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 말 중에 "Nobody promised you a rose garden."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아무도 당신에게 장미 정원을 약속한 일이 없다."고 번역해 봅니다. 우리 인생이 문제도 없고 아픔도 없고 땀 흘리고 수고하지 않아도 되는 그런 것이라고 약속 한 일이 아무도 없다는 것입니다. 어떤 신학자는 에덴동산에서 쫓겨나고 광야와 같은 세상에 들어가 광야의 현실을 헤치고 나가면서 성숙해 지는 과정을 구원의 과정으로 설명합니다. 보통 사람들은 수고하지 않아도 먹고 살며 아무 옷을 걸치지 않고 다녀도 되는 에덴동산에 들어가는 것을 최고 최상의 축복으로 막연하게 생각합니다. 그런데 그것이 아니라 광야를 거쳐 약속의 땅으로 들어가는 것이 하나님이 그 백성에게 선물로 주신 축복이라는 것입니다.

요즘 먹고 사는 문제가 예전의 어려움에 비해 더 큽니다. 신분문제로 운전면허가 취소된 교인들도 적지 않습니다. 비자신청 과정에 있는 우리 교회 목회자도 며칠 전 면허가 갱신되지 못했습니다. 사업을 하는 분들도 버티고 버티는데 더 이상 버티기가 너무 힘들다고 호소합니다. 요즘 개솔린이 한 갤론에 $5을 넘어갈 추세입니다. 어제도 어느 분이 경기가 계속 어려운데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말을 하니까, 또 다른 분이 "미국 정부도 어떻게 할 지 모르는데 우리가 모르는 것은 당연해."라고 한마디 합니다.

어려움이 예사롭지 않습니다. 그런데 요즘의 어려움 때문에 사람들이 살아가는 문화가 바뀌고 있습니다. 기차를 타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자동차를 작은 것으로 바꿀 뿐만 아니라 아예 작은 오토바이 스쿠터를 타는 사람들도 생기고 있습니다. 멀지 않은 거리는 자전거를 이용합니다. 어렵기 때문에 오히려 건강한 생활문화가 개발되고 있는 것입니다. 여름철 휴가를 집에서 보내는 분들도 많아지고 있습니다. 어떤 분들은 짧은 여름휴가에 돈도 들고, 다니느라 고생하기 보다는 교회 봉사하겠다고 찾아오는 분도 얼마 전에 계셨습니다. 사도 바울이 "환난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룬다"(로마 5:3-4)고 했습니다. 환난 중에 기뻐하는 이유가 환난을 통해 품격(연단, character)이 형성되고 그 품격형성은 결국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마음에 부은바 되는 소망이라 했습니다.

어려울 때가 하나님을 더욱 가까이 만나는 때가 되고 하나님께서 축복하실 기회의 때가 되고 나아가서 소망을 이루는 품격이 형성되는 훈련의 때가 될 수 있습니다. 얼마 전 어느 집사님이 어렵다는 소식을 듣고 격려의 말씀을 했더니 "목사님, 나는 자랄 때 몇 년 동안 감자만 먹고 살았습니다. 아직 감자 한 부대 살 돈은 넉넉하니 괜찮습니다."하면서 웃으십니다. 얼마 전 친구목사가 목회 어렵다는 말을 하기에 "당신 목사 되겠다고 미국 처음 왔을 때 신학교 근처에도 들어가지 못하고 영어연수 하면서 여름 동안 뉴욕 청과상에서 일하다가 너무 힘들어 나에게 전화했던 것 기억해? 위로는 코피 터지고 밑으로는 치질이 터져서 '김목사, 나 아래 위 다 터져서 피 흘리며 일한다.'고 했던 시절 생각하면서 참아."라고 했습니다. 정도 차이 일뿐이지 우리 모두는 그런 광야생활을 거쳐 오늘에 이르렀습니다.

어려운 때는 서로 돕고 사는 기회의 때입니다. 조금 넉넉한 사람에게는 나눔의 기쁨을, 조금 어려운 사람은 받는 기쁨의 기회입니다. 주면서 교만할 것 없고 받으면서 부끄러울 것 없습니다. 때가 되면 언제인가 내가 받을 수도 있고 내가 주어야 하기도 합니다.
행여나 주일날 헌금 드릴 형편이 되지 못하는 분들은 부담가지지 마시기 바랍니다. 마음을 드리면 됩니다. 나중에 어려움의 때가 지난 다음에 기쁜 마음으로 많이 드리세요. 그리고 살기 넉넉한 분들은 모두 어려운 때인 만큼 보다 넉넉하게 헌금하시기 바랍니다. 어려운 때에 오히려 하나님께 더 큰 기쁨과 영광을 돌릴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소원하는 것은 아무 문제도 없고 수고하지 않아도 되는 '장미 정원'이나 '에덴 동산'이 아닙니다. 하나님 약속의 땅입니다. 광야를 지나 믿음의 훈련과정을 거칩니다. 요단강도 건너고 여리고 성도 무너뜨리고 수많은 적군들의 연합전선을 물리쳐야 합니다. 무엇보다 이 모든 과정 가운데 "오직 나와 내 집은 여호와를 섬기겠노라."는 여호수아의 결단을 절대로 놓치지 않아야 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