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도유망했던 청년 최승일, 갑자기 맞닥뜨린 '실명'

'이쪽으로 오세요.' 기자를 맞이한 감사교회 최승일 목사는 따스한 햇살을 맞으며 기자를 예배당으로 인도했다. 작지만 아담하고 깔끔하게 꾸며진 예배당에서 진한 기도의 향기를 맡을 수 있었다. 응접실에서 마주 보고 앉아 담소를 나누면서도 그가 '1급 시각장애인'이라는 것을 눈치채지 못할 정도로 최 목사는 자연스럽고 편안해 보였다.

"1987년 3월 갑자기 시력이 떨어지면서 빛과 어두움만 구분할 수 있는 '전맹' 진단을 받았어요. 종합병원에서 안과, 신경정신과, 내과 다 검사를 해도 원인불명이라고, 차라리 한국으로 돌아가 치료를 받으라고 하더라고요. 원인이 없으니 약도 한 알 먹어보지 못하고 돌아 갔는데 눈 앞에 서 있는 가족들도 알아보지 못하니 기가 막힐 노릇이죠."

▲감사교회 최승일 목사, 최선영 사모 부부

'앞길이 창창했던' 젊은 공학도 최승일은 그렇게 갑작스레 시력을 잃고 짙은 어둠 속에 놓이게 된다. 가족의 기대를 한 몸에 받으며 미국 유학길에 올랐지만 불과 2년 만에 남은 건 시력상실과 분노로 끓어 오르는 가슴 뿐, 죽으려고도 했지만 보이질 않으니 그것도 쉽지 않았다. 아들에 대한 기대가 컸던 어머니는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한 사찰 집사의 전도를 받아 눈 먼 아들을 데리고 전국을 돌며 큰 교회 목회자와 기도원을 찾아 다니며 기도를 받게 했다.

"당시만 해도 신앙심 보다는 그저 눈 고치는 게 목적이었어요. 원망과 불평을 품고 기도하는데 어느 날 밤 '너는 할 수 있다'는 음성이 들렸어요. '내 앞 길도 못보고 기초생활도 스스로 못하는데 뭘 할 수 있습니까?' 따지듯 대답하니 '넌 기도할 수 있다'고 하세요. 그 말씀 앞에 두 손 들어 항복하고 밤새 가슴을 치면서 애통의 기도를 드렸어요. 상황은 변함이 없고 단지 마음만 변했는데 그때부터 '감사'가 넘치더라고요."

기적적으로 70%가량 회복된 시력은 가까운 사물이나 큰 글씨는 볼 수 있을 정도로 회복됐다. 기도응답 이후 바로 신학교에 입학한 그는 1992년 목사 안수를 받고 속리산 인근 보은 지역에서 2년 반, 서울에서 5년 가량 목회를 했다. 그리고 1999년 LA로 건너와 이민목회를 하다 2004년 애틀랜타 지역 주님의은혜기도원에 부임해 기도사역으로 섬기다 지난 2008년 추수감사절에 스와니 지역에 '감사교회'를 개척했다.

돌이킬 수 없이 치닫던 부부들, 이들의 경험 나누면 마음 열어

"'상처 받은 치유자'라는 말 들어보셨지요? 하나님께서 목회자를 세우실 때 먼저 환란과 시련을 통해 훈련 시키시는 것 같아요. 제가 겪어 봤기 때문에 다른 이들의 아픔과 상처, 절망이나 고통을 정말 마음으로 품게 되요. '24시간 생명의 전화'를 통해 많은 분들과 이야기 하지만 특히 풍전등화 같은 위기에 놓은 가정들이 적지 않아요. 기회가 되면 저희 부부가 같이 가서 우리 이야기를 해주면 '저희보다 더 하시네요'라면서 쉽게 마음을 열어요. 힘들지만 이 사역을 놓을 수 없는 건 그만큼 애틀랜타에 깨지고 무너진 가정들이 신음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사실 최승일 목사와 최선영 사모는 각각 이혼과 사별로 인해 혼자 됐다 재혼한 가정이다. 이민목회 가운데 이혼을 경험한 최 목사는 '차라리 내 생명을 걷어 가시라'는 처절한 기도 가운데, 가정의 중요성을 깊이 깨닫고 가정회복을 위한 상담 사역을 시작하는 계기가 됐다고 한다. 자신들과 같은 경험을 했지만 행복한 가정을 회복한 최 목사 부부에게 내담자들은 쉽게 마음을 열고, 그때 최 목사는 오직 말씀으로만 하나 하나 얽히고 설킨 마음의 앙금을 풀어준다. 여기에 성경적 상담학을 공부한 사모의 역할도 적지 않다.

최선영 사모는 "제가 목회자의 아내가 될 거라고는 상상도 못하고 원하지도 않았어요. 목사님과는 어떤 한 사람을 위해 도고(禱告) 기도하던 중 알게 됐고, 이후 제가 영적인 조언도 구하고 기도도 부탁하는 멘토 같은 분이셨어요. 하나님께서 신앙이 저보다 더 좋은 분과 재혼할 마음을 주셔서 기도 부탁도 했었고요. 그러다 어떤 계기로 금식기도를 하던 중 응답을 받고 목사님과 결혼을 결심했어요. 생각해 보니 미국에 와서 신학 공부를 시키신 것도, 지금 교회로 사용하고 있는 집을 사게 하신 것도 다 예비하심이었어요. 물론 뒤늦은 사모 역할이 쉽지는 않지만 연단하고 사용하시는 손길에 감사할 뿐이에요"라고 고백했다.

▲감사교회 예배당

원고 없는 설교, 위에서 주시는 말씀 사모하며 몸부림

원고가 없는 설교를 해야 하는 최승일 목사는 매주 위에서 주시는 말씀을 받고자 철야기도하며 몸부림 칠 수 밖에 없다. 감사교회에서 가장 중요한 사역이 신령과 진정으로 드려지는 예배인 만큼, 이 한번의 예배를 통해 성도들이 살아계신 하나님의 터치를 느끼고 그분의 영광을 접할 수 있도록 매일 새벽 기도 가운데 뿌리는 눈물도 적지 않다.

"하나님은 늘 가장 좋은 걸 주세요. 우리는 그 때를 기다리면서 하나님의 뜻을 구해야 하는데 오히려 나의 뜻이 해결되기만 기도해요. 내가 주님의 뜻을 위해 쓰임 받는 것인데 예수님을 자신의 목적을 위한 도구나 수단으로 이용하는 사람이 많아요. 목회자로서 성도들의 잘못된 시각이 변화되어 하나님의 임재를 직접 경험할 수 있도록 기도를 많이 합니다. 부족하니까 기도할 수 밖에 없고, 또 기도하고 금식하면 성령님의 임재에 더 민감해 져서 말씀도 풍성해 지니 성도님들도 대번 알아 보시더라고요(웃음)."

기도의 영역은 다만 감사교회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영적인 전환점'이 절실히 필요한 애틀랜타가 미국을 다시금 영적으로 깨우는 회복의 시작점이 되길 기도하고 있다.

감사하는 세상을 만들고 이끄는 교회

"안 보이는 눈 때문에 세상일은 가려지고 보이지 않는 세계를 밝게 보게 하시고, 하나님 나라에 대한 비전이 있으니 난 누구보다 눈이 밝은 사람"이라고 말하는 그는 자신의 시력 상실로 가족 모두가 구원받을 수 있었다고 이것 역시 '감사'의 제목에 넣었다.

"저를 데리고 전국을 다니셨던 어머니는 이후 '울보권사'가 되셨어요. 예배를 드릴 때마다 회개하시고 우시고, 아들 때문에 또 우시고... 끝까지 교회를 가지 않겠다고 하시던 아버지 신발을 날마다 가방에 넣어서 새벽기도회에 가시면 딱 자기 옆에 꺼내 놓고 '주님, 아들 왔어요'라면서 기도하셨어요. 결국 아버지까지 모두 주님 품에 돌아왔습니다."

신앙의 꽃은 '감사'가 아니냐며 교회 이름을 설명한 최승일 목사는 교회의 부흥을 목적으로 삼기 보다 하나님의 일과 뜻이 이뤄지는 교회가 되길 소망한다고 밝혔다.

감사교회는 매주일 오전 10시 30분에 주일예배를, 수요일 오후 8시 30분에 삼일예배를 드리며 평일 오전 5시 30분, 토요일 오전 6시에 새벽기도회를 갖는다. 주소는 1667 Belmont Creek Pointe, Suwanee GA 30024이며 문의는 678-789-3636, 678-622-1232로 하면 된다. 홈페이지는 www.facebook.com/thankschurc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