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틀랜타기독일보에서 매주 몇몇 지역교회 목회자들의 최근 설교문을 요약 정리해서 소개하는 <주일강단>을 시작합니다. 척박한 이민사회에서 눈물로 말씀의 씨앗을 뿌리고 있는 목회자들을 통해 전달되는 말씀이 갈급한 심령으로 은혜를 사모하는 이들에게 커다란 은혜와 소망을 전해줄 것을 믿습니다

시온한인연합감리교회 송희섭 목사
본문 : 창22:1-14 “부모의 믿음을 따라”


오늘 본문 말씀 통해서 첫 번째 묵상해 봐야 하는 것은 우리의 자녀는 우리의 삶을 보고 자라납니다. 지금은 아이들을 키우기 힘든 시대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변치 않는 진리가 있습니다. 뿌린 대로 거둔다는 것입니다. 부모가 좋은 삶을 뿌렸다면 자식은 분명히 잘되는 것입니다. 우리의 자녀는 분명히 우리 삶을 보고 자랍니다. 본문은 아브라함이 이삭을 바치는 장면입니다. 아브라함 나이 100세 때 이삭을 낳았습니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은 아들입니다. 이 아들이 청소년이 되었을 때 하나님께서는 번제로 드려라 말씀하셨습니다. 번제라는 것은 제물을 죽여서 각을 뜨고 불에 살라서 드리는 제사입니다. 내 생명보다 귀한 아들을 불로 살라 바치는 것은 생각만 해도 끔찍한 것입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단 한마디의 이의를 제기하지 않고 묵묵히 집을 나섭니다. 아브라함에게는 어떤 믿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삭을 통해 큰 민족을 이루신다고 여러분에게 약속하셨습니다. ‘설사 이 이삭을 죽인다하더라도 하나님께서 이삭을 살릴 것이다’라는 부활의 믿음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을 믿고 이삭을 드립니다. 그렇다면 이삭은 무엇을 믿었느냐는 것입니다. 이삭 안에는 자기 아버지 대한 믿음 있었습니다. 눈에 보이는 아버지를 믿었습니다. 아버지의 눈을 보았더니 아버지가 무슨 말 하는지 알아들었습니다.

“아들아 하나님께서는 너를 제물로 바치라고 하시는 구나 그러나 너는 절대로 죽지 않을거야 만약 네가 죽더라도 하나님께서 너를 다시 살릴거야” 이 아버지의 눈길을 알아차렸습니다. 평소 아버지 삶을 보니 아버지를 믿을 수 있었습니다. 아버지가 아들을 믿고 아들은 아버지를 믿고 이 장면이 얼마나 아름다운 장면인지 알 수가 있습니다. 이렇게 믿을 수 밖에 없는 아버지의 신실한 삶이 있었습니다. 자녀는 부모의 믿음과 신실한 삶을 보고 배우는 것입니다.

두 번째는 자녀를 교육할 생각만 하지 말고 하나님께 인도할 생각을 해야 합니다. 불우하고 학대받은 환경 속에서 자라난 오스왈드와 온갖 미움과 고난을 겪은 성경의 요셉은 환경이나 조건은 둘 다 똑같았지만 결과는 달랐습니다. 그 차이는 하나님이 있는 사람과 하나님 없는 삶입니다. 여러분 좋은 교육 시키려고 좋은 환경 만들려고 애쓰지 말고 아이를 하나님께 인도해야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 책임져 주시고 보장해 주십니다. 하나님 손에 맡기십시오. 하나님 손 위에 올려 놓는다면 기적의 사람이 됩니다. 하나님 손 위에 올려 놓을 때 비로소 되는 것입니다.

사무엘을 보세요 어머니가 한나입니다. 얼마나 많은 고통 속에서 사무엘을 낳았는지 모릅니다. 우여곡절 끝에 사무엘을 낳았습니다. 인간적으로 생각하면 마땅히 내가 끼고 평생을 살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한나는 젖을 떼자마자 하나님의 집에 데리고가 하나님께 의탁합니다. 이 아이를 하나님 손에 올려 놓으면 얼마나 위대하고 찬란한 인생을 살게 될지 알았습니다. 내 아들과 내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의 자녀를 누구에게 맡기겠습니까. 능력의 한계가 있는 내가 맡겠습니까.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 손에 올려 놓겠습니까. 하나님 손에 올려 놓으십시오 여러분 자녀를 위해 믿음의 씨 뿌리고 신실한 삶을 심는 저와 여러분 되기를 원합니다. 자녀들을 교육 시키려고 하지 말고 자녀들에게 하나님을 소개 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 손 위에 올려 놓으십시오. 이것이 부모로 살아가는 우리가 해야 할 일입니다.

함께가는교회 서경훈 목사
본문 : 창12:1-3, 사6:1-13, 마28:18-20 “사는 것입니다!”


세 군데 말씀의 공통의 주제는 ‘가라’입니다. 하나님 아브라함에게 나타나서 고향, 친척, 아비 집을 떠나 하나님 지시하는 땅으로 가라 말씀 하셨다.. 아브라함은 순종해서 정말로 갔습니다. 그 때 부터 새로운 장이 열렸습니다. 이사야 선지자 부르시는 장면 내가 누구를 보낼 수 있을까 하나님 보낼 사람이 없어 탄식하는 모습입니다. 이사야 선지자로 소명을 받는 장면입니다. 하나님 말씀 대언하여 전할 사람 이 땅에 보내기 원하십니다. 하나님 대신해서 보낼 사람 하나님은 찾고 계십니다. 마태복음에서 마지막으로 사명을 주는 장면. 이 장면에서도 예수님은 ‘가라’ 말씀하십니다. 모든 족속을 제자로 삼으라 하십니다. ‘너희가 직접 가라 그리하여서 제자를 삼으라’

저 역시도 예수를 믿고 영접했을 때 ‘하나님께서 허락하시는 그곳에서 내가 직접 생계 꾸려 가며 헌신하겠다’고 하나님께 약속했었습니다. 그리스도인의 삶은 하나님께서 ‘가라’면 가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방향을 정해 주셨습니다. 십자가 향해서 가면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가라는 그 길로 가는 것입니다. 세상 온갖 슬픔 나의 죄악을 내 몸에 짊어 지고 내가 유월절 어린 양이 되어서 가는 길 오늘 우리가 함께 걸어가는 길입니다. 오늘 본문의 중요한 의미는 우리가 이미 있는 이곳이 선교지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미 우리를 부르셨고, 하나님 나라를 세워야 하는 삶의 자리로 보내셨습니다. 지금 내 삶의 자리가 내가 결정해서 온 것 같아도 예수를 믿고 난 이후의 삶은 하나님께서 이미 부르신 삶입니다.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 지금까지 안정된 삶을 뒤로하고 오직 하나님 한 분만 의지하고 사는 삶의 자리 그 삶에는 오직 한가지 믿음이 요구됩니다. 하나님께서 나와 함께 하신다는 그 믿음입니다. 그것 한 가지 가지고 떠나라 하시는 그 말씀에 순종한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도착했던 가나안은 하루 하루 이기고 가야 했던 삶의 현장입니다. 우리 역시 그런 삶의 현장으로 우리를 이미 보내셨습니다. 이 지금 살고 있는 이 땅이 가나안입니다. 그리스도인이라면 이미 보냄을 받은 자입니다. 선교사입니다. 저와 성도님은 이미 가라고 하신 부르심을 따라 온 것입니다. 아브라함을 부르시고 이사야 부르신 하나님은 성도님들에게도 이미 가라고 하신 하나님이십니다. 우리 가정이 선교지입니다. 우리 삶의 구석 구석이 하나님 나라의 선교 현장입니다. 예수를 주님으로 고백하고 그 순간부터 선교의 사명을 가지고 ‘가라’고 하신 그 말씀에 순종해 ‘가라’고 하신 땅으로 가는 것 그것은 이미 시작되었습니다.

선교사 그러면 알고 있는 이미지가 있습니다. 기후, 환경, 문화, 음식, 물까지도 다른 곳에서 하나님 한 분만 의지하고 하루 하루 어려운 사역을 하고 있는 그 분들 어느 자리는 쉽지 않습니다. 그 분들만 아니고 지금 이곳에서 선교사역을 감당하고 있는 이 자리도 만만한 것은 아닙니다. 우리 삶의 힘든 이유가 경제난 때문입니까? 그리스도인이 우리의 삶이 어려운 까닭은 선교 사역지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힘들고 피곤한 선교지 가운데서 하루 하루 하나님 말씀에 의지하고 하나님 뜻에 순종하는 그 삶을 살아내는 것. 이것이 아브라함, 이사야, 예수의 제자들에게 배우는 교훈입니다. 하나님 한 분 외에는 그 누구로부터 공급받을 수 없는 곳 위로 받을 수 없는 곳 그러나 눈을 들어 하늘을 바라 보기만 하면 항상 그 곳에 계신 그 분을 만날 볼 수 있는 곳 그 곳이 선교지이며 우리 삶의 현장입니다.

내 삶의 자리가 선교지임을 깨닫게 되면 하루 하루 하나님의 임재를 체험하며 살 수 있습니다. 우리와 똑같이 이 땅에 살면서도 하나님의 임재와 체험을 하셨던 분이 예수님이십니다. 예수님하고 우리의 공통점 한 가지 우리가 다 선교사에요 하늘 보좌 버리고 아버지의 뜻을 따라 이 땅에 파송받아 오신 예수님은 선교사였습니다. 오늘 내가 있는 자리가 선교 사역을 감당하는 자리입니다. 신앙은 하루 하루 사는 것입니다. 예수님처럼 살아 내는 것입니다. 예수님만 선교사들만 선교사로 살아가는 것이 아니고 우리가 살아가는 이 자리에서 예수님처럼 그 삶을 살아냄으로 선교사의 사명을 사는 것입니다.

아틀란타 제자교회 김성회 목사
본문 : 삼상 2:6-10 “생사를 주관하시는 하나님”


오늘 본문에는 한나라는 여인이 나옵니다. 자식이 없어서 아이를 낳지 못하는 여인이 하나님 앞에 눈물 흘려 밤 낮으로 기도합니다. 한나가 가지고 있는 기도의 내용이 우리가 묵상할 주제입니다. 그 하나가 생사를 주관하시는 하나님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결국 하나님께서 한나에게 아들을 주셨습니다. 그 아들이 사무엘 이스라엘을 구원한 하나님 앞에 크게 쓰임 받은 사람입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 기도해야 할 부분은 하나님 앞에 어떻게 서야 하느냐가 중요한 관건입니다. 우리 자녀, 모든 세대가 하나님 앞에 세워지기 위한 기도가 필요합니다. 철저하게 하나님 앞에 서야 합니다. 또한 말씀에 기초한 기도를 해야 합니다. 말씀대로 기도하는 자에게 말씀으로 응답하십니다.

한나는 다른 것을 요구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 저에게 아들을 주신다면 하나님께 드리겠나이다. 사무엘은 성전에서 성장했습니다. 자녀를 하나님께 드릴 수 있다는 것은 나의 생과 사를 하나님께 드린다는 것입니다. ‘생사를 주관하시는 하나님’ 그 하나님의 주권은 한나의 고백은 우리를 죽이기도 하시는 살리기도 하시는 하나님이다. 한 마디로 구원은 여호와께로 온다는 것입니다. 구원과 멸망 심판과 축복은 하나님께 달려있습니다. 우리의 생명은 하나님의 것입니다. 우리는 남은 인생을 어떻게 하나님께 영광이 되며 어떻게 우리 자손들에게 하나님 앞에 바로 설 것인가 중요한 것입니다. 이사야 43장 1절 이 자리 오게 된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지명하여 부른 것입니다.

성경 여러 곳에서 우리가 하나님 자녀이고 우리를 붙들고 계신다 말씀하고 있습니다. 주권적인 하나님의 신앙은 주님은 나를 살리기도 하시고 죽이기도 하신다는 고백이 늘 내 입에 있는 것입니다. 모든 주권은 하나님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시고 축복하셔서 우리가 믿음으로 하나님 앞에 설 수 있는 것입니다. 천주교의 연옥설, 면죄부를 통한 종교의 부패가 있었습니다. 구원이 우리의 노력으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구원은 믿음으로 되는 것입니다. 구원 받은 이상 구원 받은 성도의 삶, 성결의 삶을 살아갑니다. 중요한 것은 생사화복을 주관하시는 하나님의 대한 말씀은 먼저 구원의 대한 우리의 생각과 믿음이 결정되어야 합니다. 또 한가지 부활의 대한 믿음입니다. 그리고 부활이 있기 전에는 먼저 포기와 죽음이 있어야 합니다. 부활의 은혜 체험하기 위해서 날마다 나 자신을 십자가 못 박아야 합니다. 부활의 은혜 체험하기 위해서 우리 생각, 마음 우리 모든 것이 죽어져야 합니다. 요3장 16절에 영생이라고 하는 단어 속에는 영원한 생명과 죽음이 있어야 합니다. 다시 부활함으로 하나님 나라에서 영생복락 누리는 은혜를 경험하게 됩니다. 하나님이 나를 죽이기도 하시고 살리기도 하시는 내 생명과 내 모든 것 인도하시는 주권적인 하나님 앞에 순종할 때 그곳에 진정한 부활 신앙과 구원의 은혜를 경험하게 됩니다.

다음으로 하나님은 흥하게 하시고 부하게 하시는 하나님입니다. 한나를 보면 아기를 갖지 못함으로 많은 고통을 받았습니다. 한나는 하나님 앞에 울며 불며 기도합니다. 오랜 기도 중에 하나님께서 은혜를 주시고 이스라엘 구원 할 선지자를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간절한 기도 속에 간구하는 여인을 열국의 어미로 삼았습니다. 하나님께서 특히 어머니들에게 복을 주셨고 어머니의 자손에게 복을 주셨는데 그 복은 하나님을 잘 섬길 때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우리의 가정과 우리 교회 우리 자녀 모든 것 흥하게 하시고 망하게 하시는 주권적인 은혜가 하나님께 있습니다. 한나는 비참한 중에 있었지만 그것이 하나님 앞에 더욱 기도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기도함으로 하나님의 역사하심을 경험했습니다. 하나님은 더 좋은 것으로 은혜 내려 주실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고 부족함 가운데 있지만 하나님을 바라며 간절히 기도할 때 하나님께서 우리를 주장하실 것입니다. 생사 주관하시는 하나님 앞에 무릎으로 나아가 거룩한 길 걸어나가는 모두가 되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