초기였습니다. 선교사들이 들어 온지 햇수로 2년이 되던 해였으며 아직 복음에 대하여 그리고 신앙에 대하여 자세히 알지 못하던 사람들이 대부분이었습니다. 비록 무속신앙과 주술적 사고에 물든 한국 땅에 새해를 하나님께 예배함으로 시작하는 감사한 일이 시작되었다고는 하나 시기적으로 또한 당시의 상황적으로 완전히 한국의 전통적 풍습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었다는 것을 인정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선교 초기 한국의 상황은 여전히 무속신앙에 깊이 빠져 있었기 때문입니다.

안타까운 것은 지금까지도 송구영신 예배를 새해 운수와 복을 빌기 위한 주술적 수단으로 인식하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입니다.

비록 송구영신 예배가 기독교 절기는 아니지만 우리가 드리는 예배는 한 해를 돌아보고 하나님께 감사하며 우리의 죄를 고백하며 회개함으로 우리 자신을 새롭게 하는데 있습니다. 또한 새로운 한해를 하나님께 온전히 의탁하며 더욱 성숙한 신앙과 믿음으로 온전한 소원을 이루며 살도록 하나님께 간구하는 시간입니다. 이러한 고백에는 우리의 삶의 주인이 하나님이심을 인정하는 것이며 '세월을 아끼라'는 말씀에 순종하겠다는 결단과 결심이 함께 하는 것입니다. 

<출처:박경호 목사 홈페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