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사님, 강목사님이시죠?”
핸드폰 폴더를 열자마자 약간 허스키한 여자의 목소리가 수화기 건너편에서 다급하게 들려왔다. 몇 마디 대화가 오간 후에야 수화기 저편의 인물이 누구인지 알게 되었다. 오래전에 사역했던 교회에서 알게된 여집사님이었다. 이 여집사님은 가끔씩 잊어버릴만 하면 전화해서 자신의 근황을 얘기하곤 했었다.

“목사님, 있잖아요. 우리 남편이 뇌암에 걸려서 사경을 헤매고 있어요. 벌써 여러 달 됐어요.” “아니, 정말이세요? 그런 일이 있었어요?” 나는 깜짝 놀라서 되물었다. 나는 그 다음 말을 생각하고 있었다. 무슨 말로 위로해야 하나, 어떤 말을 해야하나.... 내가 미처 다음 말을 이을 사이도 없이 그 집사님은 충격적인 말을 쏟아놓았다.

“어차피 우리 남편은 소생할 가망성이 없어보이구요... 시어머니가 유산을 빼돌리기 전에 제가 유산을 물려받을 수 있도록 기도해 주세요. 꼭 기도해 주셔야 돼요.”

남편의 병이 낫도록 기도해달라는 내용이 아니라 남편이 죽어가고 있는 마당에 유산을 물려받도록 기도해 달라니 어이가 없었다. 치과 병원장이었던 그녀의 남편은 분명히 많은 돈을 소유하고 있을 것이다.

욕심많은 시어머니는 어떻게든 눈에 가시같은 며느리가 유산을 물려받는 것이 못마땅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도 죽음을 앞에 둔 사람을 두고 유산 상속 운운하는 것은 비인간적으로 보였다.

어이가 없었지만 아무 대꾸도 못한 채 전화를 끊었다. 그런데 그 뒤 하루 간격을 두고 두 차례나 더 전화가 와서 같은 내용의 말을 반복하는 것이었다. 원래 이 부부는 사이가 좋지 않았는데 고부간의 갈등으로 인해 더욱 골이 깊어졌었다.

이렇게 가정 내부는 곪을 대로 곪아있어도 교회에서는 그럴듯한 부부의 모습으로, 화목한 가정으로 보여졌기 때문에 아무도 그 가정의 내막을 알 수 없었다. 그 여집사님이 남편과 시어머니 문제로 나에게 상담을 요청하기 전까지는 나도 전혀 모르고 있었다.

심각한 가정사와 개인적인 아픔을 아무에게도 말할 수 없었던 그 집사님은 오랫동안 모든 얘기를 들어주며 공감해 준 나를 그 뒤로도 오랫동안 잊지 못했던 것 같다.

그러나 이번에는 그 집사님이 듣기 싫어하는 말일지라고 분명하게 얘기해야할 것 같았다. “집사님, 정신 차리세요. 남편이 돌아가신 것도 아닌데 유산 받을 생각부터 하시다니요. 원래 집사님 그런 분이 아니시잖아요. 저한테 다시는 그런 기도 부탁은 하지 마세요.”

그 집사님은 나의 단호한 태도에 놀라는 기색이 역력했다. 목회자로서 상담자로서 상처가 될 만한 말을 될 수 있으면 삼가왔던 나로서는 큰 용기가 필요한 말이었다. 세월이 흘렀기 때문일까. 예전의 따스한 성품을 느낄 수 없었다.

“그래요? 알겠어요. 안녕히 계세요.”

그리고 난후 몇 달 동안 연락이 끊어졌었다. 그 사건이 머리속에서 희미하게 지워질 무렵 다시 연락이 왔는데 이번에는 완전히 풀이 죽은 목소리였다. 그동안 남편은 죽었고 유산은 시어머니와 큰아들이 모두 빼돌리고 자기한테는 한 푼도 주지 않았다고 했다.

남편과 시어머니와 자식들에게 인정받지 못하는 삶을 살아온 한 여인의 슬픈 자화상을 보는 것 같았다. 이 여인에게 있어서 돈은 유일한 삶의 희망이었다. 돈이라도 있으면 자신의 외로움이나 아픔을 조금은 잊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오랫동안 교회를 다니고 있었지만 이 여인은 하나님을 만나지 못했다. 그녀의 삶의 중심에는 하나님이 없었고 공허한 바람과 헛된 희망만이 희미하게 자리잡고 있었다.

너무나 절망적인 목소리를 들으며 행여 극단적인 행동이라도 할까 염려가 되어 수화기를 부여잡고 간절히 기도해주며 격려해 주었다. 수화기 너머로 훌쩍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수년전부터 병원장이었던 남편의 큰 재산을 탐내왔지만 결국은 아무것도 돌아오지 않은 빈털터리가 되고만 이 불쌍한 여인에게 무슨 말을 해주어야 할까.

무엇이 잘 사는 것인가. 하나님없이 돈을 추구하며 사는 삶, 자기자신의 안위를 추구하며 사는 삶, 자기중심적인 삶, 이같은 삶의 형태들은 결국 그 사람을 비참하게 만들어버릴 것이다.

‘나’를 ‘주님의 것’으로 고백하는 삶을 살자. 나의 모든 것을 주님의 것으로 인식하고 고백하는 삶은 우리를 진정한 행복의 길로 인도해 줄 것이다.

우리는 모두 행복해져야한다. 돈이 우리를 행복의 길로 인도해 주지 않는다. 돈을 추구하는 삶은 결국 불행한 결말로 이어지게 될 것이다. 행복의 길이신 예수그리스도 앞으로 더욱 나아가자. 그리하면 주님의 것인 우리는 반드시 행복해질 것이다.

낮은울타리 예배사역원 원장 강선영 목사 www.wooltari.com