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키는 이스라엘을 제외하면 성지로서 가장 중요한 곳이라 할 수 있습니다. 신약성경 중 가장 많은 경전을 기록한 사람이자 기독교의 토대를 놓은 사람인 사도 바울이 소명을 받은 후 가장 많은 시간과 열정을 들여 사역한 곳이 아나톨리아, 바로 지금의 터키이기 때문입니다. 당연히 초대 기독교에 있어 가장 많은 유적지가 있는 곳도 바로 터키입니다.

그래서 이번 글부터는 사도 바울의 1, 2, 3차 전도여행과 로마행, 그리고 4차 전도여행과 관련한 글들을 성지와 연결하여 집필할까 합니다.

하나님께서 바울을 위해 예비하신 것들

1. 들어가는 말

바울이 기독교에 얼마나 큰 영향을 끼쳤는지 모르시는 분은 아마 없을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이 없었으면 지금의 기독교는 없었을 것이라고 이야기하시는 분들도 있습니다. 틀린 말은 아닙니다.

사실 바울은 1, 2, 3차에 걸친 전도여행과, 사도행전에는 기록되지 않았지만 바울의 서신들을 통해 알 수 있는 4차 전도여행을 하며, 지나간 지역마다 교회를 개척하여 제자들을 양육했습니다. 본인이 개척한 교회에 보낸 바울의 서신들은 나중에 초대교회 시기를 지나 4세기 기독교 공인 시기, 중세시대를 지나며 기독교회의 경전으로 자리잡게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바울을 부르시고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전파하는 사명을 주신 후, 그를 놀랍게 사용하셨습니다. 그 결과 기독교 내에서 바울의 위상과 영향력이 절대화되었습니다.

우리는 바울이 이룬 업적과 놀라운 결과들을 보고 그를 칭송하고 있는데, 바울 뒤에서 바울이 사역할 때 역사 속에서 모든 환경들과 사역의 장을 준비하신 하나님의 섭리에 대해 자칫 간과하기 쉬운 것 같습니다.

본 글에서는 바울의 행적을 살펴보기 전에, 하나님께서 바울의 사역을 위해 친히 준비하신 것들이 무엇인지 살펴보겠습니다.

2. 하나님의 손길들

정치적인 배경

'팍스 로마나'(Pax Romana)란 말에서 알 수 있듯, 바울이 사역하던 A.D. 1세기 중반에는 지중해 세계가 로마라는 절대 강자의 계속된 통치 덕에 정치적으로 매우 안정되어 있었습니다. 그래서 로마 시민권을 가지고 있었던 바울은, 마음만 먹으면 로마가 통치하는 어느 지역에라도 쉽게 여행할 수 있었습니다.

작은 도시국가로 출발한 로마가 북아프리카의 강자 카르타고와의 3차례에 걸친 포에니 전쟁 후 비로소 지중해 연안의 헤게모니를 가져오면서, 유럽과 아프리카, 아시아까지 3개 대륙을 통치했습니다. 덕분에 바울의 활동 무대였던 소아시아와 이스라엘, 그리고 그리스까지 로마라는 한 정치 세력의 지배하에 들어와, 바울은 로마를 등에 업고 효과적으로 사역을 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만약 바울의 정치적 배경이 알렉산더 대왕 사후 지중해 세계가 춘추전국시대와 같이 분열하면서 서로 먹고 먹히던 B.C. 4세기와 같았다면, 그의 사역은 훨씬 더 힘들었을 것이고, 사역의 열매도 훨씬 적었을 것입니다.

언어적인 배경

다른 문명과 그 문명에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 복음을 증거하기 위해 가장 중요한 것 중 하나가 바로 의사소통이라 할 수 있습니다. 사용하는 언어가 같은 사람들에게 복음을 증거한다면, 그 효과가 배가될 수 있을 것입니다.

바울이 사역하던 당시 지중해 세계는 로마 통치기였기에 라틴어가 공식 언어로 사용됐지만, 로마 제국 이전 지난 300여 년 동안 헬레니즘이 지중해 세계를 지배했기에 어딜 가나 '헬라어' 즉, 그리스어가 통용되었습니다.

마케도니아 출신의 알렉산더 대왕이 지중해 세계를 제패한 후 페르시아(이란)와 인도까지 점령하면서, 헬레니즘 즉 그리스의 언어와 이념·문화를 점령지마다 전파했습니다. 알렉산더 대왕 사후에도 그의 수하 4명이 약 300년 동안 지중해 세계를 통치합니다. 로마가 지중해 세계를 제패한 후에도 한동안 헬레니즘은 지중해 세계의 정신이었습니다.

바울도 헬레니즘 배경의 대도시인 다소(현재 터키 남부 Tarsus) 출신의 디아스포라 유대인이므로, 헬라어를 능숙하게 사용했습니다. 그러므로 어딜 가든 헬라어를 사용해(주로 헬라 지역) 복음을 전파하면서 효과적으로 사역을 진행할 수 있었습니다.

원제연 생생한 성지 이야기 터키
▲1차 전도여행 발자취. 비시디아 안디옥 진입 도로. ⓒ선교회 제공

지리적인 배경

로마 제국이 유럽과 아프리카, 그리고 아시아까지 이르는 지중해 세계를 제패한 후, 그 광범위한 제국을 효과적으로 통치하기 위해 가장 먼저 한 작업은 도로를 정비하는 일이었습니다.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는 유명한 말이 있습니다. 시오노 나나미의 저서인 「로마인 이야기」 10권의 제목이기도 한데요. 어느 곳에서 출발하건 모든 길의 종착점은 로마라는 말인 동시에, 모든 길은 로마에서 시작한다는 의미입니다.

시오노 나나미는 저서에서 로마인들이 기원전 3세기부터 500년 동안 꾸준히 길을 만들었으며, 로마를 둘러싸고 있는 1-8번 국도는 지금도 대부분 그대로 사용될 정도로 견고하고 합리적이라고 전합니다.

로마의 가도는 그야말로 '제국의 동맥'이었습니다. 수도 로마에서 12갈래로 나뉘어 출발하는 가도는 추운 북해에서 뜨거운 아프리카 사하라까지, 대서양에서 유프라테스 강까지 뻗어나가는 동안 375개의 간선도로로 늘어나고, 이 거대한 도로망은 지금의 유럽연합보다도 넓었던 제국의 영역을 통제하는 핏줄 역할을 했다고 합니다.

또 '황제의 편지는 작성되자마자 마치 날개 달린 것처럼 신속하고 안전하게 목적지에 배달된다'는 기록에서 알 수 있듯, 로마는 가도를 통해 제국을 지배했습니다. 로마 제국이 지은 포장도로가 없었다면, 20만 명이 채 안 되는 병력으로 대제국을 통솔한다는 것은 불가능했을 것입니다.

사실 지금 유럽 전 지역에 놓여 있는 고속도로는 거의 대부분 로마가 제국을 통치하기 위해 건설한 도로를 기반으로 합니다. 로마 제국이 건설한 구조물 중 가장 오래 존속했거나 역사에 영향을 미친 것은 단연 '도로'일 것입니다.

로마의 도로를 따라 이동한 것은 단지 물자와 군대만이 아니었습니다. 금석문자 전문가인 로몰로 A. 스타촐리는 "그 도로를 통해 사상, 예술적 영향, 철학 이론과 종교 교리가 전달되었다"고 전합니다. 무엇보다 바울이 가져간 기독교 교리도 그 도로를 통해 효과적·효율적으로 지중해 세계에 신속히 전파될 수 있었습니다.

종교적인 배경 1 -디아스포라 유대인 회당과 70인역성경

기원전 1세기와 기원후 1세기는 로마 제국 전역에서 유대교가 양적으로 부흥을 경험했던 시기였습니다. 이러한 현상은 유대교 내에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두 가지 중요한 현상 때문이었습니다. 한 가지는 헬라 세계에 퍼져 있던 디아스포라 유대인들이 자기가 살던 지역에 회당을 만들어 그곳을 중심으로 생활했던 것이고, 또 한 가지는 유대교 경전인 토라(모세오경)가 헬라어로 번역된 것(70인역성경)입니다. 디아스포라 유대인 회당은 하드웨어, 70인역성경은 그 하드웨어를 돌리는 소프트웨어라 할 수 있습니다.

디아스포라 유대인의 역사는 오래되었는데, B.C. 6세기경 남유다가 바벨론에 멸망당하면서 시작됐습니다. 물론 대부분의 디아스포라 현상은 타의에 의해 진행되었습니다. 유대인들의 불순종과 우상 숭배 때문에 하나님께서 진노하사, 강대국 바벨론을 들어 징계하십니다. 70년 동안 바벨론에 많은 유대인들을 보내 최첨단 교육을 받게 하고, 그들을 통해 새로운 하나님의 나라를 건설하시고자 하는 계획 속에 진행된 것입니다.

이렇게 시작된 디아스포라 현상은 바벨론을 지나 페르시아, 헬라, 로마 제국의 지배를 거치면서 강제 혹은 자의로 진행됐고, 유대인들은 아프리카와 유럽, 아시아 대륙에까지 진출해 새로운 삶을 시작합니다. 유대인들이 많이 모인 곳에서는 회당(Synagogue)이라는 공동체를 중심으로 생활합니다. 이렇게 하드웨어가 준비됩니다.

B.C. 4세기 초 동방 원정을 나온 알렉산더 대왕이 30대 초반의 젊은 나이에 요절하면서, 그의 헬라 왕국은 4명의 수하 장군들에게 돌아갔습니다. 그 중 프톨레마이오스라는 장군은 알렉산드리아를 중심으로 이집트를 비롯한 북아프리카, 팔레스타인 지역을 통치하게 되었습니다.프톨레마이오스 왕조는 대대로 학문을 사랑하고 아꼈는데, 그의 아들인 프톨레마이오스 2세(B.C. 284-246)도 마찬가지여서 알렉산드리아 도서관을 세계에서 가장 큰 도서관으로 키우고 싶어했습니다. 그는 부친이 세운 알렉산드리아 도서관에 세상의 모든 책들을 모으라고 명령을 내렸습니다. 또 유대인의 율법서에 관한 이야기를 듣고, '토라'를 헬라어로 번역해 비치하라는 명령을 내립니다.

당시 이집트에는 많은 유대인들이 하층민으로서 살고 있었지만, '토라'를 헬라어로 번역할 수 있는 학식과 역량을 가진 사람은 없었기에, 하는 수 없이 프톨레마이오스는 유대 땅으로 전령을 보내 각 지파에서 6명씩 총 72명의 율법학자들을 불러 모아 토라 번역 작업에 착수하게 됩니다.

그렇게 만들어진 것이 바로 '셉투아진트'라 불리는 70인역성경입니다. 이 성경은 다분히 헬라적 정서가 개입된 번역이었음에도, 손바닥 만한 땅에 갇혀 있던 유대 문화가 알렉산드리아를 통해 세계로 진출하게 되는 문이 되었습니다. 이렇게 소프트웨어도 준비됩니다.

종교적인 배경 2 -유대교의 두드러진 성장

위의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가 결합하면서 유대교는 특히 디아스포라 유대인들을 중심으로 엄청난 성장을 하게 됩니다.

디아스포라로 살아가는 유대인들의 수가 많아지고 디아스포라 생활도 길어지면서 생겨난 문제 중 하나가, 바로 디아스포라 유대인들의 정체성이 흐려지면서 점차 헬레니즘의 영향을 받아 모든 사고방식이 변화한 것입니다. 특히 언어적인 면에서 히브리어나 아람어는 다 잊은 채, 공용어였던 헬라어밖에 모르는 유대인들이 생겨나게 됩니다.

한편에서는 '토라'가 70인역성경으로 번역되면서 엄청난 파장을 일으킵니다. 히브리 민족의 고유 종교인 유대교가 헬라 제국 전체, 특히 디아스포라 유대인 공동체에 퍼져 나갑니다. 이에 디아스포라 유대인 공동체 내에서는 이들의 신앙을 교육하기 위해 70인역성경을 도입하여 회당마다 사용하게 됩니다.

이렇게 디아스포라 유대인 회당과 70인역성경이 필연적으로 만나면서,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엄청난 파장을 일으키게 됩니다. 회당에서 신앙 생활을 했던 부류 중에는 태생적 유대인뿐 아니라, 이방인이지만 유대교로 개종한 헬라 유대인들도 상당히 많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원래 유대교로 개종하고 싶어했던 이방인들이 많았지만, 히브리어로 기록된 경전을 읽을 수 없어 매우 힘들었습니다. 하지만 70인역성경이 등장해 각 회당마다 도입되면서, 유대교가 양적으로 급속히 성장합니다.

아우구스투스가 통치하던 시대(B.C. 31-A.D. 14)에는 로마 제국 전체의 인구가 대략 5천만 명 정도였다고 하는데, 그 중 약 10%인 5백만 명이 유대인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중 3백만 명만 혈연적 유대인이고, 나머지 2백만 명이 개종한 헬라 유대인이었을 정도입니다.

원제연 생생한 성지 이야기 터키
▲1차 전도여행 발자취. 더베. ⓒ선교회 제공

 

종교적인 배경 3- 회당에서의 바울의 사역과 반응들

바울은 주로 대도시를 거점으로 거기 세워진 유대인 회당 중심의 전도 사역을 펼쳤습니다. 그는 항상 어떤 도시를 처음 방문하면 안식일에 유대인 회당을 찾아 기회가 주어지는 대로 복음을 증거했습니다.

우리가 알고 있듯 바울은 주로 이방인들을 대상으로 사역한 '이방인의 사도'였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바울이 회당에 들어가 복음을 증거하면, 반응이 크게 두 부류로 나뉘었습니다. 한 부류는 혈연적 유대인으로서, 바울이 전하는 예수에 대한 복음을 듣고 격분했습니다(행 13:45, 50). 또 한 부류는 유대교로 입교한 헬라 유대인들로서, 이들은 바울의 예수 복음을 듣고 폭발적으로 반응합니다(행 13:42, 43).

개종한 이방인들은 당시 70인역 덕분에 신앙생활에 어려움은 없었지만, 유대교의 중심으로 들어가기에는 한계가 있었습니다. 바로 율법과 할례, 정결의식 등 유대교 특유의 의식 때문입니다. 유대인들처럼 모든 율법, 할례, 정결의식을 지켜야 유대교 내부로 깊이 들어갈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것은 나면서부터 유대교를 믿고 부모의 지도하에 율법을 행하며 각종 유대교 의식을 행했던 사람들에게는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지만, 수십 년 동안을 율법과 상관없이 자기 생각에 옳은 대로 행해 왔던 이방인들에게는 아주 무거운 짐이었습니다.

할례, 정결의식< 율법을 전부 지켜야만 의롭다 함을 얻고 유대인으로서 기본 조건을 충족시키며, 다른 유대인들에게도 진정한 공동체의 일원으로 받아들여졌던 것입니다. 그렇지 못한 경우 의롭게 되지 못하니, '아웃사이더'로 남아야 했습니다.

이러한 헬라 유대인들의 가려운 부분을 시원하게 긁어준 인물이 바로 사도 바울이었습니다. 율법과 유대교 의식들을 온전히 지키지 못해 항상 마음이 움츠러들어 있고, 회당 주변만 맴도는 주변인으로 생활하며, 등에 무거운 짐을 지고 살아야 했던 헬라 유대인들에게 바울의 메시지는 그야말로 '복음(good news)'이었습니다. 바울의 혁신적인 메시지가 그들에게 매고 있던 무거운 짐을 내려 놓게 하고, 억눌려 있던 그들의 가슴을 시원하게 해 주었던 것입니다.

이렇듯 대부분의 헬라 유대인들은 바울의 등장과 그가 전하는 메시지에 열광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반대로 '정통' 유대인들에게 바울의 메시지는 유대교의 근간을 뒤흔드는 아주 위험한 것이었고, 바울의 존재 자체가 유대교에 커다란 위협으로 다가올 수밖에 없었습니다(행 14:5, 19).

그래서 바울은 1차 전도여행에서 비시디아 안디옥 사역을 마친 후 자신의 사역 방향을 확실하게 '이방인'으로 틀었습니다(행 13:46-48). 중요한 것은, 여기서 '이방인'은 유대교로 개종한 헬라 유대인을 가리킨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전혀 알지 못하는 '쌩짜 이방인'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유대교로 개종하여 어느 정도 하나님에 대해서 듣고 배우며, 나름대로 하나님에 대한 체험을 간직한 헬라인들을 말하는 것입니다.

보통 신약성경에서는 그들을 일컬어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들(행 10:1-2, 22;13:16, 26)', 혹은 '경건한 개종자들(행 13:43)', '경건한 헬라인들(행 17:4)', '경건한 자들'(행 17:17), '개종자들(행 2:11; 6:5; 13:43)'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종교적인 배경 4 -복음 전파를 위한 하나님의 준비

사실 알고 보면 디아스포라 유대인들의 공동체인 회당과 거기서 신앙생활을 하고 있던 헬라 유대인들, 헬라어 유대교 번역본인 70인역 성경은 하나님께서 바울의 사역을 위하여 친히 준비하신 요소들입니다. 회당 공동체에서 70인역 성경을 읽으면서 신앙생활을 나름 유지해 오던 헬라 유대인들은 하나님께서 준비하신 다이너마이트였고, 바울은 그 회당을 돌며 다이너마이트의 도화선에 불을 붙인 장본인이었습니다.

바울의 메시지는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다이너마이트의 도화선에 불을 붙였고, 이는 커다란 폭발력을 얻어 지금도 전 세계에 후폭풍이 몰아치고 있습니다.

3. 나오는 말

지금까지 하나님께서 바울을 부르시고, 그에게 사명을 주어 하나님의 사역을 감당하게 하시면서, 그냥 보낸 것이 아니라 친히 모든 것들이 다 이루어지도록 준비하신 요소들이 무엇인지 알아봤습니다.

바울이 한 일을 폄하해서도, 폄훼해서도 안 될 것입니다. 분명 바울이 한 일 중 가장 중요했던 것은 바로 '순종'입니다. 하나님의 부르심에 반응해 '주님 내가 여기 있사오니 나를 보내소서' 하며 나아가 순종했던 바울을 통해, 하나님께서는 준비하신 모든 것들을 이루실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순종'이 중요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지금도 바울처럼 당신께서 친히 계획하시고 실행하시고 이루실 일들에 '순종'으로 동참할 백성들을 찾으십니다. 우리가 용기를 내어 '나를 보내소서' 하고 순종한다면,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복을 주시며 순종하는 자들을 통하여 계획하신 모든 놀라운 일들을 이루실 것입니다.

개인적 간증을 잠깐 하자면, 저는 우상을 섬기던 시골 가문에서 태어나 20년 동안 하나님을 모른 채 어둠 가운데 살다, 신앙생활을 시작했던 누나의 전도를 받아 20세 때 교회에 처음 나갔습니다.

매주 교회에 출석하며 설교 말씀을 듣고, 성경을 처음으로 읽다 한 구절에 마음이 꽂혔습니다. 바로 마태복음 28장 18-20절 '모든 족속들을 제자 삼으라'는 말씀입니다. 이 말씀을 읽을 때 저도 모르게 가슴에서 뜨거운 무언가가 솟구쳐 오르는 것을 느꼈습니다.

그러면서 '주님, 저도 이 말씀처럼 내 생명 다해 땅끝까지 이르러 주님의 증인이 되겠습니다'라는 믿음의 고백을 하지 않으면 가슴에 있는 불이 꺼질 것 같지 않아, 참다 못해 며칠 뒤 새벽 기도회에 처음 나가서 헌신하는 기도를 했습니다.

저는 그 이후 선교사가 되기로 결정하고, 하나님의 부르심에 응답하여 땅끝까지 복음을 증거하는 선교사가 되는 것에 초점을 맞추고 살게 되었습니다. 서울 근방 S대의 간절히 원하던 과에 진학하지 못해 바로 입대했고, 군생활 26개월을 마치고 진로를 놓고 고민하며 기도를 했었습니다. 그러던 중 선교사가 되기 위해 신학대에 가기로 마음먹고 공부를 시작했습니다.

서울 모 교회 근처에서 자취를 하며 스스로 학비와 생활비를 벌어 공부와 생활을 해야 했습니다. 일주일에 3일은 막일을 나가 돈을 벌고, 나머지 시간에는 학원을 다녔습니다. 말이 좋아 주경야독이지, 너무 힘이 들어 이런 생활을 계속하기 힘들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도와 달라고 기도를 했는데, 그때 기도하며 읽은 말씀이 열왕기상 17장이었습니다.

저는 그 말씀을 읽으면서 마찬가지로 눈에 갑자기 붕 떠오르며 가슴이 뛰는 것을 느꼈습니다. 그 말씀을 하나님께서 제게 주신 것이라고 확신하고, 저도 가진 돈 모두를 모아 돌아오는 주일에 헌금했습니다. 30만 원 정도 되었습니다. 얼마 되지 않는 금액이었지만, 당시에는 그것이 저의 전부였습니다.

그러자 정말 놀라운 일이 일어났습니다. 열왕기상 17장 말씀의 기적이 동일하게 제게도 일어났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교회 청년부를 통해서 놀랍게 역사하셨습니다. 청년부에서 저를 돕기 위해 한 달에 얼마씩 시험 보는 달까지 매달 후원해 주기로 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매달 80만 원이 모금됐고, 그 덕에 4월부터 11월까지 8개월 동안 마음 놓고 공부와 자취생활을 하게 됐습니다.

수천 년 전 팔레스타인 땅에서 일어났던 기적이 동일하게 일어났던 것입니다. 저는 이 일이 우연의 일치라 생각지 않습니다.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니 놀라운 일들이 벌어졌던 것입니다. 이렇게 저는 하나님의 놀라운 섭리 가운데서 신학대와 대학원을 졸업하고 교회 사역을 하다, 말씀을 좇아서 터키로 와서 지금까지 사역을 감당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놀라운 역사는 현재진행형입니다. 이 글을 읽고 있는 여러분도 하나님 말씀에 순종할 수 있는 '용기' 하나만 있으면 그분의 놀라운 역사의 주인공이 될 수 있습니다.

/레팜 난민선교회 원제연 선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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