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젖과 꿀이 흐르는 땅

팔레스틴의 남쪽과 동쪽은 사막이며, 국토의 대부분은 광야와 거친 땅으로 이루어져 있음에도 이곳을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라 칭한 것은 나름대로 이유가 있다. 게다가 이 땅을 ‘약속의 땅, 에레쯔 이스라엘, 하아레쯔, 이스라엘, 유다, 시온, 필리스티나, 성지’로 불렸던 이름들이 다양하다. 성경외 고대 근동의 역사에도 이 땅을 가리키는 명칭 또한 다양하게 나타난다: 하리우샤(Hariu-sha), 아모리의 땅(the land of Amurru), 레테누(Retenu), 자히(Djahi), 호리 족속의 땅(the land of Hurru), 가나안 땅(the Land of Canaan) 이 있다.

이 가운데 우리에게 가장 친숙한 표현은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다. 만약 이 표현을 땅의 비옥도에 맞추어 생각하면 혼란에 빠진다. 서둘러 말하면, 팔레스틴은 외부적으로 보아 흠모할 만하거나 사람이 살기에 적합한 여건을 고루 갖춘 곳이 아니다. 팔레스틴을 방문한 경험이 있다면 우리는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란 표현이 결코 땅의 비옥도에 맞추어 사용된 표현이 아님을 곧 알게 된다. 국토의 절반을 사막이 차지하며, 남아 있는 땅 가운데서도 중앙산지의 거의 대부분은 황량한 바위로 이루어져 있고, 식물이 자라기 어려운 환경에, 중앙 산지의 남쪽 절반은 유대 광야가 차지하고 있음으로 무언가 잘못되었다는 느낌을 갖게 된다.

지울 수 없는 이런 의구심으로 많은 학자들은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란 표현에 주목하여 나름대로 자신들의 의견들을 피력하였다.

독일학자인 Benzinger는, 그리스의 신화적인 배경에서 젖과 꿀을 신들의 음식으로 이해하였다. Greβmann은 주장하기를, 이 표현은 가나안을 낙원으로 묘사한 전체적인 흐름 가운데 바벨론의 신화적인 요소가 반영된 것이라 하였다. 그러면서 Greβmann은 요엘 3:18 과 아모스 9:13에 근거하여, 이것은 종말론적인 선지자들의 표현으로 주장하였다. Houtman은 욥기 20:17 에 근거하여 시적 표현에서 비롯된 과장법으로써 젖과 꿀은 가나안의 대표적인 농산물로 이해하였다. 그러면서 그는 이 같은 표현이 나타나게 된 배경은 사막에서 생활하였던 이스라엘 사람들의 고대 근동의 시각에서 바라 보아야 한다고 전제하였다. Cassuto의 입장은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란 광야에서 생활하였던 유목민들에 의해 처음으로 사용된 표현으로 목축을 통해서는 젖을 그리고 사람의 손길을 거쳐 각종 나무로부터는 큰 수고를 하지 않고도 꿀벌의 꿀처럼 많은 실과를 거둘 수 있다는 배경에서 사용된 말로 이해하였다. 하지만 시간이 지남에 따라 그 의미는 보다 확장되어 각종 풍부한 실과를 생산하는 가나안 땅을 포괄적으로 사용하게 되었다는 견해이다.

N. Sarna는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을 가나안에 대한 부정적인 시각을 조심스럽게 해소하기 위해 사용된 반어적인 표현으로 이해하였다. 이것은 야곱의 후손들이 이집트에서 노예생활을 할 때 모세를 통하여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약속의 땅에 대한 형용사적인 표현으로 처음으로 사용되었는데 (출 3:8)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이 생활하였던 델타 지역은 야곱이 가족들을 이끌고 흉년을 피하기 위해 이주한 지역으로써 정착하기에 매우 적합한 지역이었다. D. Baly는 이 표현은 사막에서 생활하는 사람들의 시각에서 비롯된 것으로 가나안이 절대적으로 비옥하다는 의미가 아닌 사막에 비하여 상대적으로 괜찮은 땅으로 표현되었다는 것이다 (민 16:13-14). 이것이 ‘젖과 꿀이 흐르는 땅’에 대한 여러 학자들의 의견들이다.

앞서 소개한 여러 내용과 함께 성경에서 말하는 가나안 땅의 전반적인 흐름은 다음과 같이 정리한다.

첫째로, 가나안은 지정학적인 측면에서 이집트와 메소포타미아의 중간에 위치하면서 국제간 무역을 이룰 수 있는 자연적인 여건을 갖추고 있다. 하지만 이런 지리적인 여건을 갖추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 땅의 주민들은 무역 보다는 주로 목축과 농사에 종사하였다. 무역은 오히려 페니키아에서 활기를 띠었다. 성경이 말하는 가나안의 대표적인 산물은 세 가지로 축약할 수 있다: 사람의 마음을 기쁘게 하는 포도주와 사람의 마음을 윤택케 하는 기름과 사람의 마음을 힘있게 하는 양식(시 104:15)이다. 열방들이 혹시 주의 백성들을 조롱하기를 "네 하나님이 어디있느냐?" 할 때에 YHWH께서는 백성들에게 특별한 관심을 기울이시면서 이 땅으로부터 "곡식과 포도주와 기름을" (욜 2:17-19) 주시겠다고 말씀하신다.

둘째로, 후기 가나안 시대에 들어 팔레스틴의 인구는 이전에 비해 현저히 감소하였다. 네게브와 같은 지역들은 크게 황폐되었으며 중기 가나안 시대의 중요한 도시들은 전부 파괴 또는 부분적으로 황폐되었다. 특히 브엘세바 골짜기(Beersheba valley), 중앙 산지(central hill country), 요단 계곡(Jordan valley)이 대표적이다. 실로, 벧술, 여리고 그리고 헤브론은 중기 가나안 시대에 견고한 도시였으나 후기 가나안 시대에 들어 매우 열악한 도시로 전락하였다. Tell el-Ajjul과 Tel Nagila 역시 같은 입장에 처하였다. 농사를 위하여 형성된 에브라임과 므낫세 산지에서는 중기 가나안 시대의 많은 조그만 성읍들이 후기 가나안 시대에는 거의 모두가 사라졌다. 아마도 그 이유는 이 지역 사람들의 경제 구조가 농경에서 유목으로 전환되었기 때문으로 이해한다.

비록 후기 가나안 시대는 아니지만 주전 20세기에 속한 고대 이집트의 시누헤 이야기를 일부 소개하면: 그곳은 Yaa라 부르는 땅이었다. 그 땅에는 무화과와 포도가 그득하였다. 그곳에는 물보다 포도가 더 흔하였다. 꿀은 넘치고 올리브는 풍부하였다. 각종 나무에는 온갖 종류의 실과들이 있었다. 보리도 있었다. 양과 소의 수는 헤아릴 수 없이 많았다...... 그는 나를 그 땅의 가장 뛰어난 지파의 지도자로 삼았다. 매일의 양식으로 빵이 준비되었으며 포도주는 일용한 음료로 마련되었다. 나를 위하여 사막의 야생 고기 대신 (집에서 기른) 고기를 요리하였고 구워진 닭은 내 앞에 진설되었다....... 나를 위한 온갖 종류의 음식을 만들었으며 우유로 각종 요리들이 마련되었다 (ANET 18-22).

기록으로 보아 시누헤가 머문 장소는 이미 상당한 수준에 이른 발달된 농경 사회였음을 알 수 있다. 이야기 중에서 연중 생산되는 농산물은 올리브와 온갖 종류의 실과가 열린 나무들, 탐스럽게 열린 포도송이들로써 이것들은 가나안의 산지에서 생산되는 대표적인 농산물이다. 이 농산물들은 보통 늦여름에서 초가을에 추수한다. 그리고 밀, 보리들은 늦 봄에 시작 여름 내내 추수하는 곡물들이다. 여기에서 우리는 하나의 통일된 사회 구조를 엿 볼 수 있다. 시누헤 이야기와 비슷한 표현이 성경에서 발견된다: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를 아름다운 땅에 이르게 하시나니 그곳은 골짜기에든지 산지에든지 시내와 분천과 샘이 흐르고 밀과 보리의 소산지요 포도와 무화과와 석류와 감람들의 나무와 꿀의 소산지라. 너의 먹는 식물의 결핍함이 없고 네게 아무 부족함이 없는 땅이며 그 땅의 돌은 철이요 산에서는 동을 캘 것이라. 네가 먹어서 배불리고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옥토로 네게 주셨음을 인하여 그를 찬송하리라 (신 8: 7-10).

밀과 보리는 골짜기에서 생산되며 포도와 무화과 석류, 감람은 산지에서 생산되는 가나안의 대표적인 산물이다. 여기에서 꿀이란 꿀벌에 의한 꿀과 함께 종려 나무의 열매로부터 얻는 시럽일 가능성이 크다. 히브리어로 꿀이란 ‘드바쉬’인데 우리의 조청과 같은 과일 시럽을 꿀(드바쉬)이라 불렀다. 종려 나무로부터 얻을 수 있는 꿀은 요단 계곡과 사해 주변에서 생산되는 대표적인 농산물이다.

또 다른 예를 다윗의 관료들을 열거한 기록에서 찾을 수 있다 (대상 27:25-31).
아스마웨는 왕의 곳간을 맡았고... 요나단은 밭과 성읍과 촌과 산성의 곳간을 맡았고... 에스리는 밭가는 농부를 거느렸고... 시므이는 포도원을 맡았고... 삽디는 포도원의 소산 포도주 곳간을 맡았고... 바알하난은 평야의 감람나무와 뽕나무를 맡았고... 요아스는 기름 곳간을 맡았고... 시드래는 사론에서 먹이는 소떼를 맡았고... 사밧은 골짜기에 있는 소떼를 맡았고... 오빌은 약대를 맡았고... 예드야는 나귀를 맡았고... 야시스는 양떼를 맡았으니...

이상에서 우리가 살펴본 대로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란, 다양한 관점에서 서로 다른 해석을 가져올 수 있는 상징적인 표현이다.

작지만 그러나 고대 문명이 교차되는 이 땅을 하나님은 아브라함의 후손들에게 기업으로 주셨고 이 땅에서 일어난 사건을 중심으로 성경은 기록되었다. 그러므로 성경을 보다 자세히 그리고 정확하게 이해하기 위해서 이 땅에 관심을 갖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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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섭 목사(멤피스장로교회)는 성경의 사실적 배경 연구를 위해 히브리어를 학습하였고, 예루살렘 대학과 히브리 대학에서 10여년에 걸쳐 이스라엘의 역사, 지리, 고고학, 히브리인의 문화, 고대 성읍과 도로를 연구한 학자이다. 그는 4X4 지프를 이용하여 성경의 생생한 현장을 연구하기도 했다. 문의 jooseoblee@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