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인권
(Photo : 기독일보) 안인권 목사.

한강의 기적이라 불리는 한국의 산업 근대화 역사에는 전설같은 실화들이 무수하다. 전설같은 실화의 주인공들의 특징은 한 가지 일에 일생을 걸었다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짧은 기간에 세계 1위에 오른 대표적인 산업 가운데 조선 분야가 있다. 조선소도 없는 형편에 거북선이 그려진 오백원짜리 지폐를 들고 해외 선주를 찾아가 선박 건조 주문을 받아온 정주영 회장의 스토리는 말 그대로 전설에 가까운 실화이다. 조선 분야뿐 아니라 모든 분야가 맨 땅에서 맨 손으로 시작하여 기적을 일으켰다. 우리나라 말고 인류 역사에 있어서 선박 건조의 시조는 누굴까? 선박 건조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다 보면 노아를 만나게 된다. 노아를 앞지를 원조는 없을 것이다. 노아가 만들게 된 배는 이름이 '방주'다. 특이한 것은 설계자가 하나님이라는 사실이다. 만들게 된 동기는 인간적인 동기가 아니라 하나님의 명령에 의해서였고, 목적은 홍수를 대비하기 위해서였다.

"내가 홍수를 땅에 일으켜 무릇 생명의 기운이 있는 모든 육체를 천하에서 멸절하리니 땅에 있는 것들이 다 죽으리라"(창6:17). "너는 잣나무로 너를 위하여 바우를 만들되 그 안에 칸들을 막고 역청을 그 안팎에 칠하라"(창6:14). "새가 그 종류대로, 가축이 그 종류대로, 땅에 기는 모든 것이 그 종류대로 각기 둘씩 네게로 나아오리니 그 생명을 보존하게 하라"(창6:20). 이 말씀에 대한 노아의 반응이 히브리서 11장 7절에 나와 있다. "믿음으로 노아는 아직 보이지 않는 일에 경고하심을 받아 경외함으로 방주를 준비하여 그 집을 구원하였으니 이로 말미암아 세상을 정죄하고 믿음을 따르는 의의 상속자가 되었느니라"(히11:7). 그가 어떤 반응을 보였는가? 우선 '믿음으로 노아는 아직 보이지 않는 일에 - - - '라는 말로 시작한다. 여기 '아직 보이지 않는 일'이란 무슨 뜻일까? 노아는 큰 비, 홍수를 본 적이 있었을까? 또 하나, 그가 큰 배를 본 적이 있었을까?

고고학적으로 보아도 지구 과학적으로 보아도 노아 시대까지 큰 홍수가 없었고 큰 비도 없었다. 때문에 노아의 뇌리에는 홍수라는 개념 자체가 없었다. 홍수가 무엇인지 어떻게 내리는 것인지 그것이 얼마나 무서운 것인지도 알 턱이 없었다. 지금까지 단 한 번 본 적도, 경험한 적도 없었기 때문이다. 방주 제작 장소는 바닷가도 아라랏 산도 아니라 깊은 내륙이었을 가능성이 높다. 방주용 재목을 구할 수 있는 장소는 숲이 우거진 산이어야 하고 운반이 용이했어야 하기 때문이다. 홍수가 왔을 때 방주가 땅에서 떠올랐다는 것(창 7:17)과 물이 땅에 더욱 창일하매 천하에 높은 산이 다 덮였고(창7:19) 물이 불어서 결국 산들이 다 덮였다(창7:20)는 사실이 이를 증명한다. 바다나 배를 본 적이 없는 노아에게 배에 대한 개념조차 없었다고 보는것이 자연스럽다. 따라서 노아는 홍수에 대한 개념도, 방주에 대한 개념도 전혀 없는 그런 상태였다. 그러므로 '아직 보이지 않는 일'(히11:7)이란 이 두 가지를 두고 하는 말이다.

홍수도, 방주도 보지 못한 일이요, 보이지 않는 것, 경험한 적이 없는 일이라는 말이다. 그런데 '홍수가 있을 것이다. 방주를 만들라'는 상상도 할 수 없는 말씀 앞에서 노아는 어떤 반응을 보였는가?" 믿음으로 노아는 아직 보이지 않는 일에 경고하심을 받아 경외함으로 방주를 준비하여 그 집을 구원하였으니 - - - "(히11:7) 먼저 그는 하나님을 경외했다. 하나님이 무얼 하시겠다는 것인가? 홍수로 다 쓸어버리겠다는 것이다. 다른 사람들만 피해를 입는가? 노아 역시 심각한 피해를 입는다. 일생 동안 일구어낸 집과 전답과 재산이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 것이다. 친지, 친구, 절친했던 사람들 모두를 잃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그 하나님의 경고 앞에서 노아는 그 분을 경배하며 예배를 드린다. 이 경외, 예배 속에는 어떤 신앙고백이 담겨 있는가? "하나님이 하시는 일은 다 옳습니다. 그 일을 행하시는 하나님은 경배를 받으시기에 합당하십니다." 이 고백이 '경외'라는 단어 속에 녹아 있다.

욥에게 큰 시련이 닥쳤다. 한 순간에 이런 엄청난 일을 당할 수 있다는 자체가 기적일 정도의 큰 사건이 한꺼번에 일어난 것이다. 그때 욥이 한 고백이 무엇인가? "주신 이도 여호와시요 거두신 이도 여호와시니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을 받으실지니이다"(욥1:21) 통곡과 원망이 아니라 찬송하며 경배했다. 다윗이 땅바닥에 엎드려 금식하며 기도한다. 이제 갓 태어난 아들이 죽어가기 때문이었다. 무려 칠일 동안의 금식기도도 허사가 되고 아이는 죽는다. 그 소식을 들은 다윗의 반응은 어떠했나? "다윗이 일어나 씻고 옷을 갈아 입고 여호와 전에 들어가 경배하고 - - -"(삼하12:20) 그의 신앙고백도 동일했다. "하나님은 모든 경우에 선하시다. 그분은 계획을 반드시 이루신다."는 믿음이다. 하나님의 계획인 방주의 설계를 받아든 노아는 다시한번 놀랐을 것이다. 그 규모가 실로 엄청났기 때문이다. 120년의 대공사였다. 이제부터 노아는 방주를 위해 평생을 바쳐야 한다. 자신 뿐만 아니라 온 가족 역시 마찬가지다.

지금하고 있는 일을 얼마나 오래 해왔는가? 그리고 그 일에 평생을 걸 믿음이 있는가? 나의 방주를 짓고 있는가? 내 경험과 이성에 맞지 않아도 좋다. 주변의 손가락질과 조소를 받아도 좋다. 나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길을 가련다. 120년이 아니라 일평생 해야 할 일이라도 좋다. 나는 끝까지 이 길을 가리라. 이 단계까지 나아가야 한다. 이런 자에게 주시는 은혜가 무엇인가? "그 집을 구원하였으니"(히11:7) 구원은 두 가지 의미를 담고 있다. 심판으로부터의 구원과 문제로부터의 구원, 이 두 가지다. 무슨 방주를 짓든지 동기는 믿음이어야 한다. 비가 오고, 창수가 나면 다 드러난다. 공적이 다 드러난다. 지금하고 있는일은 어느 누구를 위한 것이 아니다. 바로 나를 위한 것이다. 힘들어도 배가 고파도 알아 주지 않아도 도대체 이해가 안되도 보든 안보든 그 날이 다가오고 있음을 잊지말자.평생을 바칠 수 있는 일을 하고 있는 사람이 가장 행복한 사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