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적, 사회적, 육적 개발사역의 삼각형 균형 이뤄
10년간 포콧, 무베레, 엘곤 지역 개발, 20교회 2149명 성도 출석
2011년 여학생 기숙사 건축, 2016년 직업학교 개원하면 20년 플랜 완성

▲케냐 선교의 가장 큰 열매로 꼽히는 학교 사역. 유치원생 3명으로 시작해 지금은 약 6백명이 재학 중인 유치원, 초등학교, 중학교를 운영하고 있다.
애틀랜타 이민사회가 막 형성되기 시작한 1970년대, 부푼 꿈과 함께 비행기에서 내려 여느 이민자처럼 밤낮없이 일군 사업체가 어엿하게 자리잡고 자녀도 남부럽지 않게 키워 이제는 편안하게 여생을 보낼만한 기반이 잡힌 시기. 연합교회에서는 장로로 임직 받아 이민자들이 꿈꾸는 인생의 길을 걸어온 듯한 그가 케냐를 옆집 드나들 듯 다니기 시작한다. 일년에 몇 개월씩 다니다 몇 년 뒤에는 아예 사업체를 정리하고 아내와 함께 케냐 오지에서 ‘선교사’라는 이름으로 파송 받는다.

10년이 흘러 다시 애틀랜타로 돌아온 이규종 선교사. 아직은 검은 땅 케냐의 향기가 묻어나는 그의 그을린 얼굴을 마주하고 케냐 포콧 지역 선교이야기를 들었다. 소명을 받은 선교사 개인 혹은 가족이 현지로 들어가 헌신적으로 사역하면서 교회와 학교를 세워 현지인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일을 하는 오지 선교방식에서 이 선교사는 한 발 더 나갔다.

그를 파송한 연합장로교회(담임 정인수 목사)와 손잡고 케냐 정부조차 손대지 못하던 웨스트 포콧 칼레문양(Kalemnyang, West Pokot) 지역을 입양해 교회를 세우고, 지역 커뮤니티에서 무상으로 제공한 땅에 유치원으로 시작한 것이다. 유치원에 입학한 학생들이 자라며 자연스럽게 초등학교와 중학교를 세웠고, 앞으로 직업고등학교까지 세울 계획을 갖고 있다. 이중 신앙과 학업성취도가 우수한 학생들은 신학대로 보내 목회자로 양성하거나, 일반 대학을 보내 머지않은 미래에 크리스천 리더로 세우려는 포석도 놓고 있다.

“아마 알았으면 포콧 지역에 선교하겠다고 들어가지 않았을 거예요(웃음). 약탈경제인 그 지역은 훈련받은 현지인들도 들어가기 꺼릴 정도로 위험한 곳입니다. 또 정령 숭배자들이 있어 이들이 누굴 찍으면 영락없이 죽기도 해요. 지금은 내 집처럼 편안한 곳이 됐지만, 처음에 현지인들은 적대적이다가 방관하게 되고, 조금씩 협력하면서 지금은 형제 같은 관계로 발전했어요. 지금은 여기 저기서 칼레문양 지역처럼 교회를 세우고 마을 전체를 개발해 달라고 무상으로 땅을 제공해 주려고 합니다.”

한 마을을 입양해 미래를 설계 한다

포콧의 칼레문양 지역에서 연합장로교회 선교사팀이 한 일은 한 개인을 바꾸는 일에 그치지 않았다. 처음부터 마을 전체를 개발하겠다는 큰 청사진을 갖고 매월, 매년 해야 할 일을 정해 하나씩 실천해 나갔다. 4년간 단기선교를 다니면서 기반을 다졌고, 6년간 이어진 장기선교는 그 맥락을 이어 본격적으로 사역의 틀을 쌓아 올렸다.

2003년 시작된 학교사역이 가장 큰 열매 가운데 하나인데, 3명의 유치원생으로 시작해 지금은 6백 명의 학생들이 재학 중이다. 원래 칼레문양 지역에는 학교가 하나도 없었기에, ‘무(無)에서 유(有)를 창조하신 하나님의 수고로움’을 체험하는 기간이었다. 하지만 이규종 선교사는 ‘이제 딱 반을 왔다’고 자체 평가했다.

▲연합학교 개교 당시. 지역 원로들과 정치인들, 언론사에서 취재하는 등 지역사회에 큰 관심과 후원 속에 출발했다.
“케냐의 학교 시스템은 유치원 3년, 초등학교 8년, 고등학교 4년 해서 15년이고, 고등학교만 졸업하면 영어가 완벽해요. 우수한 학생들이 대학을 갈 수 있도록 지원하면 4년이 더 걸리니 총 19년 입니다. 이외에 학생들을 위해서는 직업학교를 따로 세울 계획인데 자립할만한 기술을 가르칠 것입니다. 2001년에 시작해서 10년을 왔으니 7학년까지 이제 반을 왔습니다. 2011년에는 고등학교 건축과 여학생을 위한 보딩스쿨을 계획하고 있습니다.”

최근에는 영국 NGO ActionAid으로부터 여학생 기숙사 건축을 위해 7만 5천불을 지원받았다. 이번 지원금을 받기 위해 웨스트 포콧 전역에서 69개의 학교가 지원했는데, 재정 투명도와 운영방식, 교사진과 학교 시설 등을 전반적으로 꼼꼼하게 따져서 선정된 두 학교 가운데 하나가 바로 칼레문양 연합초등학교다. 이규종 선교사는 내년 고등학교와 여학생 기숙사 시설이 완공되고 5년 후에는 최소 900명에서 1000명의 학생들이 재학하게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최소한 15년을 학교에서 생활하며 자연스럽게 기독교 교육과 정신, 신앙을 배울 것이라고 기대를 드러냈다. 여성할례가 아직까지 존재하는 지역 사회에서 여학생들을 위한 보딩스쿨은 이들을 열악한 환경으로부터 보호할 뿐 아니라 기독교 리더를 양성하는데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울타리가 될 것으로 보인다.

▲테잎 커팅식을 앞두고 기념사진. 뒤에 보이는 운동장은 지역주민들이 두 팔을 걷어 부치고 만들어 줬다.

커뮤니티와 소통에 적극, 적대적 관계에서 동반자 관계로

“포콧 지역은 사실 우리 선교사팀이 처음은 아니었어요. 폴란드 개신교 선교사와 천주교 선교팀이 들어왔지만 2년을 넘기지 못하고 철수했죠. 토속종교가 워낙 강한데다 월요일 밤마다 어린 아이부터 어른까지 밀주를 먹는 파티가 성행했는데, 퇴폐적이고 폐쇄적인 분위기였죠. 처음에 우리 선교사팀이 갔을 때 현지인들은 우리도 역시 얼마 견디지 못하고 떠날 것이라며 굉장한 거부감을 갖고 있었어요. 지속적으로 교회도 짓고 학교도 짓고 하니까 방관하다가 계속 커뮤니티와 연합해서 가려는 걸 보면서 적극적으로 호응하는 자세로 바뀌었어요. 학교가 완공됐을 때는 정부에서 문교부 장관까지 와서 축하할 정도였죠.”

다른 선교단체와는 달리 은근과 끈기로 칼레문양 지역에 지속적으로 투자하자 지역사회의 분위기도 달라지기 시작했다. 학교를 지으면서 선교사팀이 도저히 다 감당할 수 없는 부분은 커뮤니티에 적극 도움을 요청했다. ‘커뮤니티 데이’를 정해 인근 주민들이 두 팔을 걷어 부치고 공사자재를 치우고 나무를 태워 학교 운동장을 만들어 줬다. 몇 년 전 대통령 선거로 정국이 어지럽고 부족간 싸움으로 불거져 약탈과 살인이 심심찮게 일어났을 당시, 사역지의 청년들이 직접 미션베이스에 찾아와 지켜줄 정도로 관계는 돈독해졌다. 지역 정치인들도 포콧 지역의 비약적인 발전을 보며 지속적이 협력을 아끼지 않고 있다.

▲지역 청년들의 연합과 화목의 장이되고 있는 스포츠 선교. 연합교회 청년부 청년닷컴에서 스포츠 선교를 적극 지원하고 있다.

초기엔 자비량 선교, 후임을 위해 생각 바꿔

현재 포콧 지역의 선교는 연합교회에서 파송받고 후임으로 온 윤진수선교사가 사역을 맡고 있다. 이규종 선교사 부부는 파송받을 때부터 4년간은 교회에서 파송비로 오는 것을 모두 사역에만 사용하고 파송비용과 생활은 자비량으로 했다. 중간 중간 학교 건축과 시설을 위한 헌금은 마음에 감동이 있는 성도들이 적지 않게 헌금해 줬다. 하지만 사역이 중반을 넘어서면서 파송비의 반은 생활비로 사용했다고 한다. 후임이 왔을 때 자신의 하던 방식대로만 하면 감당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지인의 충고로 방향을 바꾼 것이다.

이규종 선교사는 마지막으로 지역을 바꾸는 통합선교에 더 많은 교회의 동참을 촉구했다. 처음에 한 지역을 입양해서 모든 것을 한 교회(연합장로교회)에서 지원했고, 10년간 지속된 선교로 오지에 불과했던 포콧의 칼레문양 지역이 4 곳의 서브 로케이션(마을)을 관할하는 행정의 중심지로 변모하였으며 지역 개발과 계몽의 모범사례로 뽑히게 됐다. 웨스트 포콧의 주민들은 칼레문양을 “파라다이스 인 더 부쉬” 라고 부르며 지역 중심지가 된 것에 자부심을 갖고 있다. 오랜 기간 연합교회의 선교를 지켜본 주변 마을에서도 같은 방식으로 선교를 해 달라고 공용토지를 무상으로 기증해 지금은 6 곳의 마을에 교회를 개척하고 그 중 4 지역에는 성전을 건축했다. 한 교회에서 한 마을을 입양하거나 여러 교회에서 한 마을을 공동으로 입양하면 연합교회가 그간 쌓아온 선교 개발 매뉴얼과 지역 원로, 정치인들과의 관계 등 모든 노하우를 아낌없이 공유할 계획이다.

▲유스 캠프.
“케냐 지역 특성상 학교를 만들어 공립으로 할 경우 정부에서 학생 당 매년 20불과 교과서, 교사, 학용품 그리고 식료품 등을 지원을 받으면서 미션스쿨을 만들 수 있어요. 학교 이사회 위에 스폰서가 있는데 처음에는 스폰서로서 얼마간 감당할 몫이 있어요. 가령 건물을 지어주고, 책걸상을 넣어주고 운영비용을 지원하며 선생님이 부족하면 채워 주는 일인데 이렇게만 하면 인사권을 가질 수 있고, 학교 운영에 전체적인 결정권을 갖게 됩니다. 처음에 최소 들어가는 비용이 있지만 학교가 오래 될수록 그 지원 비율이 줄어 들어요. 단기적으로 다녀오는 선교에서 이제는 한 마을을 변화시키는 통합선교에 관심을 기울여야 합니다.”

▲아직 케냐의 향이 묻어나는 이규종 선교사.
앞으로 이규종 선교사는 요청이 있는 교회를 다니며 케냐 선교 노하우를 전하고, 선교를 위한 훈련, 단기선교팀 인도, 선교현장 방문 등 선교를 후방에서 돕는 일에 힘쓸 것이라고 밝혔다. 선교를 하면서 가장 큰 축복은 ‘의학 공부를 하다가 목회자가 된 아들’이라면서, 51살에 부름 받아 지금까지 그랬듯 하늘 나라에 가는 그날까지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선교를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고백했다.

케냐 선교에 관한 자료요청 및 문의 kyujlee1@gmail.com 770-856-093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