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주말, 아틀란타 목사협의회(회장 박승로 목사) 주최 목회자 수양회 인도차 아틀란타를 찾은 윤영석 선교사를 만났다.
목포에서 뱃길로 6시간 가야 하는 작은 섬에서 맹인 예수쟁이 박중옥 목사를 만나 신앙을 갖게 되고, 갖은 역경과 핍박 속에서도 수많은 성령체험과 하나님의 강권적인 인도하심을 따라 하나님의 종으로 부름 받은 윤 선교사. 그는 문호가 막 개방된 1993년 하나님 주심 꿈에 이끌려 홀로 중국대륙을 밟고, 선교의 비전을 품게 된다.
이후 윤영석 선교사는 대학교수로 시작해 중국 선교사로 헌신, 지역순회 전도는 물론 정부에서 허가 받은 교회를 세우고 지원, 관리하는 17개의 교회를 세우는 등 중국선교의 산 증인이다. 백화점 경영으로 경영선교에 뛰어든 그는, 현지 사역자와 선교사를 돕고, 사업현장을 통해 현지인을 전도하는 경영선교의 문을 열었다. 지금은 정치인으로 헌신하고 있다.
윤영석 선교사는 새천년민주당 환경종교위원장, 국정자문위원 열린우리당 통일정책특별위원회장 제17대 대통령선대위 종교특보단장 및 평양국제대성회 남북통일위원장을 역임했다.
현재, 그는 (주)KRB한국종교방송 대표이사와 (사)세계기독교부흥협의회 실무회장으로 정계와 방송계에서 활발한 사역을 펼치고 있다. 저서로 실제적인 경험을 바탕으로 한 중국선교 여정을 담아낸 <예수와 함께 대륙을 달리며(도서출판 예가)>가 있다. -편집자 주-
다음은 윤영석 선교사와의 일문일답.
-아틀란타는 어떻게 방문하게 됐나?
“이번에 목회자 세미나 특별강사로 초청해주셔서 왔다. 이번 세미나에서 ‘나는 선교사다’라는 제목으로 중국선교의 경험을 바탕으로, 지역 목회자들에게 선교사적 사명으로 교회를 섬기는 마음가짐과 방법에 대해 강의했다. 이민목회가 쉽지 않으며, 또 하나의 선교지라고 할 수 있다. 이곳에서 맡겨주신 주님의 양들을 오직 말씀으로 품고, 늘 새로운 비전을 제시함으로 땅끝까지 복음을 전하라고 하신 사명을 잘 감당해가시기를 권면했다”
-목회자로서 화려한 정치활동 이력을 갖고 있다.
“중국에서 교육선교, 개척선교, 경영선교를 마치고 마음도 정리할 겸 쉼을 얻고자 2001년 오랜 타국생활을 정리하고 귀국했다. 이후 새천년민주당 환경종교분과 부위원장으로 임명된 것을 계기로 지금까지 다양한 사역을 맡겨주셨다. 목회자로서 정치에 발을 들여놓은 것에 갈등도 적지 않았고, 질시와 비난도 받은 것이 사실이다. 이를 놓고 고민하다 3일간 금식하며 기도했더니 하나님께서 ‘내가 뜻이 있어서 너를 그곳에 보냈다’고 응답해주셨고, 소신을 갖고 일하게 됐다”
-정계활동을 하면서 가장 크게 느낀 점이 있다면.
“성경에서 너희는 세상의 빛과 소금이라고 하신다. 광복 이후 60여 년간, 기도하는 민족인 한국을 하나님께서 축복하셔서 교회가 7만여 개, 성도가 전 국민의 1/3인 1,200만 명에 달한다. 이처럼 하나님의 백성이 많은데도, 정작 한국교계에서는 사람을 키우지 않는다. 정계활동을 하면서 가장 아쉽고 안타까운 점이 바로 ‘종교계에서 통일을 주도할 정치인’이 턱없이 부족하다는 점이었다. 요즘처럼 혼란스러운 정국에 종교계가 정치에 이용당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지도하며, 정치인들을 하나님의 법으로 인도할 수 있을 정도의 영향력이 생겨야 한다고 본다.”
-통일 운동에도 앞장서왔는데...
“민족의 통일은 당장이 아니더라도 반드시 이뤄질 것이라 믿는다. 또 한국교회는 이를 위해 끊임없이 간절하게 기도해왔다. 하지만 무엇보다 통일에 대한 시각과 가치관이 변하고 진전 되야 한다. 우리는 너무 쉽게 북한이 빈곤으로 붕괴되면, 자연스럽게 남한에 흡수통일 될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그런데 이게 말처럼 쉬운 게 아니다. 당장 국경을 맞대고 있는 중국은 북한에 알게 모르게 많은 투자를 하고 있고, 정치적, 사회적 영향력이 크기 때문에 북한에 실질적인 권리를 주장할 수 있다.
문화적인 괴리도 무시할 수 없다. 가령, 밤 문화가 없는 북한과 세계에서 손 꼽히는 밤 문화를 자랑하는 남한이 당장 합쳐졌을 때 거기서 오는 혼란과 갈등이 얼마나 하겠는가? 통일을 고민한다면, 먼저는 민간 차원에서 문화적 교류를 바탕으로 점차 서로를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순차적인 과정이 필요하다.
무엇보다 종교계에서 모든 이해관계를 떠나 평화통일기금 조성에 앞장섬으로 통일 이후 경제적 충격을 완화시키는 것과 세계 각처에 나가있는 재외동포사회 통일교육도 절실하다고 본다.”
-앞으로의 사역 방향은 어떤가?
“지금은 일단 정계활동을 줄이고, 주님이 인도할 때까지 미국 알라버마에 머물려 공부하고 쉬면서 책도 저술할 계획이다. 쓰임 받을 수 있다면, 조국의 평화통일을 위해 재외동포사회의 인식을 환기시키고, 위원회 등을 조직해 조금이나마 도움이 될 수 있기를 기도하고 있다.”
목포에서 뱃길로 6시간 가야 하는 작은 섬에서 맹인 예수쟁이 박중옥 목사를 만나 신앙을 갖게 되고, 갖은 역경과 핍박 속에서도 수많은 성령체험과 하나님의 강권적인 인도하심을 따라 하나님의 종으로 부름 받은 윤 선교사. 그는 문호가 막 개방된 1993년 하나님 주심 꿈에 이끌려 홀로 중국대륙을 밟고, 선교의 비전을 품게 된다.
이후 윤영석 선교사는 대학교수로 시작해 중국 선교사로 헌신, 지역순회 전도는 물론 정부에서 허가 받은 교회를 세우고 지원, 관리하는 17개의 교회를 세우는 등 중국선교의 산 증인이다. 백화점 경영으로 경영선교에 뛰어든 그는, 현지 사역자와 선교사를 돕고, 사업현장을 통해 현지인을 전도하는 경영선교의 문을 열었다. 지금은 정치인으로 헌신하고 있다.
윤영석 선교사는 새천년민주당 환경종교위원장, 국정자문위원 열린우리당 통일정책특별위원회장 제17대 대통령선대위 종교특보단장 및 평양국제대성회 남북통일위원장을 역임했다.
현재, 그는 (주)KRB한국종교방송 대표이사와 (사)세계기독교부흥협의회 실무회장으로 정계와 방송계에서 활발한 사역을 펼치고 있다. 저서로 실제적인 경험을 바탕으로 한 중국선교 여정을 담아낸 <예수와 함께 대륙을 달리며(도서출판 예가)>가 있다. -편집자 주-
다음은 윤영석 선교사와의 일문일답.
-아틀란타는 어떻게 방문하게 됐나?
“이번에 목회자 세미나 특별강사로 초청해주셔서 왔다. 이번 세미나에서 ‘나는 선교사다’라는 제목으로 중국선교의 경험을 바탕으로, 지역 목회자들에게 선교사적 사명으로 교회를 섬기는 마음가짐과 방법에 대해 강의했다. 이민목회가 쉽지 않으며, 또 하나의 선교지라고 할 수 있다. 이곳에서 맡겨주신 주님의 양들을 오직 말씀으로 품고, 늘 새로운 비전을 제시함으로 땅끝까지 복음을 전하라고 하신 사명을 잘 감당해가시기를 권면했다”
-목회자로서 화려한 정치활동 이력을 갖고 있다.
“중국에서 교육선교, 개척선교, 경영선교를 마치고 마음도 정리할 겸 쉼을 얻고자 2001년 오랜 타국생활을 정리하고 귀국했다. 이후 새천년민주당 환경종교분과 부위원장으로 임명된 것을 계기로 지금까지 다양한 사역을 맡겨주셨다. 목회자로서 정치에 발을 들여놓은 것에 갈등도 적지 않았고, 질시와 비난도 받은 것이 사실이다. 이를 놓고 고민하다 3일간 금식하며 기도했더니 하나님께서 ‘내가 뜻이 있어서 너를 그곳에 보냈다’고 응답해주셨고, 소신을 갖고 일하게 됐다”
-정계활동을 하면서 가장 크게 느낀 점이 있다면.
“성경에서 너희는 세상의 빛과 소금이라고 하신다. 광복 이후 60여 년간, 기도하는 민족인 한국을 하나님께서 축복하셔서 교회가 7만여 개, 성도가 전 국민의 1/3인 1,200만 명에 달한다. 이처럼 하나님의 백성이 많은데도, 정작 한국교계에서는 사람을 키우지 않는다. 정계활동을 하면서 가장 아쉽고 안타까운 점이 바로 ‘종교계에서 통일을 주도할 정치인’이 턱없이 부족하다는 점이었다. 요즘처럼 혼란스러운 정국에 종교계가 정치에 이용당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지도하며, 정치인들을 하나님의 법으로 인도할 수 있을 정도의 영향력이 생겨야 한다고 본다.”
-통일 운동에도 앞장서왔는데...
“민족의 통일은 당장이 아니더라도 반드시 이뤄질 것이라 믿는다. 또 한국교회는 이를 위해 끊임없이 간절하게 기도해왔다. 하지만 무엇보다 통일에 대한 시각과 가치관이 변하고 진전 되야 한다. 우리는 너무 쉽게 북한이 빈곤으로 붕괴되면, 자연스럽게 남한에 흡수통일 될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그런데 이게 말처럼 쉬운 게 아니다. 당장 국경을 맞대고 있는 중국은 북한에 알게 모르게 많은 투자를 하고 있고, 정치적, 사회적 영향력이 크기 때문에 북한에 실질적인 권리를 주장할 수 있다.
문화적인 괴리도 무시할 수 없다. 가령, 밤 문화가 없는 북한과 세계에서 손 꼽히는 밤 문화를 자랑하는 남한이 당장 합쳐졌을 때 거기서 오는 혼란과 갈등이 얼마나 하겠는가? 통일을 고민한다면, 먼저는 민간 차원에서 문화적 교류를 바탕으로 점차 서로를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순차적인 과정이 필요하다.
무엇보다 종교계에서 모든 이해관계를 떠나 평화통일기금 조성에 앞장섬으로 통일 이후 경제적 충격을 완화시키는 것과 세계 각처에 나가있는 재외동포사회 통일교육도 절실하다고 본다.”
-앞으로의 사역 방향은 어떤가?
“지금은 일단 정계활동을 줄이고, 주님이 인도할 때까지 미국 알라버마에 머물려 공부하고 쉬면서 책도 저술할 계획이다. 쓰임 받을 수 있다면, 조국의 평화통일을 위해 재외동포사회의 인식을 환기시키고, 위원회 등을 조직해 조금이나마 도움이 될 수 있기를 기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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